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지금]1달러=90엔 초엔高..계산기 두드리는 일본

2008. 10. 27.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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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 초강세'의 충격이 미국발 금융위기에 이어 또 한번 세계경제를 흔들고 있다. 금융 위기 쓰나미가 몰아닥친 후 일본 엔화 가치는 뛰고 있다. 한국 기업은 물론 일본산 제품이나 부품을 사다 쓰는 수입업체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원화에 대한 엔화 가치는 연초와 비해 배 이상 폭등했다. 엔·달러 환율도 지난주 말 한때 달러당 90달러까지 떨어졌다. 엔화 가치가 더 오를 것이란 전망이 쏟아지면서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엔 사재기' 현상까지 벌어지고 있다.

일본 경제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같은 갑작스런 엔 초강세 사태가 일본 경제에 득이 될지, 악재가 될지를 둘러싸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통화가치는 국가 신용도를 가늠하는 척도다. 그런 만큼 일본 경제를 그만큼 높게 평가한다는 증거라고 일본 경제전문가들은 풀이한다. 더 나아가 엔화가 달러를 대신하는 새 기축통화로 부상할 것이라는 분석까지 확산되면서 엔화 가치의 향방이 더욱 주목되고 있다.

◆'엔 강세', 왜 벌어지나=전문가들은 엔 강세의 원인을 두 가지로 분석한다. 우선 5∼6년 전부터 전 세계 자본시장에 투자된 연 0∼1%의 초저금리 엔화 자금이 회수되고 있다는 점이다. 2004∼07년 세계 자본시장을 풍미했던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의 청산이 바로 그것이다. 엔 캐리 자금은 세계 금융시장이 불안해진 2007년부터 속속 일본으로 복귀했다. 이 때문에 국제 금융시장에서 엔화 자금이 줄고 있다.

또 하나의 원인은 미국 경제가 휘청거리면서 일본 경제가 안전판으로 평가되고 있다는 점이다. 엔화가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엔화 가치가 초강세를 보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번 금융위기에서 상대적으로 상처받지 않은 나라가 일본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엔 강세에 시달리는 일본 수출기업들=엔 초강세 현상에 일본 수출기업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도요타자동차와 더불어 일본 제조업을 대표하는 소니그룹은 지난 23일 도쿄 ANA호텔 설명회에서 어두운 2009년 3월 결산회계 전망치를 내놨다. 소니그룹의 오네다 노부유키 CFO(최고재무관리자) 겸 그룹 부회장은 "엔 초강세와 수요 감소, 주가 하락의 3대 악재가 겹쳤다"고 하소연했다. 소니는 당기순이익을 작년보다 59%나 감소한 1080억엔(1조5000억원)대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네다 부회장은 "순수하게 엔 강세 때문에 300억엔 순이익이 감소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푸념했다.

도요타자동차는 미주 시장 진출 이래 내년 결산에서 최대 적자를 각오하고 있다. 도요타는 달러당 1엔이 오를 때마다 300억엔의 순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히다치, 미쓰비시, 소니 등도 내년 3월 결산수지를 대폭 낮춰 잡고 있다.

이 같은 기업 실적 악화는 미국발 위기에 일본 경기도 침체되고 있음을 잘 말해준다. 일본 국민은 5년 반에 걸친 경기 활황기에 연 지갑을 다시 닫고 있다. 수출기업들은 수지가 맞지 않는다고 아우성이다.

◆금융위기 일본에는 기회인가=주가 폭락에도 일본에서는 세계가 공포에 떨고 있는 '금융대란'과 '공황'과 같은 분위기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금융시장의 심리는 안정된 편이다. 여야 정치권이 힘겨루기를 잠시 미루고 총력 지원하겠다는 태세도 이 같은 안정에 도움을 주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파산한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라더스의 유럽·중동·아시아태평양 쪽 자산을 사들인 '노무라 홀딩스'의 한 간부는 최근 니혼게이자이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금융위기를 "일본에는 100년에 한 번 올 찬스"라고 묘사했다.

