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걱정에 '예술'했는데 경찰이 왜 나서? 내년 설엔 아이들 '사랑의 삐라' 기대하시라"

2008. 12. 10.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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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장윤선 기자]

경찰은 '나라 걱정 많은 예술인 모임' 회원들의 '대북 삐라 패러디 퍼포먼스'를 제지했다.

ⓒ 컬처뉴스

올 겨울 첫 한파주의보가 내린 날이었다. 귀청이 떨어져 나갈 만큼 추웠다. 왜 하필 이런 날을 골라잡았을까. 후회도 했다. 무엇보다 걱정이 있다면 '이게 과연 하늘을 날 수 있을까'였다. 여러 기자들 모아놓고 삐라가 담긴 풍선을 띄웠는데 정작 하늘에서 터지지 않는다면 그 망신을 어떻게 감당할 건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누군가 풍선이 뻥! 터지는 데는 '담배꽁초'가 최고라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지난 7일 밤 서울 인사동 건국빌딩 5층 옥상에 올랐다. 하늘에서 풍선 터트리기 실험을 위해서였다.

일단, 작은 풍선 안에 삐라 한 장을 넣고 볼이 터져나가도록 세차게 숨을 불어넣었다. 그 다음, 살짝 담배꽁초를 넣었다. 터져라, 터져라, 터져라, 에잇! 안 터졌다. 돌아서 잊을 만하니 그때서야 뻥! 이건 안 되겠다 싶었다. 망신을 자초하기 전에 집어치웠다.

담배꽁초와 타이머, 그리고 폭죽 도화선

나라 걱정 많은 예술인 모임 회원들은 8일 낮 12시 서울 청계광장에서 '대북삐라 패러디 퍼포먼스'를 벌였다.

ⓒ 장윤선

대북삐라를 뿌렸던 '임진각 아저씨'들은 타이머를 사용했다던데, 알아보니 그건 너무 비쌌다. 개당 5만~6만원. 예산초과다.

포기했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하늘로 올라간 풍선을 시의적절하게 뻥 터트릴 것인가.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실험에 동참한 한 사람이 제안했다. 폭죽 도화선은 어때? 오호라. 그게 있었다. 폭죽 도화선이라면 생일 케이크를 사면 딱 2개만 덤으로 끼워주는 걸로 고깔모자를 닮은 요란한 색채의 종이 끄트머리에 달린 줄. 이 줄만 따로 따 풍선에 넣은 뒤 꽁지에 불을 붙여 쏴올리면 알아서 터지리라.

일단 샀다. 실험을 위해서. 무엇보다 가격이 쌌기 때문에 선뜻 손이 갔다. 개당 400원. '임진각 아저씨'들이 사용한 타이머에 비하면 1/100도 안 되는 가격이다. 실행에 돌입했다.

풍선에 삐라 한 장을 넣고, 또 한 번 세차게 숨을 몰아넣은 뒤, 폭죽 도화선을 넣고 불을 붙였다. 터질까, 터질까, 터질까~ 조마조마하던 차에 뻥 터졌다. 오우! 탄성과 함께 박수가 터졌다. 실험이 성공하던 순간, 하늘에선 눈발이 흩날렸다. 마치 팝콘이 하늘에서 쏟아지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한 장면처럼 눈송이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소담한 눈송이는 성공을 예감케 하는 좋은 징조였다.

지난 7일 저녁 8시부터 밤 11시까지 3시간 동안 이어진 폭죽도화선 실험. '나라 걱정이 많은 예술인 모임(이하 예술인 모임)' 회원들은 마치 과학자라도 된 듯 실험에 성공한 뒤에 밤새 삐라를 복사했다. 삐라 1000장을. 삐라는 원래 등사기로 밀어야 제 맛이지만 요즘엔 등사기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 그냥 복사기를 돌렸다.

"예언 대통령-미네르바 1탄 '지금 주식 사면 내년엔 부자 된다!' 엥?" "2탄- 지금 중소기업 취직하면 그 회사 대기업 된다?"-이 삐라를 습득하신 분들은 가까운 지인에게 돌려주세요! 한나라당 반북풍선지원법 발의-오! 반북풍선지원법? 폭력경찰 청수! 경제파탄 만수! 완장 인촌! 구차한 본홍! 시중 시중! 불법 공정택! 모르쇠 명박! 2MB 제발 아무것도 하지 마~~ 소망교회 1% 부자-대한민국 절단 난다 헉! 광우병 미국산 쇠고기! 윽! 해고 칼바람, 아! 캄캄한 이명박 정권, 허걱! 뉴라이트 일제시대가 근대화?? 이대로는 용서 안 돼!

