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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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연행과 처벌로는 촛불집회 막지 못 한다

입력 2008. 05. 25. 22:01 수정 2008. 05. 25.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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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설

서울 청계광장에서 계속돼 온 촛불집회의 양상이 바뀌고 있다. 모임이 횟수를 더하면서 참가자와 이슈가 다양해진 데 따른 결과로 볼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17차 촛불문화제'가 열린 24일 밤에는 수만명이 참석했다. 이 가운데 수천명은 청계광장을 벗어나 청와대 쪽으로 행진을 시도했고, 경찰은 어제 새벽 이들을 강제해산시키고 수십명을 연행했다. 일부 집회 참가자는 그제에 이어 어제도 심야 모임을 이어갔다. 이런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집회 참가자와 경찰 사이의 충돌이 되풀이해서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경찰은 연행자들 가운데 '불법행위 주도자'를 가려내 구속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경찰이 말하는 불법행위란 교통방해, 미신고 집회, 폭행 등이다. 하지만 집회 참가자들의 이날 행진과 도로 점거가 우발적으로 이뤄진 점을 생각하면 경찰의 이런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을 가진 자발적 집회 참가자 중에서 주도자를 어떻게 찾겠다는 말인가. 경찰의 강경 방침은 실효성도 없으면서 집회 참가자들을 자극할 가능성이 많다. 경찰은 어제 집회를 해산시키는 과정에서도 상당히 과격한 행태를 보였다.

집회 참가자들 역시 질서 있게 모임을 진행할 필요가 있다. 집회 참가자들의 주장은 과거 어느 때보다 충실하게 국민에게 전달되고 있다. 청와대 쪽으로 진출한다고 해서 집회 효과가 더 높아진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다가 만에 하나 유혈사태라도 생긴다면 집회의 본뜻이 본의 아니게 왜곡될 수 있다. 민주사회는 우여곡절을 겪더라도 결국 여론에 따라 움직인다. 여론의 지지를 키울 수 있는 집회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는 얘기다. 물론 정부가 평화 집회를 방해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된다.

더 중요한 것은 이번처럼 경찰력이 직접 행사되는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정부가 집회 참가자들의 뜻을 충분히 수렴해 정책에 반영하는 일이다. 촛불집회는 정부의 실정에 항의하는 최소한의 자발적 의사표현일 뿐이다. 집회가 이렇게 오랫동안 계속될 수 있는 것은 국민 다수가 이들과 생각을 함께하고 있기 때문이다. 옛말에 '근본이 서면 나아갈 길이 생긴다'고 했다. 정부가 지금 깊이 새겨야 할 말이다. 어제와 같은 연행과 처벌에 기대서는 촛불집회를 막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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