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시론―박세직] 현충일과 노블레스 오블리주

입력 2008.06.05. 17:43 수정 2008.06.05.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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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시에는 아들이 아버지를 땅에 묻는다. 전시에는 아버지가 아들을 땅에 묻는다.'

전쟁과 평화를 이처럼 극명하게 대비한 말이 또 있을까? 역사는 전쟁의 연속이었다. 인류역사상 지구상에서 총성이 사라진 시기는 비스마르크 시대 30여년에 불과하다. 19세기 이후만 하더라도 제1차 세계대전에서 840만명의 군인이 전사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1400만명이 사망했다. 이후에도 150여차례의 크고 작은 내전이 있었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반만년 역사 동안 930여차례 외침을 받았고, 6·25전쟁에서만 100만명의 군인이 희생되었다.

전쟁이 인간에게 주는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참담하다.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는 전쟁에 패한 나라의 국민들이 당해야 하는 고통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얼어죽고 있는 수많은 장졸들, 굶어죽고 있는 말들, 가마니 한 장을 풀어 얼어죽어 가는 병사에게 덮어주어야 할 것인가, 말에게 먹여야 할 것인가? 대신들은 왕 앞에서 언쟁을 벌인다. 독자의 가슴은 미어지고, 눈에는 피눈물이 맺힌다.

전쟁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전쟁은 불가피하게 일어난다. 전쟁이 일어나면 제일 먼저 지도층이 전쟁터로 뛰어들어야 한다. 영국에서는 1, 2차 세계대전 중 지도층 자제들만 입학하는 이튼칼리지 졸업생 2000여명이 전사했다. 앤드류 왕자는 포클랜드 전쟁 때 조종사로 참전했고, 해리 왕자는 최근 아프가니스탄 전투지역에 참전했다.

미국은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의 네 아들이 제1차 세계대전때 참전했고, 그 중 막내 쿠엔틴은 독일군과의 공중전에서 장렬하게 전사했다. 시력이 좋지 않은 쿠엔틴은 시력검사판을 모조리 외워 육군항공단 조종사가 되었다고 한다. 6·25전쟁 때는 미군 현역장성 아들만 142명이 참전하여 35명이 사망 또는 부상했다. 한국전 당시 미8군사령관이었던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의 아들도 전사자 중 한명이다.

마오쩌둥 아들 역시 6·25 전쟁에 참전하여 미군폭격으로 전사했다. 마오쩌둥은 시신을 송환하겠다는 보고를 받고, 자기 아들만 데려올 수 없다며 시신을 "조선에 묻어라"고 지시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떠한가? 6·25 전사자 명단에서 고관대작들의 아들 이름을 찾아보기 힘들다. 혹자는 말한다. 정부가 국군포로를 데려오는 데 무관심하고, 6·25 참전용사들을 홀대하는 것은 자기 자녀들이 그곳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쟁이 끝나면 전사자는 호국의 일등공신으로 추앙받아야 한다. 살아 돌아온 자는 전쟁영웅으로 우대받아야 한다. 포로 송환과 유해 발굴은 정부가 최선을 다해야 할 과업이다. 그래야 유사시 젊은이들이 전쟁터에 뛰어들려 할 것이다. 결코 전쟁을 두려워하지 않는 국민적 분위기 만이 전쟁을 막을 수 있다. 전쟁의 유령은 오직 전쟁을 각오하고 전쟁에 대비하는 사람들만을 피해가기 때문이다.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의 현충탑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가신 임들이 누워계신 곳이야 해와 달이 보호하겠지만, 이 분들의 숭고한 얼을 계승하는 것까지야 해와 달에게 맡길 수는 없지 않는가! 임들의 후손을 잘 돌보고 튼튼한 국방태세를 유지하는 것은 살아남은 우리들의 당연한 책무다.

박세직 재향군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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