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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사, 노태우 정권때 친위쿠데타 기도노무현 대통령 등 923명 '예비검속' 대상

입력 2007. 04. 25. 15:53 수정 2007. 04. 25.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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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년 노태우정권 당시 국군보안사령부가 비상계엄에 대비해 '청명계획'을 수립하고 민주인사 923명에 대해 민간인 사찰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오마이뉴스>는 87년 6월 전 국민적 민주화 열기를 무위로 돌이키려 했던 군 당국의 터무니 없는 시도에 대해 3차례로 나눠 고발한다. <오마이뉴스 편집자 주>

[오마이뉴스 장윤선 기자]

▲ 노태우 전 대통령(자료사진).
ⓒ2007 주간사진공동취재단

1989년 노태우 정권 시절 국군보안사령부(현 국군기무사령부, 이하 보안사)가 서울 용산 서빙고분실에 비밀 사무실을 차리고 민주인사 923명을 대상으로 '민간인 사찰'을 하면서 유사시 비상계엄을 통한 친위쿠데타를 계획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른바 '청명계획'이다.

'청명계획'은 당시 보안사가 친위쿠데타를 성공시키는 데 방해가 될 만한 반정부인사 목록을 만들고 이들을 개별적으로 사찰해 비상계엄 D데이 전후로 전원 검거한다는 예비검속 작전명이다.

이 계획 가운데 쿠데타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민간인 사찰 부분은 실행됐다. 1990년 10월 당시 보안사 소속 이병이던 윤석양씨는 민간인 주요 인사 1311명을 보안사에서 은밀히 사찰해왔음을 폭로했는데, 1311명엔 청명계획에 사찰 대상으로 오른 923명이 모두 포함돼 있었다.

이처럼 1979년 12·12쿠데타와 1980년 5·17친위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군사정권에 이어 노태우 정권도 '정권안정용' 친위쿠데타를 기획했다는 것은 매우 놀라운 사실이다. 무엇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국민적 저항이 거세던 1989년, 민주인사들을 또 다시 감옥에 가두는 방식으로 '정권안보'를 꾀하려했다는 점에서 더 충격적이다. 과거에도 노태우 정권이 친위쿠데타 계획을 세웠다는 '설'은 많았지만, 보안사 자료로 공식 확인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보안사, 체포카드 만들어 A·B·C 3등급 분류 관리

당시 보안사 대공처(3처) 수사2과(6과 신설)는 K대령을 실무팀장으로 위장명칭 '청명계획'을 수립하고 민주화 인사 923명에 대한 '체포카드'(일명 청명카드)를 만들어 개인별 파일을 각각 관리했다.

<오마이뉴스>가 확인한 바에 따르면, 보안사는 1989년 4월 27일부터 6월 20일까지 총 55일 동안 비상계엄을 위한 태스크포스(TF)팀을 꾸리고 예하부대를 총동원해 사회 각계각층의 주요 인물 923명을 내사, 검거·처벌 대상자를 등급별로 선별해 사찰했다.

당시 보안사는 '청명 대상자'를 A급, B급, C급으로 3등분하고 국내 저명 민주인사들을 전원 검거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예비검속은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무차별 검속과 즉결처분으로 민간인을 집단학살했던 보도연맹사건의 예비검속과 같은 맥락이다.

보안사는 비상계엄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결정적으로 방해될 만한 인물을 A급, 계엄시책을 수행하는 데 장애가 될 만한 인물을 B급, 비상계엄 발령 후 국민적 공감대 형성에 방해가 되는 인물을 C급으로 구분하는 방식으로 대상 인사를 셋으로 나눴다.

A급에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산하 핵심간부,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등의 학원가 핵심 간부, 좌익성향 언론인과 정치인들이 포함됐으며 B급에는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나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회원들이 포함됐다. C급에선 종교인들이 주를 이뤘으며, 정부 시책을 비판하는 언론인이나 기업인들도 모두 검거대상으로 분류됐다.

보안사가 A급으로 분류해 사찰한 민간인은 노무현 대통령(당시 통일민주당 의원), 이해찬 전 국무총리(당시 평화민주당 의원), 이상수 노동부 장관(당시 평화민주당 의원), 이강철 대통령 정무특보(당시 진보정치연합 공동대표), 임종석 의원(당시 전대협 의장), 고 문익환 목사, 이창복 전 의원(당시 전민련 상임공동의장), 유인태 의원(당시 진보정치연합 사무처장), 이태복 전 노동부 장관(당시 주간 <노동자신문> 편집실장), 정윤광 당시 지하철노조 위원장 등 총 109명이다.

B급은 김수행 서울대 교수, 강만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 한완상 대한적십자사 총재, 이효재 전 이화여대 교수, 오세철 연세대 교수,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 고 김진균 서울대 교수 등 학계 민주인사를 비롯해 한승헌 전 감사원장, 박원순 변호사,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 김갑배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 상임위원, 고영구 전 국정원장 을 비롯한 민변 회원 등 총 315명이다.