"대북 삐라는 되고 안티MB 삐라는 안 되냐"

삐라에 들어갈 그림과 글을 다 만들어 넣었지만 뭔가 허전하다. 맞다! '임진각 아저씨'들은 삐라에 1달러를 넣었다. 1달러라…. 요즘 환율이 장난 아닌데…. 돈이 없었다. 깔끔하게 포기한 뒤 명분을 쌓았다, 패러디는 패러디일 뿐, 다 따라할 필요는 없다! ^^

'예술인 모임' 회원들은 지난 7일 밤늦도록 실험과 준비를 마치고, 다음날인 8일 정오 서울 청계광장 소라 조형물 앞에서 행사를 결행했다. 이른바 '대북삐라 패러디 퍼포먼스' 짜잔!

회화와 조각가 등 미술계 예술인 10여 명은 이날 청계광장에서 기자들을 모아놓고 큰 풍선엔 삐라와 헬륨가스를 가득 넣고 하늘로 띄워 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큰 풍선은 '임진각 아저씨'들의 대북삐라와 똑같이 만들었다. '패러디 퍼포먼스'의 일환이었다.

그런데 풍선을 막 띄워 올리려 할 때 전투경찰 50여 명이 들이닥쳤다. 큰 풍선 위주로 마구 빼앗았고 작은 풍선들은 터트리기 시작했다. 가을운동회가 아니니, 전투경찰과 예술인 사이에 한바탕 몸싸움이 벌어졌다. 고성도 오갔다. 기자들은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때 일부 회원의 손에서 떠난 작은 풍선 4개만 하늘로 올라갔다.

볼살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날씨에 옥상까지 올라가 밤늦도록 실험을 했건만, 결국 '타의에 의해' 불발됐다. 성공 예감 눈송이는 다 무엇이었더냐. 한숨이 터졌다. 기자들과 함께 하늘에서 풍선이 뻥 터지는 그 명장면을 봤어야 했는데…. 안타깝게도 좌절됐다.

'예술인 모임' 회원들은 화가 났다. 요즘 나라 걱정이 많아져서 "단지 예술로 승화시켰을 뿐"인데, 경찰은 "불법집회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며 해산작전을 개시했다.

대북삐라는 되고, 안티MB 삐라는 안 되냐? 분통을 터뜨렸다. 예술인들의 패러디 퍼포먼스를 방해한 자 누구냐? 열받은 예술인들은 색출에 들어갔다. "책임자 나와!" 대꾸하는 경찰은 없었다.

다들 책임자가 아니라고 피했다. 무전기 여러 개 들고 있는 경찰관에게 다가가 "당신이 책임자지?" 하면 영락없이 "저는 아닌데요" 답이 돌아왔다. 경찰관직무집행법에 따라 당연히 사전 경고하고 해산작전에 돌입해야 하는데, 전투경찰들은 막무가내로 달려들어 풍선을 빼앗았다.

'예술'하는데, 경찰이 완력으로 치고 들어온 건 '문화파괴행위'라고 분개했다. 열심히 준비한 행위예술 작품 전시를 딱 10분밖에 못했으니 그도 그럴 터. 그래서, '예술인 모임' 회원들은 일단 점심을 먹고, 종로경찰서로 따지러 갔다. 항의방문인 셈이다.

그러나 종로서 측은 항의방문도 허락하지 않았다. 공문으로 접수하라 했다. 공문? 민원실로 갔다. 종로서장에게 정식 면담 요청도 했다. 공식적인 사과나 해명이 없으면 고소하겠다고 별렀다. 무고한 시민들의 예술행위를 파괴해놓고 일언반구 없는 데 대한 해명을 꼭 듣고 말겠다는 생각인 거다.

나라 걱정 많은 예술인 모임 회원 10여명은 8일 정오 서울 청계광장에서 '안티MB 삐라 풍선 날리기' 패러디 퍼포먼스를 하려 했으나, 경찰의 저지로 10분만에 끝났다.

ⓒ 컬쳐뉴스

"발칙한 놀이를 포기하지 않겠다"

김윤기 '예술인 모임' 회원은 9일 <오마이뉴스>와 만났다. '삐라풍선' 패러디 퍼포먼스의 막전막후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그는 "우리는 단지 예술을 했을 뿐이고, 걱정이 있다면 나라 걱정이 많을 뿐인데 왜 경찰이 우리들의 정당한 행위예술을 방해했는지 의문"이라며 "앞으로 비슷한 패러디 퍼포먼스를 계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국 동시다발 풍선삐라 띄우기 행사를 할까 해요. '사랑의 삐라' 뿌리는 날? MB정부에서 살기 고통스러운 시민들의 소망과 염원을 종이에 적고 그걸 풍선에 넣어 하늘로 띄워 올린다면 그 자체로 의미 있는 퍼포먼스가 되지 않을까요?"

