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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운동장 재떨이까지 뜯어왔습니다"

입력 2008. 06. 09. 06:51 수정 2008. 06. 09.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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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체육시설관리소 '문화재' 모두 수거

(서울=연합뉴스) 김태식 기자 = 82년 역사의 동대문운동장이 사라졌다. 그 터에 디자인플라자를 세우고 서울성곽을 보관하기 위해 야구장과 축구장이 이미 철거가 완료됐거나 철거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동대문운동장이 그냥 사라지지는 않았다.

이를 무대로 펼쳐진 한국 근현대사의 생생한 장면을 증언하는 각종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동대문운동장 운영주체인 서울시체육시설관리사업소 김재정(金在貞.52) 소장은 철거에 앞서 "유물이 될 만한 것은 하나도 버리지 말고 무조건 챙기라"는 지침을 내렸다.

이렇게 해서 폐자재로 사라질 뻔한, 아니 더 정확히는 그렇게 버려도 상관없는 무수한 동대문운동장 '쓰레기' 한 트럭 분량 이상이 동대문운동장에서 잠실올림픽경기장의 보관 창고로 옮겨졌다.

이미 오래 전에 유행이 지난 TV 수상기나 도트 프린트, 풍향계는 말할 것도 없고, 각종 서류뭉치와 도면 자료, 걸개 그림을 비롯해 매표박스, 신문 스크랩, 그리고 재떨이까지 포함돼 있다.

동대문운동장 유물 중에서 서울역사박물관 수장고로 간 것은 간판이 유일하다.

마지막 동대문운동장운영사무소장을 지낸 김명중 사업소 재산관리팀장 역시 '고물 수집 취미'가 있는 데다, 자칫하다간 운동장 관련 자료가 모두 영영 사라질 것을 우려해 유물이 될 만한 것들은 모두 수집하는 일을 현장 지휘했다.

김 팀장이 건진 유물 중 특히 애지중지하는 것은 휴대용 사이렌. 상표를 보니 일본산이었으며, 언뜻 그 역사가 반세기 이상은 될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고물 티가 났다.

신기한 것은 수동인 이 사이렌 손잡이를 돌렸더니 지금도 생생한 소리를 낸다는 사실이었다.

동대문운동장 '고물' 창고로 안내한 김 소장은 "혹시나 도움이 될까 해서 닥치는 대로 모아두었는데 저런 서류 뭉치 속에는 내가 봐도 귀중한 사진자료들이 많은 것을 보고는 이렇게 갖다 놓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는 줄곧 아마추어라고 강조했지만, 서울시 공무원으로 산하 역사박물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데다, 일본 전통목판화인 우키요에(浮世繪)를 보고는 "이것이 바로 프랑스 인상파를 낳은 일본 미술품"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정도로 역사와 미술에 조예가 깊었다.

김 소장은 "유물은 지금 당장 가치 있는 것과 미래에 가치가 있을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동대문운동장 자료들은 아마도 후자에 속하지 않을까 한다"면서 "우리 민족은 조선말기까지만 해도 기록을 잘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났지만 요즘은 기록을 너무 홀대하는 듯하다"는 평가도 덧붙였다.

동대문운동장에서 살아남은 자료 중에서 사진은 특히 사료적 가치가 높은 것들이 많았다. 개중에는 1926년 일본 와세다대학 농구단 기념촬영 사진이 있었는데 그 속에는 대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을 역임한 한국체육계의 거물이자 한국 사회학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고 이상백 박사가 선수로 들어가 있었다.

또 이범석 장군 영결식 장면을 담은 사진도 발견됐다.

김 소장은 "동대문운동장은 1920년대에는 그냥 운동장만 있었을 뿐이고 스탠드와 같은 주변 시설은 1950년에 지었다"면서 "당시만 해도 공공행사를 치를 만한 장소가 얼마되지 않은 까닭에 동대문운동장이 그런 곳으로 자주 이용됐으며, 이 사진들은 아마도 그 과정에서 촬영된 것일 듯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김 소장이 긁어모은 동대문운동장 '유물'은 조만간 청계천문화관이 일제 조사를 벌여 유물로 등록하는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http://blog.yonhapnews.co.kr/ts1406/

taeshi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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