C급은 김수환 추기경, 고 김승훈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대표, 함세웅 신부(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문정현 신부, 문규현 신부, 김성수 성공회 대주교, 윤정현 성공회 신부, 박형규 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원형수 강경 제일감리교회 목사, 홍근수 서울 향린교회 목사, 불교계의 송월주·정토, 이용성 민중불교운동연합(민불련) 의장 등 종교계 인사와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 위원장), 김중배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이근성 기자협회 회장 등 499명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당시 민주당 총재), 김대중 전 대통령(당시 평화민주당 총재), 김종필 전 자민련 총재(당시 신민주공화당 총재) 등 '3김'에 대해서는 '최고의 정책 차원'에서 다룬다는 방침을 세우고 별도 관리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 1977년 10월 7일 국군보안사령부 창설식 장면(자료사진).
ⓒ2007 국군기무사령부

노무현 대통령 살던 아파트 도면도 사찰 대상

보안사는 '청명 대상자'로 분류한 인물에 대해 ▲인적사항 ▲주거환경 ▲동거인 현황 ▲활동반경(차량·직장 유무, 주요 출입지역) ▲예상 은신처 ▲주거지 약도(주변 약도·주거지 요도·집안 가구 배치도 포함) ▲검거조 편성 및 장비 ▲인수 장소 ▲연행 시 유의사항 등 총 11개 항목으로 나눠 관리됐다. 파일 분량은 개인당 A4 10매 이상이다.

보안사가 지목한 '청명 대상자' 중 하나였던 노무현 대통령의 개인파일에는, 1989년 당시 거주하던 부산 남구 남천동 S아파트 내부 도면까지 그려져 있다. 아파트 내부 방 구조, 화장실과 베란다 위치 등도 파악해둔 상태였다. 평소 몇 시에 집을 나서 몇 시에 귀가하는지, 타고 다니는 차량은 무엇인지, 자주 걸어 다니는 동선, 평상시 자주 만나는 친구와 연락처, 예상도주로와 예상은신처까지 모두 기록돼 있다.

'청명 대상자'에 대한 보안사의 사찰 활동은 주로 예하부대의 내사보고서를 토대로 하고, 1대 1 방식의 미행과 전화 도·감청 등 공개되지 않은 자료를 활용해서 진행됐다. 이에 따라 '청명 대상자'를 관리하기 위한 조사 인력도 상당히 많이 투입된 것으로 보인다.

보안사가 청명계획을 추진하면서 준비한 작업계획 분량도 상당히 방대하다. 전국적으로 포진된 보안부대의 내사보고서를 토대로 1차 조사를 마친 뒤 보안사 요원으로 구성된 수사관들에게 차량과 수갑, 정보통신 장비 등을 제공하고 수사에 어려움이 없도록 최대한 지원한다는 방침이었다. 특히 예비검속으로 검거한 사람들을 가둘 수용시설과 심문시설 설치까지 적극 검토한 것으로 밝혀졌다.

보안사 자료에 따르면, '청명 대상자'들의 수용시설과 심문시설, 심문관 편성 준비를 비상계엄이 내려지기 직전인 D-1일까지 완벽하게 마친다는 계획이었다. 비상계엄 발령 직전까지 전 예하부대에 직접 명령을 내려 유관부대에 '체포카드'를 분배하고 직접적인 검거활동에 돌입한다는 작전이었다. 사찰 기록 작성이 완료된 '체포카드'는 보안사로 이관해 철저한 보안 속에서 관리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비상계엄령 소문 떠돌지 않도록 입단속 주문도

보안사는 '청명계획'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을지훈련 기간인 1989년 8월 17일부터 26일까지 K대령 주관으로 8개 부대를 선정해 예상훈련을 실시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상황이 발생할 경우 경찰·검찰·안기부 등 관계기관과 협조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청명계획의 일부였다.

또한 비상계엄 10일을 전후로 '청명 대상자' 923명 전원을 형사 처벌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A급 109명에 대해서는 계엄발동 이전부터 감시하면서 가택연금하고, B급과 C급(모두 814명)에 대해서는 계엄 이후 법 위반 행위에 따라 처벌한다는 계획이었다. 핵심 감시대상의 경우 보안사 대원들이 맡고, 가택연금 조치의 경우 가급적 경찰에게 업무를 분담한다는 방침도 세워둔 상태였다.

보안사는 '청명 대상자' 검거 시기도 꼼꼼히 검토했다. 계엄령 이전에 검거하면 도주 우려가 적고 계엄목표를 달성하기 쉽지만 향후 위법시비나 대상자 잠적, 증거인멸 가능성 등 단점이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전 부대의 보안사 요원들이 사전에 지속적으로 감시하고 있다가 계엄령 발동과 동시에 검거해서 위법요인을 제거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증권가나 정가에 '계엄 발동 루머'가 떠돌지 않도록 입조심해야 한다는 '주의요망'도 담겨 있다.

보안사에 남아 있는 청명계획 관련 문서만도 총 4권 1380매에 달하며 계획 수립·입안·작전수행·대상자 명단 관련 문서와 사찰 결과가 담긴 개인파일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국방부 과거사위원회 차원에서 구체적으로 조사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장윤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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