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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국 60주년] 당시 공무원이 전하는 1948년

입력 2008. 08. 14. 17:58 수정 2008. 08. 14.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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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을 맞은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건국(建國) 공무원'들의 소회는 남다르다. 면(面)서기, 초등학교 교사, 경찰관으로서 대한민국 건국의 산파역할을 했던 오억근(82)·이동순(87)·문인주(85)씨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신생국은 모든 것이 모자랐고 어설펐다.

건국 당시 경기도 안성군 양성면 면사무소는 명색이 관공서였지만 전화기가 없었다. 하루에 한번 군 사무소에서 다녀가는 사람 편으로 공문서를 주고받았다. 행정사무용품은 잉크, 먹물, 펜, 주판이 전부였다. 주민들에게 보내는 공지문은 원지(原紙)에 골필(骨筆·먹지를 대고 복사할 때에 쓰는 필기도구)로 글을 쓴 다음 등사해 만들었다. 공문서는 먹지를 끼워 2부를 작성한 뒤 1부는 보관했다. 1948년 2월부터 이곳에서 근무했던 오씨는 "전화는 우체국이나 주재소에만 있었다"며 "문서를 전달하기 위해 면사무소에서 마을까지 4㎞ 이상을 직접 걸어다녔다"고 회상했다.

학교에는 교사가 모자랐다. 배우려는 열기는 뜨거워 오전·오후반으로 나누어도 학생들은 한 교실에 90명이나 됐다. 46년 11월부터 충남 서산군 마산면 마산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이씨는 이런 사정 덕택에 사범학교를 나오지 않았지만 교사가 될 수 있었다. 국민학교(초등학교) 이후 3년제와 5년제 학교가 있었는데 지금의 고졸에 해당하는 5년제 졸업생들은 누구든지 교사가 될 수 있었다.

이씨는 "음악수업을 위해 방과 후 학교에 남아 다른 선생님들에게 풍금을 배우기도 했다"며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나도 배워나갔던 시절"이라고 회고했다.

위생, 녹화사업, 건축…. 지금은 지방자치단체에서 맡는 일이지만 당시엔 경찰이 이 모든 업무를 처리했다. 심지어 도로에 가로수를 심고 관리하는 것도 경찰 몫이었다. 가로수마다 '김 순경', '이 순경' 등으로 담당자를 정해두고 관리하게 했을 정도였다. 소방서가 없어 불이 나도 경찰이 출동했다.

46년부터 경찰에 몸담은 문씨는 "워낙 공무원이 부족했기 때문에 모든 업무가 경찰 중심으로 돌아갔다"며 "군 병력 동원도 경찰이 하다 보니 경찰에 대한 이미지가 나빠졌다"고 설명했다.

이들에게 이제 환갑을 맞은 대한민국사(史)는 기적이요, 드라마 그 자체다. 전쟁과 혁명, 쿠데타와 민주화 등 격동의 세월을 함께하면서 대한민국의 성장통을 지켜봤다는 자부심도 강하다.

교육행정직으로 자리를 옮겨 88년 6월 정년 퇴직한 오씨는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참 바쁘게 살았고 보람이 있었다"며 "혼란스러운 시기도 있었지만 이제 세계 10위권에 올라선 강국이 되었으니 국민들도 긍지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교직에만 40년 이상 몸담았던 이씨도 "간접적으로 대한민국 발전에 기여한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눈부시게 성장한 대한민국에 주문도 잊지 않았다. 문씨는 "찢어지게 가난한 나라에서 이만큼 살게 된 것은 주변국들의 도움이 컸다"며 "이제 우리도 베풀 줄 아는 나라가 되면 좋겠다"고 소망했다.

김원철 권지혜 기자 won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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