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허위사실유포 만으로 처벌하는 국가는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한국뿐이다 / 박경신

입력 2009. 1. 9. 19:31 수정 2009. 1. 11.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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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특별기고

한국을 포함하여 여러 선진국들에는 허위사실에 대해 법적 책임을 부과하는 법들이 많이 있다. 허위사실이 타인의 평판을 저하하면 명예훼손, 금품을 취하기 위해 허위사실을 적시하면 사기, 상장회사가 허위사실을 적시하면 허위공시, 다른 생산자의 표지를 자신의 제품에 부착하여 그 생산자의 제품인 것처럼 꾸미는 식의 허위는 상표권침해,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허위(예를 들어, 뉴타운개발계획)를 적시하면 선거법 위반 등등의 법들은 대부분의 나라에 공통으로 존재한다.

그런데 위의 법들을 살펴보면 허위사실이 타인에게 초래하는 피해나 그 유포자가 취하는 부당이득 등에 대한 처벌이지 허위사실 그 자체에 대한 처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허위사실 자체를 처벌하는 것은 별다른 공익적 목적도 없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하기 때문이다. 인류는 일찍이 코페르니쿠스의 화형을 비롯한 수많은 계몽의 위기들을 거치며, 진실은 동시대의 권력이 독점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토론 속에서 스스로 나타나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른바 '허위'로 보이는 것에 대한 가장 효과적인 대응은 처벌이 아니라 '허위'를 비판할 수 있는 자유의 보장임을 깨우친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는 바로 허위 그 자체를 처벌하는 법이 있다. 전기통신사업법 제47조1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전기통신설비에 의해 공연히 허위의 통신을 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고 하고 있다. 바로 이 법 하에서, '단체휴교'라는 내용의 문자를 퍼뜨린 학생이 기소되었다가 무죄판결이 내려졌다. 엊그제는 정부의 외환조치에 대한 소식을 전했던 누리꾼이 이 소식이 '허위'라는 이유만으로 체포되었다.

허위사실유포죄는 위헌일 뿐만 아니라 국제인권기준을 명백히 위반한다.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허위사실 자체를 처벌하는 국가는 유일하게 우리나라뿐이다. 유엔인권위원회는 이미 1990년대에 시민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심사에서 튀니지, 모리셔스, 아르메니아, 우루과이, 카메룬이 가지고 있는 허위사실유포죄에 대해 우려를 나타냈다. 특히 2000년 표현의 자유에 관한 특별보고관은 허위사실유포에 대해 형사처벌 하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나며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그나마 허위사실유포죄가 존재하던 후진국들도 하나둘씩 폐지하고 있다. 1978년에는 미주기구(OAS) 산하 미주인권위원회의 지적에 따라 파나마가 허위사실유포죄를 폐지하였다. 2000년 5월에는 짐바브웨 대법원도 허위사실유포죄는 그 죄를 통해 방지하려는 해악과 그 죄를 통해 침해당하는 표현의 자유 사이에 형평이 맞지 않는다며 위헌판정을 하였다. 비슷한 시기 카리브해 동부 소국인 앤티가바부다의 최고법원도 허위사실유포죄에 위헌 판결을 내렸다.

선진국 중에서 이례적으로 허위사실유포죄가 있던 캐나다 역시 1992년 연방대법원이 "허위보도를 형사처벌하는 자유민주주의국가는 어디에도 없다"고 지적하며 허위사실유포죄에 대해 위헌판정을 하였다. 당시 피고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부인하던 자였음에도 국제사회는 그가 허위사실유포죄가 아니라 독일의 혐오죄로 구속되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어떤 사람들은 이번에 체포된 누리꾼이 진짜 '미네르바'인지, 진실을 말했는지, 대학은 나왔는지, 외국금융기관에 근무한 적이 있는지에 관심이 있다. 필자는 검찰이 이 위헌적이며 국제적인 창피거리인 허위사실유포죄를 적용하거나 '피디수첩' 광우병보도 수사처럼 명예훼손죄(예를 들어, 강만수 장관에 대한)를 적용하는 코미디를 반복할 지에 더 관심이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나라가 도대체 어떤 나라인지에 대해서 준열한 깨우침을 주기 때문이다.

박경신/고려대 법대 교수

■ 바로잡습니다

10일치 4면 '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 특별기고'

'코페르니쿠스의 화형'은 '코페르니쿠스 이후 지동설을 주장한 조르다노 브루노의 화형'을 잘못 표현한 것이라고 필자가 알려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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