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강부자' 손 들어준 헌재의 종부세 무력화 결정

2008. 11. 1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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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사설

헌법재판소가 어제 종합부동산세의 가구(세대)별 합산과세 규정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주거 목적의 1주택 장기보유자 세금 부과에 대해서도 헌법불합치라며 내년 말까지 개정하도록 했다. 종부세법 전체를 위헌으로 본 것은 아니라지만, 헌재 결정대로라면 종부세 제도의 전면 손질이 불가피해지고, 그리 되면 과세 대상은 거의 남지 않게 된다. 종부세 제도를 사실상 무력화한 셈이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종부세 제도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인정하면서도 내용상으로는 제도의 존립 근거를 위태롭게 했다는 점에서, 이해하기 쉽지 않다. 헌재는 종부세의 세율이 지나치게 높다거나, 이중과세 또는 소급입법에 해당한다거나, 미실현 이득에 대한 과세라는 등 종부세를 둘러싼 그동안의 여러 비판론에 대해 모두 '그렇지 않다'며 합헌 판단을 내렸다. 종부세 제도가 부동산 가격을 안정시키는 사회적 기능이 있고, 높은 가액의 부동산을 보유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세금 부담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으며, 그런 부담은 반사적 불이익이라는 논리도 폈다. 가구별 합산과세 제도에 대해서도 조세회피를 방지하려는 데 입법 목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종부세 도입의 사회경제적 맥락과 그 입법 취지에 대해 헌법적 정당성을 인정한 셈이다.

그러면서도 이번 결정은 정작 종부세 제도가 입법 목적대로 기능 할 토대 자체를 허물어뜨리고 있다. 당장 가구별 합산과세 대신 인별 과세가 적용되면 1가구 다주택이나 고가주택 보유자 상당수가 가족간 증여나 명의 변경, 공동명의 등으로 종부세 부과를 피할 수 있게 된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종부세 대상 가구의 80% 정도인 가구 합산 공시가격 6억~12억원짜리 주택 보유자가 그런 식으로 종부세 면제를 기대할 수 있고, 나머지 12억원 이상 주택 보유자들도 세액을 크게 줄일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장차 법 개정을 통해 가족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장기보유 등을 따져 과세대상에서 빠지게 되면 종부세 제도는 사실상 폐지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렇게 되면 부동산 투기를 억제할 중요한 제동장치가 풀리게 된다. 당장은 큰 영향이 없을지라도 장기적으론 잘못된 인식을 확산시켜 투기와 부동산값 앙등을 다시 부를 수 있다. 헌재의 이번 결정이 유감스러운 것도 이 때문이다. 헌법상의 가치를 지키고 기존의 법원칙과 판례에 따른 것이라 해도, 공동체에 그 이상의 부작용을 불러올 가능성이 있다면 심사숙고하는 게 옳다. 부동산이 우리 사회에서 갖는 특수성을 생각한다면 금융소득과 부동산 문제를 같은 논리로 다루는 것도 그리 적절하지 않아 보인다.

그러지 않아도 지금 국회에선 종부세 완화를 내용으로 한 여러 법안이 제출돼 있다. 이번 헌재 결정을 빌미로 부동산 투기 방지 장치를 없애려는 움직임도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다. 그리 되면 헌재는 장차 있을지 모를 부동산 광풍의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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