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장 짓는다고 문화재 갈아엎는 나라

입력 2008. 4. 30. 23:55 수정 2008. 4. 3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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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당진 고려 유적 발굴지에 포클레인 투입

ㆍ정부 규제완화 발표 하루전 무차별 훼손

문화재 발굴 탓에 공장 설립이 늦어진다며 사업시행자가 발굴현장을 포클레인으로 갈아엎어 고려시대 문화재가 송두리째 사라졌다.

문화재 발굴기관인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지난 29일 오후 2시쯤 충남 당진군 신평면 한정리 ㅅ정공 공장 건립부지에 대한 문화재 조사를 하고 있는 과정에서 회사 측이 고려시대 석곽묘 4기가 노출된 현장을 포클레인으로 갈아엎었다"고 밝혔다.

이 과정에서 회사 측은 훼손 모습을 촬영하는 조사원들의 카메라를 빼앗기도 했다.

이와 관련, 문화재청은 이 회사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발조치할 예정이다. 강정원 책임조사원에 따르면 발굴단은 이날 오전 고고학 발굴 원칙에 따라 고려시대 고분에 대한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이 회사 회장 ㅂ씨가 "발굴 속도가 왜 이리 느리냐. 왜 호미로 긁고 있느냐"고 항의를 거듭했다는 것이다. 조사단은 유구가 훼손될 수도 있어 유구에 있던 나무뿌리를 살린 채 작업하고 있었다. 발굴단에 따르면 ㅂ회장은 오후 2시쯤 포클레인을 동원, 나무뿌리를 뽑아냈고, "별 것 없네" 하면서 밑에 있는 유구까지 파헤쳤다. 이로 인해 고려시대 석곽묘 4기가 사라지고 말았다.

정부가 문화재 발굴 기준 완화 방침을 세운 가운데 벌어진 이번 사건은 최근 문화재 발굴을 둘러싼 갈등을 그대로 노정시켰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정부 규제완화 발표가 있기 전인 29일 문화재청은 ㅅ정공 공장 건립부지에 대한 문화재 조사가 늦어진다는 언론 보도에 따라 "되도록 빨리 조사를 진행하라"는 지시를 현장에 내렸다.

이에 따라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측도 다른 연구기관의 인력까지 빌려와 이날 발굴조사를 서둘렀지만, 회사 측이 문화재를 갈아엎은 것이다. 이훈 충남역사문화연구원 연구실장은 "비영리기관인 발굴기관은 중복 발굴을 할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한 팀이 두 곳 이상의 발굴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서 "그런 상황에서도 빨리 조사하도록 노력했지만, 불행한 일이 벌어졌다"고 안타까워했다.

이건무 문화재청장은 "일벌백계 차원에서라도 경찰에 고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문화재를 전봇대 취급하는 해당 업주의 무지와 문화재 발굴조사를 무력화시키려는 정부의 개발위주 정책이 빚은 테러"라고 규정했다.

한편 회사 고위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5월 말까지 인천공장 부지가 인천시에 수용되고, 수출 물량을 납기일에 맞춰야 하는 사정이 있다"면서 "회사는 돌 몇개가 있는 것이 과연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지 의심스러웠으며, 그 과정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우리 공장부지에서 나온 유물이 회사 소유가 되는 것도 아닌데 왜 발굴비용 일체를 우리가 대야 하느냐에 대한 불만도 있다"고 말했다.

<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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