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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창] 조심하십시오 / 박수정

입력 2007. 12. 07. 19:11 수정 2007. 12. 07.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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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상상해 보았는가. 하루아침에 30∼300% 오른 수도요금과 한 달 소득에서 25%를 물세로 내는 일을. 빗물을 받아두는 걸 법으로 금지하고, 먹는 물이 안전하지 않아 늘 사먹어야 하는 일을. 몇 해 전 볼리비아 코차밤바 사람들이 겪은 일이다.

1999년 세계은행은 볼리비아 정부에 돈을 빌려주면서 수도국을 민영화하고 초국적 기업에 관리를 맡기라고 했다. 볼리비아 정부는 미국 초국적 기업인 벡텔과 계약을 맺었다. 코차밤바 물을 40년 동안 민간위탁한다는 내용이었다. 도중에 파기할 수 없다는 단서도 달렸다. 벡텔만이 승자가 되는 물관리법안을 의회가 통과시키자 코차밤바 사람들은 물세를 내든지 굶든지 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정치가, 세계은행, 초국적 기업이 '모두가 주인이면서 아무도 주인일 수 없는 물'을 놓고 마음대로 권리를 정하고 거래하자 사람들은 분노했다. 물세를 내지 않고 밥을 먹기를 선택했다. 물이 필요한 모든 생명, 사람·동물·식물·땅·돌 그리고 미래에 올 사람들을 살리기를 선택했다. "돈을 투자한 만큼 이득을 얻으려고 만년설, 산, 강, 지하수, 저수지, 호수까지 상품으로 만들" 초국적 기업에 맞서, 멋대로 결정을 내린 정부에 맞서 싸우기를 선택했다. 물은 땅에 흐르는 피이고, 어머니 대지가 준 선물이기 때문이다.

코차밤바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체결한 계약과 물관리법안 내용이 무엇인지 '정보'를 찾아내어 사람들에게 '알렸다'. 다섯 명으로 시작한 물 사유화 반대 투쟁은 쉰, 백, 백만으로 늘었다. 모두가 대표이자 지도자였다. 거리로 '나오고', 십만 명이 한자리에 모여 '공동회의'를 하고, 서로 '조직'하고, 벡텔이 없어도 충분히 스스로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 관리할 '대안'을 마련했다. 총구도 두려워하지 않고 정부와 벡텔을 '압박'해 마침내 2000년 4월 빼앗긴 물을 되찾았다. 물길은 제 길을 찾아 흘렀다.

지난 5일 전국공무원노조와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가 주최한 '볼리비아 코차밤바 물투쟁을 이끌었던 오스카르 올리베라 초청강연'에서 들은 이야기다. 오스카르 올리베라는 구두공장 노동자 출신으로 노조 활동가이자 '물과 생명 수호위원회' 대변인이다. 강연장에 준비해 놓은 탁자와 의자를 마다하고 긴 시간을 서서 이야기했다. 코차밤바 투쟁에서 많은 사람들이 영감을 얻었으면 좋겠다며 말머리를 열었다.

그이는 "조심하십시오", "두 눈 똑바로 뜨십시오", "경계해야 합니다", "노동자, 민중은 깨어 있어야 합니다"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물 사유화는 노골적인 방식이 아니라, 드러나지 않고 은밀하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수자원공사, 위탁계약, 공사협력, 공동투자, 국제협력'이라는 말을 앞세워 혼동시키기 때문이다.

코차밤바 사람들은 투쟁으로 물만 되찾은 게 아니다. 잃어버린 신뢰와 연대, 존중을 되찾았다. '조상 대대로 이어온 가치관'을 회복했다고 한다. 볼리비아는 남미 다른 나라에 비해 선주민 비율이 높은데 "우리가 누구일까. 어디서부터 왔는가. 무엇을 원하는가" 물으면서 빼앗긴 자신을 찾는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이들이 경험한 건 엉터리들이 대표로 결정하는 거짓 민주주의가 아니라 참 민주주의일 것이다.

"내가 노동자로서 배운 게 있다면 기관이나 단체, 우리 모두가 물처럼 투명하고 항상 흘러야 한다는 것이다. 물이 한 마을에 다다르면 기쁨이 넘친다. 우리는 슬픔의 세계를 극복하고 기쁨의 세계로 나아가야 한다." 마지막 말은 그대로 시다.

그런데 오스카르가 한겨울인 한국에 왜 왔을까. 초국적 물기업 1, 2위인 베올리아와 온데오는 벌써 한국에 들어왔다. 물산업 육성방안이라는 이름으로 시·도별로 곳곳에서 물 민간위탁이 추진된다. 지금 남원시민들은 상수도 민간위탁 반대투쟁을 한다. 코차밤바 주민들이 겪은 일을 아는데 다시 우리가 되풀이해야 할까. 하지만 행동하지 않으면 민중은 무시당한다.

박수정/르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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