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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칸〉[책마을]홍성철作 '유곽의 역사'

입력 2007. 09. 09. 22:08 수정 2007. 09. 09.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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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어디 가? 잠깐 놀다 가~." 야릇한 불빛 아래에서 윙크와 함께 달콤한 유혹을 뻗는 '그녀들'이 있는 거리. 여인들은 마치 여름의 끝 자락을 잡고 해변에 나온 듯 몸의 일부분만을 살짝 가리고 손짓한다. 소위 홍등가라 불리는 집창촌은 그녀들이 있는 곳이다. 서울 용산 기차역에서 한강로로 향한 길, 혹은 청량리 588과 파주 용주골, 부산 완월동과 전주 선미촌, 원주 희매촌, 춘천 난초촌까지 전국의 웬만한 도시치고 집창 골목이 없는 곳이 없다. 우리 생활 깊숙이 뿌리 내린 집창촌이지만 이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점잖지 못한 행동으로 여겨 터부시 되고 있다. '유곽의 역사'(페이퍼로드)는 과감히 이에 질문을 던진다.

과연 이들 집창촌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대부분 '역 근처이고 주변에 터미널이 있어서 자연발생적으로 생겼다'는 대답으로 얼버무리고 만다. 책은 일제가 조선을 점거하면서 일본 자국민을 위해 그들의 독특한 문화인 '유곽'을 들여왔다는 사실에 우리나라 집창촌 문화의 기원을 두고 있다. 100년 전에 생겨난 부산 완월동 집창촌의 전신 '아미산하 유곽'은 한때 아시아 최대의 매춘거리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물론 일제 강점 이전에도 성매매 여성은 존재했으나 이같은 '전업형' 성매매 혹은 특정한 장소에 모여 성매매를 한 적은 없었다.

'유곽'에서 시작된 집창촌의 역사는 일제 강점기가 끝나고 공창제가 폐지되면서 기구하게 변모한다. 저자는 이 시기를 '사창전국시대'라 불렀다. 유곽들은 재빨리 사창가로 전환을 시도했고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 빈곤 여성들이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성을 팔았다. 현실을 잊고 싶은 남성들은 오히려 성 구매에 열을 올렸다. 이후 제3공화국이 들어서자 정부는 '윤락행위 방지법'을 제정해 단속하려는 '척'하며 한술 더 뜬다. 당시 정부는 '특정지역'이라는 미명하에 공창 아닌 공창으로 집창촌을 묵인했다. 일본인들의 성매매를 목적으로 한 기생관광이 외화 벌이에 쏠쏠했던 탓이다. 게다가 미군 기지촌의 활성화는 최대 우방인 미국과의 동맹을 상징하고 있었기에 기지촌 성매매 여성들에게 반공사상 영어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에는 티켓다방이 등장했고, 1980년 이후 제5공화국 시절에는 군부 정권의 '국민 3S 서커스(Screen, Sports, Sex)' 중 하나로 성매매가 전성기를 맞는다. 음성적 매매춘을 비롯해 산업형 성매매가 등장하고 미아리와 천호동 텍사스가 활황 일로를 걸었다.

기자 출신의 저자 홍성철씨는 경찰서 출입기자로 서울 신길동 '텍사스'와 청량리 '588' 등 집창촌 르포를 쓰면서 "왜 집창촌이 이곳에 생겼을까"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이후 스스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고 2004년 9월 '성매매 특별법' 발효와 함께 거세게 저항하는 성매매 여성들을 바라보며 집필을 결심했다.

저자는 집창촌의 역사를 짚는다고 해서 성매매에 찬성하거나 집창촌을 합법화하자는 얘기는 아니라고 강조했다. 성매매가 지속하고 있는 한 한국 사회의 집창촌 문제는 여전히 현재의 문제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과 함께…. 동시에 해외진출이 증가한 성매매 여성의 국제화, 집창촌 재개발, 외국의 성매매 규제 실태에 대해 설명을 덧붙였다. 정부가 진정 성매매 근절을 의도한다면 집창촌 여성들에 대한 선도 이전에 이들을 향락문화의 희생양이 아니라 건전한 노동으로 전환하기 위한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조상인기자 ccs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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