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의 땅, 개성공단]불안과 우려에서 희망과 안정의 땅으로

2007. 11. 28.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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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2004년 3월 개성에 왔다. 땟국 묻은 국방색 누비옷을 입고 색 바랜 목도리로 머리를 싸매고 흙길을 종종거리며 오고 가는 북쪽 사람들을 생경하게, 안타깝게 바라보던 때가 엊그제 같다. 우리가 먹을 음식을 준비하던 북측 처녀들이 처음에는 긴장한 눈빛으로 우리를 바라보기도 했다. 북녘 여성들은 "토지공사에 배치받을 때 남한 사람을 어떻게 대할지 앞이 깜깜했다"고 술회하곤 했다. 이곳에서 남쪽과 북쪽 사람들 모두 그렇게 낯설음과 두려움을 갖고 첫 대면을 했다. 별빛 내리는 밤에 휴전선에서 대북방송으로 내보내는 유행가와 뉴스가 더 친근하고 반가웠다.

새벽에는 북쪽 마을의 스피커에서 울려나오는 북쪽 방송에 잠을 깨기도 했다. 숲에서, 어둠 속에서 남과 북이 겨누고 있을 총구가 아니더라도 국경선의 공기는 늘 긴장감이 묻어난다. 산 능선을 따라 부라리고 있는, 남북의 감시 불빛은 긴장감의 실체이기도 했다. 북쪽 마을의 스피커에서 나오는 북쪽 방송에 잠을 깨는 것은 잠재된 불안감이었다. 이곳의 산야는 내게 늘 진한 피로감을 주고 나를 한없이 고단하게 했다. 한 여름이 되어도 곳곳에 산야는 맨살을 드러내고 있다. 여름의 보드란 황토색 토양조차 비에 씻기고 바람에 날려갔는지 지금은 무겁고 거친 모래만 남아 있다. 남쪽 공기가 그리웠다.

그렇다고 해도 북녘땅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다. 이 곳엔 정 깊은 사람이 많다. 한참 꽃 피어나는 젊은 처녀도 있다. 소박한 실무가도 있고, 한 삽 한 삽 말없이 삽질만 하는 노동자도 있다. '나의 살던 고향'으로 시작하는 '고향의 봄'을 공사장에서 부르며 일하는 노동자도 있다. 절도 있는 군인도 있다. 하지만 북측 사람들과 일하면서 느낀 점은 서로 다른 문화에서 오는 이질감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어느 남쪽 근로자가 말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군사분계선을 넘어서면 타임머신을 타고 새로운 세계에 온 듯하다"고. 남쪽이 청동기 시대면 북쪽은 석기시대였다. 남쪽이 정글이면 북쪽은 사막이었다. 남쪽이 한낮이면 북쪽은 한밤중이었다. 극단적인 비유일까? 그만큼 북쪽 땅의 모든 것은 남쪽 사람들을 너무나 당황스럽게 한다. 남과 북 사람들의 생각이나 감정의 차이는 어떤 면에서는 환경만큼이나 차이가 두드러지고 어떤 면은 너무나도 같다. 같은 민족이라는 동질감에 마음을 열었다가도 소위 말하는 이념 때문에 돌변할 때는 찬물을 온몸에 뒤집어 쓴 듯 정신을 차리게 된다. 이런 것인가, 이것이 한계인가. 정말 이렇게밖에 안 되는 것인가! 안타깝다. 이념처럼 사람을 고지식하게 만드는 것도 없다. 공산주의 이념은 인간성에 반한 이상이기에 순수 공산주의를 주장하자면 교조적으로 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피는 이념보다 강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지내고 있다. 남북한 근로자들은 가끔 서로 얼굴을 붉히며 싸우기도 한다. '재미없는' 농담에 배를 움켜쥐고 웃기도 한다. 그렇게 점점 남과 북은 가까워지고 있는 듯하다. 말싸움으로 어색해진 사이를 좋아하는 음식으로 풀기 위해 갖은 솜씨를 다해 음식을 해주는 북측 처녀와 미안한 마음에 생일 선물을 챙겨주는 남측 사람들, 추운 날 따뜻한 국물로 북측 근로자의 마음을 녹이는 남측 근로자까지 우리 민족은 그렇게 서로 다가가는 것이다. 적어도 개성공단에서만큼은 '통일이 멀지 않았음'을 느껴가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만 변한 게 아니다. 물기 하나 없던 도랑에서 물살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어엿한 시냇물로 변한 것이다. 우리가 남쪽에서 옮겨와 심은 나무 위에 재잘대는 새가 보이기도 한다.

