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문에 힘들었지요? 노무현 지지자여서 구박받는 게 제일 미안"

2007. 10. 9.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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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오연호 기자]

지난 9월 2일 청와대 관저 앞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인터뷰중인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

ⓒ 청와대 제공

청와대 관저는 권력 제1인자의 거처다웠다. 밥풀이 떨어지면 다시 주워먹어도 될 만한 비단같은 잔디마당이 있는, 그 넓고 높고 격조있는 대통령의 집에서 인간 노무현을 마주하고 앉으니 옛날들이 떠올랐다. 부산의 승용차 안에서, 여의도의 한 포장마차에서 그를 인터뷰하던 시절들이.

- 제가 그동안 대통령 후보가 되기 전부터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인터뷰를 몇 차례 했는데요, 기억하시나요?

"예, 기억하지요. 제일 확실하게 기억나는 게 <조선일보> 보도 관련해서…."

변호사 출신인데 소송과 관련된 기사이다 보니까, 언론과 대결해온 정치인이다 보니까 그 인터뷰를 "제일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건 내가 <말> 기자이던 때 썼던, <주간조선>의 노무현 재산관련 보도에 대한 '반론 인터뷰' 격 기사였다.(1991년 월간 <말> 12월호에 게재된 '노무현과 조선일보의 명예싸움')

7년전 그와의 인터뷰... "차기 대통령은 지역통합적인 나"

1988년부터 기자 오연호가 정치인 노무현을 단독 인터뷰한 것은 이번을 포함해 모두 8번쯤 된다. 많은 독자들은 대표적으로 2003년 2월 23일의 '대통령 당선자 노무현' 인터뷰를 기억할 것이다. 대통령 취임 이틀 전에 국내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오마이뉴스>와 단독 인터뷰("청와대·정부 가판신문 구독금지, 정권과 언론의 유착관계 끊겠다")를 가졌다.

그러나 그간의 정치인 노무현과의 인터뷰 가운데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은 '대통령을 꿈꾼 국회의원 출마자 노무현'을 단독 인터뷰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2000년 3월 22일 부산에서다. <오마이뉴스> 창간(2000년 2월 22일) 직후에 실린 그 기사의 제목은 노무현 "차기 대통령 선거 나갈 것"이었다. 첫 대목이 이랬다.

"노무현 의원(민주당 지도위원)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는 처음으로 "차기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노무현 의원은 3월 22일 오전 부산 코모도호텔에서 '민주당 부산지역 공천자 합동 기자회견'을 마친 직후 오마이뉴스와 2시간 동안 단독 인터뷰를 갖고 "차기 대통령은 지역통합적 인물이 나와야 한다"면서 "그런 조건에 가장 적합한 사람이 나라고 감히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때 그가 대통령 선거에 나서겠다고 하자 총선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물어봤다. 다시 당시 기사를 옮긴다.

"노무현 의원은… …국회의원 당선을 위한 전략이냐, 아니면 실제로 가슴 속에 품고 있는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을 받고 "총선용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서 "지역구를 부산으로 옮긴 것도 그런 큰 구상 속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 인터뷰는 승용차(무쏘) 안에서 이뤄졌다. 부산 중구 코모도호텔에서 그의 지역구인 북구 금곡동 연락사무실을 향해가면서. 그는 "차 안이라 흔들려서 받아적기 힘들지요"라고 했다. 그런데 왜 대통령이 되어보려고 했던 것일까? 그가 대통령으로서 2007년 남북정상회담을 막 마친 지금 읽어보니 새롭다.

당시 노무현 의원은 "기본적으로 내가 차기에 대해 의욕을 갖는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포용정책과 생산적 복지정책을 계승하면서 동시에 지역화합을 이룰 수 있는 인물이 여야를 막론하고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내 생각으로는 김근태 의원과 나 두 사람 정도"라고 말했다.

나는 그 기사를 정리하면서 이런 대목이 포함된 인터뷰 후기를 붙였다. 다시 읽어본다. 우리는 차기 대선을 이야기했다. 그가 가장 길게 뜸을 들이다 답한 것은 이 질문 때였다.

- 대통령이란 참으로 복잡한 일들을 처리해야하는 골치아픈 자리일텐데, 그런 일을 해내기 위해 가장 우선적으로 준비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노 의원은 "그게 뭘까요?"하고 되묻다가 이렇게 답했다.

"판단력…. 역사적 안목을 기르는 일입니다."

역사적 안목…. 그랬다. 그땐 덜컹거리는 승용차 안에서, 대통령이 되기 위해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를 물었다. 그로부터 7년 후, 대통령 퇴임을 몇 달 앞둔 그와 청와대 관저에서 마주 앉았다.

지난 2000년 4·15총선에서 낙선한 뒤 <오마이뉴스> 기자 회원들과 인터뷰를 가졌던 노무현 후보.

ⓒ 노순택

7년 전 지지댓글... "세계 경제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

무엇을 먼저 물을까? 청와대 정문을 통과해 관저로 향하면서 첫 질문을 생각했을 때부터 그들을 떠올렸다. 딸기 아빠, 권희종씨, 황효식씨…, 그들이라면 지금의 노무현 대통령에게 무엇을 가장 먼저 물을까? 그들은 7년 전의 내 기사 노무현 "차기 대통령 선거 나갈 것"에 댓글을 달았던 이들이다. 노사모가 탄생하기 2년 전이다. 가장 최초의 '대통령(감) 노무현' 지지 네티즌들이라 할 만하다.

