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시사IN

누구를 위하여 서울 디자인을 서둘러 바꾸나

오윤현 기자 noma@sisain.co.kr 입력 2009. 03. 26. 10:32 수정 2009. 03. 26. 10:32

기사 도구 모음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o i

번역할 언어 선택
글자 크기 조절 레이어

그야말로 '회오리바람'이다. 서울 전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디자인 사업을 두고 하는 말이다. '진원지'는 오세훈 시장이다. 2006년 7월 그는 임기를 시작하며 "디자인이 서울의 경쟁력을 높인다"라고 외쳤다. 10개월 뒤에는 디자인 사업을 총괄하는 디자인서울총괄본부를 세우고 디자인 사업에 박차를 가해왔다. 그 결과 지금 서울 도심과 한강변에서는 동시다발로 디자인 사업이 전개되고 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 파크(DDPP) 건설, 남산 르네상스, 한강 르네상스, 디자인 서울거리, 세종로 개발….

이 정도 추진력과 업적이면 응원 소리가 우렁찰 듯한데, 이상하게 걱정하는 목소리가 더 크다. 일부 디자인·건축 전문가들은 "왜, 지금 디자인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뒤따라오는 질문은 더 신랄하다. "과연, 디자인서울 사업에 철학은 있는가?" "왜, 서둘러 추진하는가?" 서울을 더 세련되게 만든다는 '서울 르네상스' 사업에 왜 전문가들은 고개를 갸웃거릴까.

아, 동대문운동장-와, 디자인플라자 & 파크 동대문운동장역은 있지만, 이제 그 역에 이름을 부여한 동대문운동장은 없다. 3월17일 오후. '역사'의 현장에 가보니 3만1000㎡에 달하는 축구장과 야구장 그리고 그곳에 지난 83년간 켜켜이 얹혀 있던 시간의 흔적은 가뭇없었다. 근처 건물에 올라서니, 누런 맨흙이 두둑히 쌓인 개발 현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환유의 풍경'이라 불리는 디자인플라자와 공원이 들어설 공간. 한쪽에 우두커니 서 있는 조명탑과 초라한 성화대가 한때 이곳이 운동장이었음을 상기시켰다.

그런데 조명탑 아래에 낯선 풍경이 보였다. 반듯하게 파헤친 땅과 그 주변에 널린 크고 작은 파편들. 그 뒤쪽에 아치 모양의 돌다리까지 서 있다. 그제야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유구(遺構)가 발견되었다"는 기사가 떠올랐다. 발굴된 유적과 유물은 다양했다. 조선 시대 성벽, 이간수문(二間水門), 관아 터, 우물, 기와…. 문화재청은 그중 성곽은 복원하고, 발굴 유물은 이전 복원하기로 결정했다. "유물은 이간수문 근처나 디자인플라자에 공간을 만들어 전시할 것이다"라고 김응서 문화재청 주무관(발굴조사과)은 말했다.

그렇다면 설계도까지 나온 DDPP 건설은? 난데없이 튀어나온 고물 탓에 2274억원짜리 사업의 설계 변경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미 설계자 자하 하디드(영국 건축가)에게 변경을 의뢰했다는 소문도 들린다. 미리 유적을 발굴하고 설계할 수는 없었을까.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에 따르면, 시민단체가 이미 오래전부터 서울시에 유적 평가를 한 뒤 개발하라고 건의했다. 일제가 새로운 건축물을 세우면서 낡은 조선의 건축물을 부숴 복토하는 일이 흔하던 터라, 그 요청은 새겨들을 만했다. 그러나 서울시는 바쁜 공정(2010년 상반기 준공 계획) 탓인지 DDPP 설계와 건설을 서둘렀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생각해보니,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 필요해서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황 소장은 말했다.

도시·건축 전문가들은 동대문운동장의 소멸 자체를 아쉬워한다. 김민수 교수(서울대·디자인학부)는 시간의 켜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역사·문화적 장소를 잃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기보다 어떻게 재생하느냐에 좀더 지혜를 모았어야 했다. 이로써 서울은 도시와 역사를 말해줄 수 있는 좋은 장소를 잃었다." 조명래 교수(단국대·도시계획학)는 "왜, 지금 그 자리에 디자인플라자가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라고 말했다. 문화는 장소와 시간의 맥락이 맞아야 하는데, 그 고민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 말마따나 정말 서울시는 왜 서울 르네상스 사업을 서두르는 것일까. 소문처럼 내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할 오세훈 시장을 위해서? 아니면 디자인 사업으로 고용을 창출해서 경제를 살리려고? 펜스에 매달린 간판을 보자 생각이 더 복잡해졌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숫자가 나열되어 있었다. '건설 파급 효과 생산 유발 효과 6553억원, 운영 파급 효과 생산 유발 효과 5191억원, 연간 관광객 증가 예상 280만명, 30년간 생산 유발 효과 53.7조원, 30년간 고용 유발 효과 44.5만명.'

누구를 위한 한강 르네상스인가? 한강에는 철교를 포함해 다리가 모두 스물아홉 개 있다. 그런데 앞으로 몇 년간 이들 다리 주변은 꽤 시끄러울 것 같다. '한강의 기적'을 문화 코드로 바꾸는 공사가 줄을 잇기 때문이다. 한강변에 생태 공원을 조성하고, 유적지와 한강변을 연결하는 도로를 내고, 서해로 나가는 뱃길을 열고, 국제 선착장을 건설하고, 다리의 조명을 더 화려하게 바꾸고, 멋진 조망을 위해 높다란 건축물을 올리는 사업이 연달아 벌어지는 것이다.

