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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귀에 경읽기 정부' 촛불 키웠다

박관규 기자 입력 2008. 06. 02. 02:50 수정 2008. 06. 02.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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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심 외면한채 책임 회피만

중고등학생의 순수한 움직임에서 시작된 '촛불집회'가 정파적 이해가 갈린 어른들의 분위기 험악한 집회로 변해가고 있다. 시민들의 일관된 요구에 정부가 귀를 막고, 이에 따른 민심 이반을 정치권이 이용하면서 당초 이슈였던 '미국 쇠고기 안전성'은 뒷전으로 밀린 채 촛불집회가 반정부 운동으로 비화하고 있다.

촛불집회가 처음 열린 것은 지난달 2일. '공기로도 전염된다' 등 허무맹랑한 주장을 믿는 것은 잘못이지만, 이날의 주역은 진심으로 광우병 위험을 걱정한 중고등학생이었다.

당초 참가자는 300여명 가량으로 예상됐으나, 실제로 모인 사람은 10대 중고생을 중심으로 1만5,000여명에 달했다. '미국 쇠고기 반대', '이명박 대통령 탄핵' 등의 구호가 나왔으나, 집회는 오후 10시께 경찰과의 충돌 없이 끝났다.

촛불집회는 정부의 거만한 대응으로 확대됐다. 시민들은 노무현 정권에서 '미국 쇠고기는 위험하다'던 관료들이 이명박 정부에서는 '안전하다'고 말을 바꾸는 등 국민을 우롱하는 것에 화가 났는데도, 정운천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은 5월7일 핵심은 외면한 채 '광우병 위험이 부풀려졌다'는 점만 강조해 민심 이반을 초래했다.

고위 관료의 국민을 책망하는 발언은 5월8일 전국 1,500여개 단체가 '미국 쇠고기 수입을 반대하는 대책회의'를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중고생 위주였던 집회는 이날부터 성인 위주의 조직적 집회로 성격이 바뀌고 5월말까지 매일 3,000~4,000명이 참가한다.

이후에도 정부는 촛불을 끌 수 있는 기회를 번번이 놓쳤다. 대표적인 게 5월22일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다. 이 대통령은 '자신의 불찰'이라고 사과했으나, 협상 책임자 문책 등 구체적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진정성 없는 대통령에 실망한 듯 이날 집회에는 이전 며칠간의 집회(평균 3,000명)의 3배 규모인 1만여명이 몰렸다.

촛불집회가 금지된 선을 넘기 시작한 것은 5월24일이었다. 집회 참가자 일부가 도심 거리로 나선 것이다. 참가자들은 평화시위라고 주장했지만, 경찰은 도로교통법을 위반했다며 시위자 일부를 연행했다.

일부 참가자 연행에도 불구, 30일까지 비폭력ㆍ평화 분위기를 유지했던 집회는 31일을 고비로 험악해지기 시작했다. 정부가 29일 장관 고시 발표를 강행하고, 야당이 장외투쟁을 선언하면서 서울도심에서 4만여명이 다음날 새벽까지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촛불집회로 연행된 사람은 1일 현재 468명에 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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