딸기 아빠는 "노 의원의 외로운 길 옆에는 작은 풀포기와 이름없는 들꽃들이 활짝 피어 있다"면서 "외로워말고 주위를 둘러보세요"라고 대통령을 향한 길을 격려했다.

황효식씨는 상처와 분노에 대처하는 방식을 조언했다. "상처 받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마시고 분노하더라도 절대 증오하지 않으며 대의를 향하여 전진하시기를 바랍니다. 만약 당신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를 불순한 방법으로 이용한다면 그만큼 정치는 더 더러워질 것입니다. 역사 앞에 민족 앞에 책임지는 정치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권희종씨는 일단 "한국 정치의 가장 큰 현안은 지역 구도를 깨는 것"이라면서 노무현 대통령 시대가 온다면 의미가 크다고 했다. 그러나 "하나 덧붙일 것은…"이라면서 이렇게 물음표를 남겼다.

"하나 덧붙일 것은 정치인들이 세계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통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래야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일관적이라는 느낌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경제 정책은 당파적 이념으로서는 생존하기 어렵게 돼 있다. 현실과 이상을 조화시켜서 문제를 해결해내야만 하기 때문이다. 노무현씨의 국제적 안목은 어떠한지 궁금하다."

대단하다. 이 독자는 7년 전에 '노무현에게 다가올 FTA'를 예상하고 있었던 것일까?

그렇다. 가장 최초의, 때문에 어쩌면 가장 순수한 노무현 지지자들의 기록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정치인 노무현에게 감동과 희망을 걸었던 것은 하룻밤의 축제를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누구를 내세우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을까라는 정치공학적인 셈법이 아니었음을.

그들이 만들고 싶었던 것은 있다가 사라질 '대통령 노무현'이 아니었다. 작은 풀포기와 이름없는 들꽃들은 역사와 민족 앞에 부끄럼 없는 나라를, 현실과 이상의 조화가 이뤄지는 사회를 만들어보고 싶었던 것이다. 대통령 노무현은 그 도구였다. 그래서일 게다. 노무현 대통령 시대가 간다고, 그의 지지도가 낮아진다고 '그들의 축제는 끝났다'고 그 누구도 함부로 이야기할 순 없지 않을까?

노무현의 시대는 갔다, 그들의 축제는 끝났는가

그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가 낮아지면 괜히 주눅드는 사람들이 많다. 내 책임인 양. 아마도 위의 세 독자도 그러지 않았을까? 그래서 그들을 대신하여 대통령께 물어봤다.

- 저도 2002년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노무현의 가치'에 대한 지지자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요. 대통령께서 생각하실 때 제가 요즘 다른 사람들한테 '나 노무현 대통령 좋아합니다'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것 같습니까, 아니면 좀 쭈뼛쭈뼛할 것 같습니까?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 좀 다르겠지만…. 내가 고향 사람들이나 동창을 가끔 청와대에 초청해 만날 때 제일 처음 하는 인사가 '나 때문에 힘들었지요'입니다. 내가 (지지자들에게) 제일 미안한 게 그 점입니다. 나하고 친하다는 이유로, 또 옛날에 나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지금 여러분이 이 자리 저 자리에서 구박받고 있는 것이, 또 대통령인 내가 구박당하는 것을 보고 마음 상해할 것이고, 그 점이 제일 힘듭니다. 아주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중학교 동창생 이야기를 들려줬다.

"조그마한 가게를 하는 그 동창생을 여기 초청했더니 하는 말이… '네가 막 대통령 됐을 때 너랑 찍은 사진을 가게에 딱 걸어놨더니 손님들이 '와~ 니 노무현이 아나?' 해쌓고 손님도 많이 오고 그래서 기분이 좋았는데, 나중에는 (지지도가 떨어지니까 손님들이) '야, 저 치아라, 저 노무현이 뭣 때문에 걸어놨노, 치아라' 그래서 실제로 치웠대요. 계속 못 걸어놓겠더라'고."

ⓒ 청와대 제공

이 예를 들면서 대통령은 허허 웃었지만 곧 담배를 꺼냈다.

"참 어렵죠, 그럴 때. 뭐 한 사람 두 사람이었겠어요? 주위에서 다 나쁘다고 하니까. 지지자라도 정말 헷갈리지 않겠어요? 아, 정말 이렇게밖에 못하냐는 생각이 들 거고…."

전통적 노무현 지지자들이 당당하게 '아직도 나는 노무현을 지지한다'고 말하지 못하게 한 것, 대통령은 그런 현상이 만들어진 것 자체에 대해 지지자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유시민 의원이 <오마이뉴스>와 인터뷰(8월 22일 "'유시민 지지' 떳떳이 말 못한 유빠에 죄송")에서 "유빠들에게 나 유시민 좋아해 하고 당당히 말하지 못하게 한 현상을 만든 것에 대해 사과한다"고 한 점과 비슷하다.

"근데 한번 물어봅시다, 내가 뭘 잘못했어요?"

노무현 대통령은 최근 2차 남북정상회담을 성과있게 마쳤다. 30%를 밑돌던 지지도는 50%를 넘나들고 있다. 노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떼어냈던 그 동창생은 다시 그 사진을 붙여놓을까?

노 대통령은 말했다.

"나 때문에 구박당하는 지지자들을 만나면 내가 미안해 하면서도 마지막엔 이런 말을 해줍니다. '조금 더 가 봅시다, 조금 더 가 봅시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작은 오류들은 있었지만 큰 틀에서는 제대로 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노 대통령은 이렇게 되물었다.

"오 대표, 근데 한번 물어봅시다. 내가 뭘 잘못했어요? 뭐가 틀렸어요?"

(* 3편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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