어린이들이 함께할 수 있는 문화행사가 될 거라고 했다. 어릴 때 연날리기 많이 했지만 요즘 도회지 아이들에게는 그런 낭만이 없어 안타깝다 했다. 그걸 예술적으로 승화해 아이들과 함께 문화적 공감대를 만들어보겠노라 선언했다.

이미 비닐을 많이 샀다고 했다. 다음 퍼포먼스를 위한 준비다. 아기들의 고사리손에 풍선을 쥐어주고 하늘로 띄워올리게 하면, 이것도 아동학대죄 될까? 그래도 예술인모임 회원들은 강행하기로 했다. 이 재밌고 즐거운 '발칙한 놀이'를 포기할 순 없으니까.

그런데 이 재밌고 발칙한 놀이 상상은 누가 한 걸까. 김윤기 회원은 "1개월 전부터 모의된 사건"이라고 했다. 누가 낸 아이디어일까? 김 회원은 "평소 알고 지내던 회화작가, 공공미술인, 조각가 등이 모여 술자리를 하던 중 TV에서 흘러나오는 '대북삐라' 뉴스를 봤다"며 "그때 누군가 '우리 저거 패러디 퍼포먼스 한번 해보면 어때' 한 게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그보다 더 결정적 계기는 있다. 바로 한나라당 황우여 의원이 낸 법안 때문이다. '대북삐라지원법'이라니…. 한숨을 넘어 낄낄 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한나라당 의원들 정말 별 걸 다 하시는구나 했다는 거다.

김윤기(46) '나라 걱정이 많은 예술인 모임' 회원.

ⓒ 장윤선

자유풍선에 3억원 지원? 포복절도할 즐거운 예술 없을까 모의

한나라당이 낸 북한인권법이 북한 주민 정보 전달 비용으로 7억원을 배정하고, 그중 3억원을 북한으로 보내는 '자유풍선'이나 '소형 라디오'에 쓰자는 데 '확' 깼다는 거다. 그날 술자리에 모인 예술인들은 점입가경이 돼가는 한나라당의 행태에 맞서 포복절도할 '즐거운 행위예술'을 해보자고 결의했다고.

김 회원은 '8일 패러디 퍼포먼스'에 대해 "나름 성공적"이라고 평가했다. 기준은 단 하나. 즐거웠기 때문이란다. 왜 즐거웠을까. 대북삐라에 대해서는 관대하기 짝이 없던 경찰들이 안티MB 삐라에 대해서는 벌벌 떨며 혹여 1개의 풍선이라도 하늘로 날아갈까 전전긍긍하던 모습에서 쾌감을 맛보았다는 것이다.

김 회원은 "무엇이 그렇게 두려웠을까요"라며 "이번 '패러디 퍼포먼스'를 준비하면서 다시 촛불의 과정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주권을 가진 국민들이 촛불 하나로 저항권을 행사하는데 그마저도 치졸하게 벌금형이나 때리며 국민에게 복수하는 이명박 정권을 보면서 정말 치사하다는 생각을 했다"며 "치사한 정권과 맞붙어 싸우려면 딱 그만큼의 발칙한 상상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그래서 이번에 모인 '10인의 예술인'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로 경찰과 이명박 정권을 깜짝 놀라게 해줄 여러 패러디 퍼포먼스를 선보일 작정이라고 했다. 대표적인 일정이 연날리기 대신 해보는 '사랑의 삐라풍선 뿌리기' 대회다. 이건 내년 설을 대비해 전국 문화예술단체들과 공동으로, '전국 동시 다발'로 해보면 어떨까 궁리중이다.

그는 "경찰들에겐 미리 알려주니 제발 방해하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그러나 8일 경찰의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볼 때, 설날 전국동시다발 '사랑의 삐라 풍선 뿌리기' 대회가 벌어진다면 아마 비상 경계령이 내려질지도 모를 일이다.

김 회원에 따르면, 8일 패러디 퍼포먼스를 마친 '10인의 예술인'은 저녁에 아이디어회의를 겸한 술자리를 열었다. 아이디어가 속출하는 자리였단다. 개인적으로 숨겨두었던 아이디어 보따리도 터졌단다. 기자에겐? 물론 비밀이라 했다.

퍼포먼스를 마친 그들은 1980년대 문화운동하던 식으로 밤새 막걸리를 '펐다'. 막걸리 25통이 담긴 한 짝을 다 비울 정도로 '쎄게' 펐다. 서울 인사동의 한 허름한 술집에서 이어진 뒤풀이는 '삐라풍선 실험'하던 그날처럼 진지했고 즐거웠다고 했다. 밤새 '대취'한 바람에 그는 이날 인터뷰엔 40분이나 늦었다.

그래도 기자는 아무 말 안 했다. '10인의 예술인'이 앞으로 보여줄 '패러디 퍼포먼스'에 대한 기대로 가득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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