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용교육' 현장을 가다](6)캐나다-소수인종을 보듬는다

2007. 11. 20.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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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등 국민은 없다" 소수언어 적극 보호·교육

지난 9월14일 오후 2시.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 남쪽의 카흐나와키 마을의 문화센터 교실. "한국에서 온 신문기자입니다. 잠깐 인터뷰할 수 있을까요?" 30~40대의 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취재 내용에 대해 간단히 설명했다. 학생들은 여전히 고개만 끄덕일뿐 말을 하지 않았다. 갑자기 한 학생이 엉거주춤 서 있는 내 손을 잡고 교실 밖으로 끌고 나왔다. 그러더니 영어로 "교실에서는 영어를 못쓰게 되어 있어요"라고 말했다. 제니퍼 제이콥스(33·여)라는 이름의 이 학생은 요즘 이 곳에서 새로운 언어를 배우느라 바쁘다. 바로 그의 모국어인 모호크어다. 매일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이어지는 이 곳의 수업은 일종의 '이머션 프로그램'(Immersion Program)이다. 언어, 문화, 역사 수업을 모두 모호크어로만 진행한다. '이머션 프로그램'은 1960년대 캐나다에서 영어 사용자들에게 불어를 자연스럽게 가르치기 위해 처음 시작한 2중언어 사용 프로그램이다. 영어, 수학, 과학 등 교과목을 불어를 사용해 지도하며, 단지 불어 교육에 초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교과 교육에 초점을 두는 교수 방법이다.

"한국인들이 영어를 배우기 위해 캐나다에 많이 온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한국의 학교 교실에서는 영어로만 말해야 하는 수업도 있다지요? 하지만 그 점은 알아야 합니다. 그렇게 영어에 집착하다가는 언젠가 우리처럼 될 수 있다는 것을."

제이콥스는 캐나다 퍼스트네이션과 이누이트족 등 선(先)주민(원래부터 캐나다에 살던 주민)들의 언어는 모두 600여개였지만 지난 3~4세기 동안 영어와 불어에 밀려 3개 정도만 남고 모두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모호크어는 거의 사멸한 다른 언어들과 달리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보존돼 있지만, 30~40대 가운데 일상어를 구사할 수 있는 이는 드물다.

제이콥스는 여기서 배운 모호크어로 자녀들을 가르친다. 언젠가는 정규 학교의 모호크어 교사가 되고 싶어 한다.

"우리는 우리 언어를 다 잊은 채로 성인이 됐어요. 어릴 때는 우리 것은 열등하고 유럽에서 건너온 사람들 것만 우수한 줄 알았어요. 그러나 뒤늦게 우리 언어를 배우다보니 독특한 정체성을 깨달을 수 있었어요. 그들과는 다른 우리의 존재를 항상 느껴왔는데, 그게 무엇인지 잘 모르다가, 언어를 배우면서 알게 됐어요. 그래도 우리는 캐나다인이라는 정체성 또한 갖고 있어요."

또 다른 학생 타미 투 엑스(39·여)는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모국어를 배운다"고 했다. "나이 든 사람들, 우리 것을 잘 아는 사람들은 이제 서서히 죽어가는데, 우리마저 우리 언어와 문화, 역사를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라는 존재는 그냥 사라지는 거죠."

모호크족처럼 캐나다 내 소수인종들이 자신의 언어를 중요하게 다루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 일이다. 19~20세기 기독교 학교를 중심으로 캐나다 선주민들을 동화시키려는 목적으로 '레지덴셜 스쿨(일종의 기숙학교)'이 전국적으로 보급됐다. 선주민들의 자녀들은 이곳에 감금되다시피 하면서 영어 구사자, 기독교도, 정착민이 될 것을 교육받았다. 레지덴셜 스쿨로 상징되는 동화 교육의 폐해가 백일하에 드러난 것은 90년대 들어서다. 이 학교들 내에서 선주민 학생들에 대한 체벌과 성적 학대가 상시적으로 이뤄졌으며, 교사들에 의한 문제학생 살해가 있었다는 고발이 잇따랐다. 결국 캐나다 정부는 '과거사 청산'을 방불케 할 정도로 피해자 보상책을 마련했으며 동화교육 정책도 다문화교육으로 선회했다.

카흐나와키 교육센터의 교육서비스 국장 에드워드 크로스(58)는 "소수인종 교육의 자율성은 그들의 끊임없는 요구와 피땀에 의해 쟁취한 것입니다. 동화정책만으로는 조화로운 사회에 도달할 수 없다는 주장이 득세했습니다. 논쟁이 계속되고 있지만 대체로 소수인종의 문화를 존중하고, 그들의 것을 살려주는 것이 캐나다 사회를 진정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견해가 우위를 점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소수인종이 자신들의 커뮤니티끼리 단결함으로써 다른 캐나다 사회에 배타성을 갖는 것이 아니라, 자긍심을 갖고 그 사회에 동참할 수 있도록 한다는 뜻이다.

크로스는 "'캐나다적'이라 하면 곧 다문화성, 다양성을 이르는 정도가 된 것"이라고 했다. 이는 갈수록 출산율이 떨어지는 캐나다 사회에서 유일하게 높은 출산율을 보이고 있는 소수인종과 이민자 집단이 영어 또는 불어권 커뮤니티 내에서 주변인으로서만 기능할 경우 캐나다 사회 자체가 유지되기 어렵다는 판단도 한몫했다. 소수인종 교육 프로그램을 계발, 제공하고 있는 몬트리올 맥길대학교의 도나 리 스미스 교수(58)는 "한 사회 내의 소수언어가 그들 커뮤니티 내에서 전승되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은 어떤 시혜라기보다 바로 그 사회 내 주류 구성원들 자신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결혼 이주여성과 이주노동자 등 외국인 거주자 100만명 시대를 맞은 한국사회는 이들을 동화시키기 위해 한국어 교육에 골몰하고 있다. 이민자들이 자신의 것을 스스로 지키려는 것을 방해하지는 않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카흐나와키(퀘벡)|손제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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