분단의 아픔을 아물게 하는 개성

내가 근무하는 현장은 북방한계선에서 2㎞ 남짓 떨어진 곳이다. 북쪽의 기정동 마을과 남쪽의 대성동 마을이 인접하고 있다. 인공기와 태극기를 하늘 높이 휘날리며 마주하고 있는 장면이 눈앞에 펼쳐진 곳이다. 이곳 전선마을은 밤이면 남쪽의 대북 선전방송이 큰 확성기를 통해서 나오기도 하고 남방한계선을 따라 이어진 불빛이 인상적인 곳이기도 하다. 분단과 대치의 현실을 실감나게 하는 역사적인 현장이다.

바람이 불면 대성동의 태극기와 기정동의 인공기가 같은 방향으로 나부낀다. 이념의 높은 촛대와 순리라는 자연현상을 동시에, 순식간에 생각하게 된다. 덩샤오핑이 말하지 않았는가. "먹을 것을 가진 자가 결국 모든 것을 가진 것이다"라고. 그것이 현실이다. 아니 그것이 목표가 되고 있다. 숱한 탐구와 자문과 자답, 그렇게 개성 땅에서 고민하면서 실천하여 결과물을 하나씩 얻어낼 때마다 확신한다. 중요한 것은 의지와 정성 그리고 확신이라고. 지금은 남쪽의 상식이 북쪽에서는 상식이 아니지만, 남과 북의 모든 사람이 같은 상식을 공유할 날이 오겠지.

가끔 1단계 공사구역을 걸으면서 남쪽 땅을 쳐다본다. 서울의 북한산이 보였다. 섬뜩했다. 눈 아래에 서울 땅이 보이는 것이다. '서울이 이렇게 가까운가?'라는 새삼스러운 생각이 든다. 수도 이전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구상한 1970년대 후반에 옮겼어야 했다는 생각이 든다. 북에서 저렇듯 가까운 곳에 남쪽 경제와 인구의 절반이 집중되어 있다는 데 겁이 났다. 이런 지리적 형국에서는 남쪽은 극구 전쟁을 피해야 하겠고, 북쪽이 이러한 남쪽의 취약함을 무기삼아 별소리를 다해도 남쪽은 받아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오래전부터 남쪽의 위정자들은 수도 이전, 아니 수도 이전이 아니더라도 수도권 집중만은 막았어야 했다. 북한이 기습남침을 할 수 있는 최고의 루트라고 알려진 이 지역 6600만㎡를 개방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개성공단이 성공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안보적 완충지대를 설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개성 땅에 들어선 아담한 한국토지공사 개성공업지구 개발사무소가 완충기능의 중심이다. 우리 민족의 반세기 분단 역사가 새로운 길로 접어들고 있는 이정표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우리는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그러나 진지하게 한발 한발 나아갈 것이다. 새벽 찬 공기를 가슴 가득하게 담으면서 개성공단 개발지를 가로질러 간다. 남쪽 산야도 보고 북쪽 산야도 본다. 다같이 우리가 느껴야 할 산야고 소중하게 보듬어야 할 국토다.

개성이란 곳은 밤이 되면 더욱 적막하다. 투명하기만 한 공기, 소리 없는 대지의 침묵은 한없는 적막감을 안겨준다. 이곳의 적막은 고향의 향수처럼 아름답기도 하지만 슬프기도 하다.

개성지사 사옥에 세로로 길게 걸린 '경제협력사업 초석 개성공업지구 정성으로 완수하겠습니다'라는 현수막이 조명 빛으로 나를 내려다보며 이곳이 "개성공업지구입니다"라고 읊조리고 있는 듯하다.

내가 개성에서 근무했던 날들은 내 인생에서 가장 뜻 깊은 날들로 기억될 것이다. 내가 머문 이곳과 이곳 사람들의 제도, 환경, 습관 등에서 목까지 차오르는 답답함(한계에 가까운 극단적인 절망을 느끼는)에 힘든 날도 많지만, 그것은 극복해야 할 과정이고 풀어내야 할 과제일 뿐이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더 개성에서 근무한 날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이곳에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사람에 대한, 자연에 대한 내 인식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곤 했지만 그것이 무위한 혼란만은 아님을 나는 안다.

신재용〈한국토지공사 개성사업처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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