[세계와 나]국민은 만들어지는 것

2007. 4. 25. 12:1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머니투데이 최병권논설위원][핏줄과는 무관한 사회적 산물..'조승희 사건' 개인·美사회 문제]

대전 둔산여고 3학년 김예현 학생이 '미국 명문고 굿바이, 나는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책을 펴냈다. 중학생 때 미국으로 유학 갔다가 부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한국으로 되돌아오기로 마음을 굳힌 이야기들이 책에 실려 있다.

그가 한국으로 돌아오기로 한 것은 그곳에서의 공부에 적응을 못해서가 아니다. 영어도 잘 하고 수학도 잘 하고 봉사활동과 학내 클럽 활동에도 열심이었으며, 따라서 학업 평가도 아주 좋았다. 그런데도 그는 수많은 조기유학생들을 싣고 온 그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왜 그는 역행을 한 것일까. 정체성의 혼란 때문이었다고 한다. 매일 아침 교실에서 성조기에 경례를 하고 두께 5cm의 방대한 미국사를 배우다가 보면 내가 세계시민으로 교육을 받고 있는지 미국 시민으로 교육을 받고 있는지, 한국사는 모르고 미국사는 잘 알고 해서 무엇을 얻고 무엇이 되려고 하는지 등의 기억들을 그는 자신의 역행과 관련하여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미국에서 교육을 받다가 보면 미국식으로 생각하고 미국이라는 창을 통해 나와 나의 바깥 세계를 바라볼 수밖에 없게 된다는 사실의 발견이 그로 하여금 발길을 돌리게 한 것이다.

그는 미국 고교의 교내 풍경과 교과내용, 선생님들에 대해 아주 미주알고주알 리포트를 하고 있는데 그의 리포트를 통해 우리는 미국이 얼마만큼 치밀하게 그리고 정성을 다해 미국 국민을 만들어내고 있는가를 알 수 있게 된다. 그들의 경우 국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국민은 한번 국민은 영원한 국민이라는 식의 자연의 산물이 아니라 사회적 산물이 된다. 사회적 산물이라는 것은 만들어지는 것이고, 만들어지기 때문에 그 나라 국민으로서의 법과 도덕규범, 관행, 상징에 따라야 하며 그럼으로써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국민은 핏줄과 관계가 없다. 미국 언론들이 버지니아 공대의 조승희를 승희 조로 표기하고 나선 것도 조승희가 태어나기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초등학교에서부터 성조기에 매일 아침 경례를 하고 미국사를 통해 미국의 위대함을 배우고 미국의 영광을 나의 영광으로 받아들이는 교육과정 속에서 미국 국민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한국 사람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해서인 것 같다.

조승희에게 문제가 있었다면 그 문제는 미국인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다시 말해 사회적 산물로 형성되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지 핏줄에서 생긴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여러 인종과 문화를 용광로에 넣고 하나로 용해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국민통합인데 조승희가 통합되는 데에 실패를 했다면 일차적으로 그 책임은 조승희 그 자신에게 있고 이차적으로 미국 사회에 있지 한국과는 무관하다는 식이다.

프랑스 대선 결선 투표에 오른 우파 대통령 후보 니콜라 사르코지도 우리로 치면 프랑스인이 아니라 헝가리인이다. 아버지가 헝가리에서 프랑스로 이민 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프랑스인 누구도 사르코지를 프랑스인이라고 하지 헝가리인이라고 하지 않는다. 사실 프랑스인이기 때문에 프랑스 대통령에 출마를 하고 지금의 여론 추세대로 가면 프랑스 대통령이 되는 것도 거의 확실하지 않나 싶다.

사르코지만이 아니다. 전 프랑스 총리 에드아르 발라디르 또한 아르메나인이다. 그들은 자연적 산물로는 외국인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사회적 산물로는 최고의 프랑스 국민으로 재탄생한 셈이다. 국민으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다하고 국가 상징에 존경을 표하는 국민 만들기의 작업은 그들만이 아니라 우리에게도 여전히 요구되는 사항이다. 단일 민족이라고 해서 한번 태어나는 것을 끝으로 국민 만들기 작업을 혹시 우리가 방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최병권논설위원 bksol@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Copyright © 머니투데이 & mt.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