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서 만난 독립운동가 '아리랑' 김산·김철수의 손자

2007. 8. 15.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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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멍에 벗고 조부의 조국애 인정받아 기뻐"

"기념비석 파괴 위협 등 우익 비난 안타까워… 항일독립운동가 정신 후세에 적극 알릴 것"

"눈빛만 봐도 조국을 사랑했던 선조들의 뜨거운 마음이 서로 전해지는 것 같네요."

광복절 예순 두 돌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10시30분(한국시각 오전11시30분) 중국 베이징(北京) 시내 한복판인 중신은행(中信銀行ㆍCITIC) 건물 2층 커피숍. 일제 시대 조국을 되찾기 위해 몸 바친 독립운동가 두 명의 후손이 탁자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님 웨일스의 '아리랑'으로 유명한 김산(본명 장지락ㆍ1905~1938) 선생의 손자이자 재중동포인 고우원(高雨原ㆍ35ㆍ중신은행 재무관리부)씨와 1920년대 조선공산당(일명 ML당) 김철수(金綴洙) 책임비서의 외고손자 정윤환(25ㆍ서울시립대 경영 4년)씨는 독립운동가의 피가 통하는 듯 처음부터 두 손을 굳게 잡았다. 고씨는 김산이 38년 중국 공산당에서 숙청당한 뒤 할머니가 재혼하면서 새 할아버지의 고씨 성을 따르게 됐다.

정씨는 고씨를 만나기에 앞서 7일부터 운암(雲巖) 김성숙 기념사업회(이사장 이수성) 주최 '제2기 운암 김성숙 항일 유적지 중국 탐방단'의 일원으로 상하이(上海)와 난징(南京), 우한(武漢) 충칭(重慶) 등에서 할아버지 세대의 항일운동 지역을 돌아봤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동질감 때문일까. 고씨와 정씨는 초면이라는 어색함도 없이 한국어와 중국어 통역 외에도 영어를 섞어가며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이들은 독립투쟁에서 사회주의의 길을 택했던 할아버지들이 한반도 남녘에서 오랜 세월 '빨갱이'로 낙인 찍혔다가 뒤늦게 역사적 재조명을 받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 했다. 김산 김철수 등 사회주의 계열 47명은 2005년 독립운동 공로를 인정 받았으며 훈장이 추서됐다.

정씨는 "할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조선공산당의 지도자이자 훌륭한 독립투사로 해방 뒤에는 박헌영과 대립하며 민족 중심의 좌우 통합 운동을 펼쳤다"며 "하지만 손자인 나도 2005년 전에는 그런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후손들이 추모사업회(회장 정진석)를 만들어 기념묘비를 세우려 했더니 아직도 '비석을 파괴하겠다'는 등 반발이 적지 않다"고 씁쓸해 했다. 광복 62년이 됐지만, 좌우 대립의 앙금은 여전한 것이다.

정씨와 달리 중국에서 자란 고씨는 할아버지가 변방의 혁명가로 푸대접 받은 것이 못내 아쉬웠던 모양이다. 그는 김산에 대해 "공산주의자로 국제 연대와 세계 평화를 추구하면서도 조국을 더 없이 사랑한 분으로 요즘 젊은이들도 본받을 점이 많다"고 말했다.

고씨와 정씨는 할아버지 세대의 뜨거움을 후세에 기리기 위해 서로 노력할 것도 약속했다. 고씨는 "재중동포 3, 4세들은 한국어를 거의 모른다"며 "할아버지가 누구인지 알고부터 는 우리말을 모르는 게 부끄럽게 느껴졌다"고 고백했다.

고씨는 정씨가 주도하는 항일 유적지 탐방단에 대해서도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앞으로 적극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고씨는 "97년 충칭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한 적이 있다"며 "항일독립 운동가들의 길을 좇아 그 정신을 기리는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베이징=이현정 기자 agada20@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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