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 우리문화 사랑, 정갈한 말맛 살린 글 오롯

2007. 10. 18.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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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책 모양과 내용도 그랬거니와 그 이름부터 달랐다. 1970년에 <배움나무>가 창간됐고, 이어서 <뿌리깊은 나무>(1976), <샘이 깊은 물>(1984)이 나왔다. 이들은 이 나라 잡지문화, 출판문화 풍토를 바꾸고 우리 정체성에 대한 사유의 차원을 높였다. 이들을 만들고 키웠으며 그 때문에 탄압받기도 했던 한창기(1936~1997)씨. "이 나라 새 세대가 사용할 언어의 흐름을 새 방향으로 바꾸었다고들 다들 인정하는" 타고난 언어 통찰력의 소유자였던 그는 우리 말과 우리 문화예술을 남달리 깊이 알고 사랑했던 "멋쟁이"였으며, 뒤틀린 역사가 만든 굴곡을 살피고 바로펴는 데 일생을 바쳤다.

"칠백만이나 되는 서울인구 중에서 무슨 외국의 연주회가 있다고 하기만 하면 연거푸 몰려가는 사람의 수는 수만명이어도 '뿌리깊은 나무 판소리 감상회' 같은 데에 나오는 사람의 수는 백명 안팎일 뿐인 이 나라의 음악교육엔 아마도 무슨 큰 탈이 있다." 약 20년 전에 그는 그렇게 한탄했는데, 서울인구 1천만이 넘은 지 오래인 지금은 달라졌을까.

타계한 지 10년만에 그가 첫 잡지 창간 무렵부터 세상 떠날 때까지 27년여 동안 쓴 글들을 엮어 묶은 책 3권이 나왔다. 그가 만든 그 잡지들 이름을 붙였는데, 발표된 순서대로 묶은 것이 아니라 언제 어느 매체에 실린 것이든 문화시평류의 글들은 <배움나무의 생각>에, '언어'에 대한 생각을 담은 글은 <뿌리깊은 나무의 생각>(휴머니스트)에, 전통과 민속과 문화를 다룬 글은 <샘이 깊은 물의 생각>에 각각 가려 묶어 정리하고 발표연대와 수록매체를 밝혔다.

"나는 아직도 아름다움의 '아름'이 '앎'이나 '지식'이라고 했다던 고유섭씨의 말씀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것이 '알음', 곧 '아는 사이'를 뜻한다고 믿어, 무엇이 아름답다는 말은 '아는 사이'다워서 눈과 귀에 설지 않다는 말인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일제시대의 군가 가락에서 어른들이 향수를 느끼듯 서양식 음악도 어쩌다가 우리의 귀에 가장 익숙한, '알음'다운 음악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니 민중의 피부에 더 맞닿은 민중음악을 깔보던 일제와 해방 뒤의 역사는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반성할 게 음악뿐이었으랴.

그는 "사람들이 평소에 잘 거들떠보지도 않는 작고 가느다란 것들", 그러나 "만약에 알게 되면 사람들 머릿속에 변화의 작은 불씨를 일으킬 것들"을 그는 늘 생각했다. 민속, 미술, 예악, 언어, 건축, 복식 할 것 없이 온갖 분야의 '지킴과 변화'에 대해 문화적이고 인문적인 성찰을 했다. 정갈한 우리 말들을 살린 빼어난 문장이 설득력을 높였다. 사라져 가던 남도의 판소리를 되살려낸 것도 그의 공이라고 사람들은 말한다.

엮고 펴낸 이들은 그의 글들이 "삼십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고 흥미롭다"며, 눈앞의 이익을 좇는 우리 사회에 삼십년 전 한 문화인의 사유를 던지자는 것이라고 출판의 의미를 새겼다. 한씨가 만든 잡지들의 편집장, 주간 등을 지낸 윤구병, 김형윤, 설호정씨가 함께 엮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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