지난달 하순 미국 2위 투자그룹 모건 스탠리에 90억달러 출자를 결정한 미쓰비시UFJ 파이낸셜그룹도 "갑자기 성장가도에 서서 어리둥절한 기분"이라며 격변하는 투자환경을 묘사했다. 도쿄해상과 일본생명 등 거대 보험사들은 호주, 유럽에 산재한 미국 투자은행의 부실자산을 '땡처리'로 인수·합병하고 있다. 수세적이고 비관적인 월가의 모습이 도쿄 긴자 금융가에서는 보이질 않는다. 일본 자본가들은 엔 초강세로 수십년간 벌어야 할 거액을 단박에 벌어들이고 있다.

과거 앨런 그린스펀 전 FRB의장은 일본을 두고 "제로금리인데 저축하는 나라"라며 "그 국민들을 이해할 수 없다"고 비아냥거렸다. 미국의 금융상품에 투자하지 않았던 일본 자본을 겨냥한 말이다. 일본 자본이 만약 그때 발을 담갔더라면 일본도 금융위기의 불길에 휩싸였을 것임이 분명하다.

◆일본에 기대는 세계 금융시장=엔 초강세 현상은 10월 들어 더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달러당 100엔'의 벽이 무너진 지도 오래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 24일에는 달러당 90엔까지 떨어졌다. 지칠 줄 모르고 뛰는 엔화 가치는 일본 수출기업에는 분명 악재다. 그러나 일본 전체를 놓고 보면 큰 기회가 될 것이란 견해가 주목 받고 있다.

이코노미스트 다무라 히데오(田村秀男)는 "일본 정부 산하 투자기업과 은행들은 국제 엔 자산 정비를 서두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전 세계 기축통화를 달러에서 엔으로 바꿔 보겠다는 발상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계획은 미국 쪽 사정을 들여다보면 현실과 동떨어진 생각도 아니다.

미국은 총액 360조엔에 달하는 천문학적 공적자금을 풀어넣어야 한다. 향후 얼마를 더 쏟아부어야 금융 대란이 수습될지도 모른다.

이 돈을 미국은 일본으로부터 벌충할 작정이다. 미국은 국채를 대량 발행해 이를 일본 정부가 사도록 한다는 계획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다시 말해 미국 중앙은행은 달러를 계속 찍어내되 인플레가 되지 않도록 일본 정부가 소화해 달라는 의미다.

그러나 미국이 최근 연일 일본 정부에 러브콜을 보내고 있지만 일본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아소 다로 총리는 며칠 전 미국에 북한을 테러지원지원국에서 해제하지 말아 달라고 애걸했지만 냉정하게 묵살한 미국이라며 별반 반응을 보이지않고 있다는 것이다.

나카소네 히로후미 외상은 지난 5일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이 전화를 걸어와 통보할 당시 1시간여 격론을 벌였다고 한다. "만약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한다면 선거를 앞두고 있는 최대 동맹국 일본이 아주 어렵게 된다"며 재고해줄 것을 호소했다. 라이스 장관은 "일본을 이해한다"고 했지만 불과 5시간 만에 전격 발표해 버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현재 일본 여론 일각에서는 미국의 국채 매입 요구를 들어주지 말라는 격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 국채를 소화할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는 일본 관료들은 냉철하게 수지를 가늠하고 있다.

일본 금융 전문가들은 거액의 미 국채를 엔화 표시로 바꿔 유통하는 전략을 짜고 있다. 국제 엔 자산도 재정비하고 있다. 이럴 경우 일본 기업이나 전 세계 기업들은 달러 기준이 아니라 엔화 기준으로 무역 거래를 결제하는 환경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있다.

일본은행은 충분한 엔 자금을 시장에 유통해 엔화 표시 미국 채권의 소화를 거들게 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일본이 외국에 빌려준 국외 채권은 250조엔으로 추정된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미국의 요구를 무시할 수만은 없다. 오히려 이번 금융위기를 국제 금융시장을 주도할 호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엔 초강세가 일본을 슈퍼파워로 부상하게 할지, 아니면 일본 경제를 추락하게 할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일본 관료들은 '때가 왔다'며 계산기를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

도쿄=정승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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