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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망치는줄 모르고 사교육 내몰아"

입력 2008. 08. 20. 15:31 수정 2008. 08. 2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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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국제중 실패' 엄마의 멍든 가슴

1년여 온갖 과외…남은건 '스트레스성 장애'

서울 설립 추진에 "우리같은 피해자 없어야"

"국제중 준비를 시킨 1년여 동안 내가 아들의 인생을 망친 것 같아요."

서울시 노원구에 사는 이아무개(40)씨는 하나뿐인 중1짜리 아들 이야기를 꺼내며 고개를 떨궜다. 이씨의 아들 김아무개(15)군은 재작년부터 1년 넘게 경기 가평 청심국제중 입시를 준비했다. 김군은 이 기간에 토익부터 토플, 토셀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영어인증시험에 대비하려고 영어학원을 전전했고, 수학·과학 올림피아드 대회에서 금상을 타기도 했다. 워드프로세스 자격증은 물론 한자시험 3급 자격증을 따고 국어인증시험까지 치렀지만, 결국 국제중 입시에는 실패했다.

"국제중 입시 준비하며 각종 과외와 학원에 보내느라 아이에게 쏟아부은 돈이 2천만원이 넘어요. 하지만 아이가 받은 스트레스에 견주면 돈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죠."

국제중 입시에 실패한 뒤 일반 중학교에 진학한 김군은 현재 제대로 학교 수업을 따라가지 못한다. 성적은 중하위권에 머무르고 있고, 무엇보다 학업에 대한 의욕이 없다. 중학교 입학 뒤 김군은 "학교에 가기 싫다"며 지각을 하기 일쑤였고, 야단을 치면 "수업 시간이 지옥 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해 늘 혼자였고, 수업시간 50분 동안 한자리에 앉아 있는 것조차 힘겨워했다.

하지만 이씨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여겼고, 아이의 '학업'을 포기하지 못했다. 학원 원장에게 부탁해 김군을 특목고 입시반에 넣어줬지만 김군은 딱 하루 학원에 나가고는 밥을 굶어가며 학원을 거부했다.

"아이가 영어를 꽤 잘했어요. 외국서 산 경험도 없는데, 영어로 웬만한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요. 그런데 얼마 전에 책상을 치우다 보니 글쎄 영어책을 발기발기 다 찢어놨더라고요."

상황이 심각하다고 여긴 이씨는 아들의 손을 잡고 지난달 정신과 병원을 찾았다. 의사의 진단은 '스트레스성 학습장애'였다. 일주일에 1시간씩 상담을 하는데, 김군은 처음부터 대화 자체를 거부해 치료에도 애를 먹는 상황이다.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아이가 별 불평 없이 따라줬어요. 의사 말로는 '그냥 참은 것일 뿐'이라는데…. 아이가 그렇게까지 고통받는 줄 알았다면 안 시켰을 거예요."

서울에도 내년에 국제중 2곳이 문을 연다는 소식을 들은 이씨는 걱정이 앞선다고 했다. "부모들 마음은 다 똑같잖아요. 저처럼 아이 망치는 일인 줄도 모르고 아이를 사교육으로 내몰 학부모들이 또 얼마나 많겠어요. 그런 엄마들에게 말해주고 싶어요. 다 부질없는 짓이라고…." 유선희 기자 du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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