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기](다산칼럼) 러시아가 달라졌다

2008. 7. 25.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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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서울대 교수·경제학>

1992년의 러시아와 2008년의 러시아는 너무 달랐다.

1992년,처음 러시아에 도착했을 때 "도대체 어떤 체제가 사람들을 이렇게 비참하게 만들어 놓았단 말인가"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도로변에는 낡은 차들이 먼지를 가득 덮어쓴 채 뒹굴고 있었다.

빵을 사기 위해서 2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음식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노인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지하철 주변에는 집에 있는 온갖 것들을 가지고 나와 이를 팔아서라도 생계를 유지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절망과 공포가 뒤덮여 있었다.

러시아인 특유의 무뚝뚝함은 여전하지만 이제 사람들의 얼굴에는 생기가 돌고 행동에는 여유가 배어 있다.

16년 전 차가 없어 텅 비었던 모스크바 도로에는 이제 서울을 방불케 하는 교통체증이 발생하고 있다.

시내 외곽에는 많은 수의 대형 마켓이 생겨 전자제품,의류,식료품,고가품 등을 팔고 있다.

돈이 있어도 살 물건이 없었던 '소비재 부족의 경제'가 이제는 물건은 많은데 돈이 모자라는 '화폐 부족의 경제'로 바뀌었다.

아니 지금의 러시아는 돈도 많은 경제이다.

고유가 덕분에 외환보유액은 세계 3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유가가 배럴당 27달러 이상이 되면 그 차액의 80%를 세금으로 거두고 안정화 기금으로 적립한다.

외환보유액과 이 안정화 기금을 합치면 규모가 700조원에 이르러 일본 외환보유액의 70% 수준에 달하며 한국 외환보유액의 3배에 약간 못 미친다.

파이낸셜 타임스(FT)가 분류한 세계 500대 기업에 한국 기업은 5개가 포함된 반면 러시아 기업은 13개가 들어 있다.

2008년도 1분기의 경제성장률도 6.5%에 달해 칼날 끝에 서 있는 세계 경제 위기설을 무색하게 하고 있다.

러시아의 성취 이면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기도 하다.

빈부격차가 극심해 아직도 러시아인의 13%가 월수입 150달러 이하의 빈곤층인 반면 포브스가 2008년 확인한 1125명의 세계 부호 중 러시아인은 87명으로서 독일(59명)과 일본(24명)을 합친 수보다 많다.

러시아의 고질적인 문제인 부패는 여전하다.

모스크바에서는 하루 숙박료가 200달러를 밑도는 호텔을 찾기 어렵다.

아마 호텔 건립과 유지를 위해 부패한 관리에게 뿌려야 하는 많은 돈이 포함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 젊은이들은 '성공의 기회'를 제공하는 자본주의를 좋아한다.

사실 세계에는 나쁜 자본주의도 있지만 좋은 자본주의도 많다.

그러나 좋은 사회주의는 역사적으로 그 예가 없었다.

러시아는 체제 이행의 잔인하고 길었던 터널을 이제 막 통과하는 중이다.

한동안 러시아의 경제 규모는 이행 이전에 비해 절반으로 줄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국내총생산(GDP)은 체제 이행 초의 수준을 회복했으며 1992년 565달러였던 1인당 GDP는 이제 9000달러를 넘어섰다.

유가 상승,루블화 절상 효과에 기인한 바 크지만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택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완전한 서구적인 민주주의는 아니지만 그래도 작동하는 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누리고 있다.

러시아의 '성공적인' 체제 이행을 축하한다.

그리고 자유와 성장의 혜택을 누리는 젊은 세대들을 위해 체제 이행을 결단하고 희생을 감수했던 기성세대의 노고에 경의를 표한다.

그러나 러시아를 보면서 북한의 어두운 그림자가 중첩되는 것은 왜일까.

언제 북한은 자본주의로의 체제 이행을 시도할까.

그 어려운 과정에서 한국은 무엇을 해야 하며 지금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러시아에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많은 상념들이 교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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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식량난 해결하려면 시장경제 도입해야

▶ 해설

사회주의국가들이 계획경제에서 시장경제로 경제 체제를 바꾸는 것을 체제이행이라고 한다.

러시아 중국 베트남 같은 국가들은 모두 체제 이행에 성공했다.

동구권 국가들도 대부분 체제 이행에 성공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김병연 서울대 교수는 다산칼럼에서 16년 만에 방문한 러시아가 체제이행에 성공하고 있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 동포들이 살고 있는 북한도 하루빨리 체제 이행을 단행해 성공하기를 기원하고 있다.

체제이행에 성공한 러시아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공급 부족에서 공급 초과로 바뀌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소비자 부족의 시대에서 화폐 부족의 시대로 바뀌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소비자 부족이란 소비자들이 생활 필수품을 구입하고 싶어도 구입할 수 없는 상황을 의미하므로 공급 부족과 같은 말이다.

'16년 전 러시아 사람들은 빵을 사기 위해서 2시간 넘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음식을 찾아 쓰레기통을 뒤지는 노인들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지하철 주변에는 집에 있는 온갖 것을 가지고 나와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려는 사람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2008년 러시아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서울을 방불케 하는 교통체증이 발생하고 있고 시내 외곽에는 많은 수의 대형 마켓이 생겨 전자제품,의류,식료품,고가품 등을 팔고 있다'고 김 교수는 전한다.

공급부족 시대에서 화폐부족의 시대로 옮겨간다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삶의 질이 나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국가들이 시장경제로 체제이행을 하면 어떤 원리에 의해 공급 부족이 사라지는 것일까?

결론적으로 말하면 바로 시장의 힘 때문이다.

시장 경제는 노력에 대한 보상을 중앙정부가 아니라 시장이 해 준다.

사람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시장이 평가해 보상한다.

예를 들어 빵 공장의 직원들은 빵을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를 중앙정부가 아닌 시장(소비자)들에 의해 평가받는다.

계획경제에서 빵 공장은 목표량을 채우는 것이 가장 큰 목표다.

그래서 항상 빵 원료가 모자라는 현장이 빚어지고 (빵 공장마다 목표량을 채우기 위해 빵 원료를 많이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빵의 품질이 개선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반면 시장에서는 낮은 원가를 들여 높은 가격을 받아야 하므로 원료를 적게 사용하려는 유인이 생기게 된다. 생산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북한은 아직까지 체제이행에 나서지 않고 있다.

지난 2002년 7월 부분적으로 생필품 가격을 현실화하는 등 시장경제 요소를 도입했으나 계획경제의 골간은 아직 바꾸지 않고 있다.

북한이 만성적인 식량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장경제를 과감히 도입해야 한다.

박주병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jbpar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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