이 모든 공사가 시민들의 쾌적한 생활환경 조성을 위해 펼쳐진다는데, 정작 일부 시민과 건축·생태 전문가들은 "그게 시민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느냐"라며 고개를 젓는다. 예컨대 시범 가동 중인 반포대교의 '무지개 분수'를 보자. 지난해 4월, 서울시는 177억원을 들여 다리 양쪽에 각 570m씩 분수를 설치하는 공사를 시작했다. 분수는 수중 펌프 38대로 한강 물을 끌어올리고, 그 물을 다리 난간 밑의 노즐 380개로 분사하게 되어 있었다.

160여 일 뒤 완성된 분수는 화려하고 낭만적이었다. 그러나 곧 문제가 불거졌다. 노즐에서 뿜어져 나온 물이 강바람에 날려 아래쪽 다리(잠수교)로 들이친 것이다. 오가던 행인과 차들이 난데없는 비바람에 놀란 것은 당연했다. 다리 위에서 물을 몇 번만 뿌려봐도 파악할 상황조차 고려치 않고 분수를 만들었느냐는 비판이 뒤따랐다. 그 과정에서 무지개 분수가 서울시 한 공무원이 제안한 뒤, 전문가들과 별 상의 없이 건설되었음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바람에 떠밀려 어마어마한 자금을 투자한 사업을 접을 수는 없는 일. 지난 연말, 서울시는 대책을 세운 뒤 올해 5월1일 재가동하겠다고 발표한 뒤 분수를 중단했다. 3월13일. 서울도시기반시설본부에 대책을 세웠느냐고 묻자, 대답이 간단했다. "풍향계를 달았다." 담당자는 "풍속 3m 이상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방향의 분수만 틀고, 4.5m 이상 바람이 불면 분수를 끄기로 했다"라고 덧붙였다. 바람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불면 왼쪽 분수만,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불면 오른쪽 분수만 가동하겠다는 말이다.

3월13일 오후, 반포대교 상단. 봄이라 그런지 강바람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제법 드세게 불었다. 다리 중간쯤에 다다랐을 때 갑자기 왼쪽 난간 밑에서 거센 물줄기가 뿜어져나왔다(63쪽 사진). 5월 재가동을 앞두고 분수를 시범 가동하는 듯했다. 역시 대책대로, 바람이 불어오는 오른쪽 분수는 멈춰 있었다. 한쪽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낮의 무지개 분수는 보고 또 봐도 창조성이나 미적 아름다움이 없었다. 그저 다리 혼자서 물총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서울디자인총괄본부의 한 전문가는 그 분수가 "잘못됐다"라고 말했다. 디자인과 주변 경관과의 어울림, 상징물로서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조현신 교수(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는 "세계에서 가장 긴 분수로 기네스북에 올랐지만, 그 엄청난 금액을 쏟아부어 그 정도 아름다움밖에 연출하지 못한다면 문제가 심각하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서울시는 꿋꿋하다. 5월 초 대대적인 행사를 치른 뒤, 분수를 재가동할 참이다. 한 달에 2000만원어치 이상 전기를 소비하는, 한여름 밤의 꿈 같은 물 쇼를 시민들은 과연 어떻게 지켜볼지….

반포대교 남단 한강 위에 들어서는 3개 인공 섬과, 한강대교 옆 노들섬에 들어서는 오페라하우스 건설을 두고도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시는 두 장소를 이용해 한강을 문화 관광의 거점으로 만들 작정이다. 조명래 교수는 그같은 계획에 대해 일방적인 문화 행정은 문화 권력만 생산할 뿐이라고 경고한다. "인공 섬이나 오페라하우스는 겉으로는 스펙터클하다. 그렇지만 그 문화가 누구 것이고, 누가 향유할 것이며, 주변 문화 공간과 어떻게 공존할지를 생각해봤는지 궁금하다." 시민들과 문화를 생산하고 향유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많은 사람이 그 문화를 향유할 수 없다는 말이다.

새로 들어설 시청 건물(위)은 현대적이지만, 지나치게 웅대해 보이고 금속성이어서인지 정감이 덜하다. 화려함 뒤의 '그늘'-서울시 청사 신축 환경 시민단체의 반발에도 아랑곳 않고, 서울시는 104억원 정도를 들여 야간 조명 시설을 재정비했다. 그 덕에 다리의 야경이 더 화려해졌다. 팔색조 같은 다리를 보는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밤의 우울함을 달래준다. 멋도 있다."(30대 주부) "불경기가 아니더라도, 백해무익한 짓이다."(40대 남성 직장인)

그런데 서울시의 견해는 전자에 가까운 듯하다. 서울을 둘러싼 성곽에까지 불을 밝히고 있으니 말이다. 서울도시기반시설본부 자료에 따르면, 서울시는 현재 서울 성곽 9450m에 조명을 밝히고 있다. 당연히 환경 단체에서는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한강 다리 조명은 물론 성곽 조명도 반대한다. 이유는 두 가지, 에너지를 낭비하고 생태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라고 신지은 환경운동연합 간사는 말했다.

근심 어린 비난은 서울시청사 신축을 향해서도 터져 나온다. 83년 된 건물을 가차없이 허문 행위는 반달리즘(문화·공공 시설을 파괴하는 행위)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한 건축 전문가는 "일제 잔재라는 식으로 건물을 허물고 없애면 무엇이 남겠느냐"라며 이미 그 참혹한 결과를 목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600년 이상 된 도시에 환갑을 넘긴 건물이 거의 보이지 않는 이유가 거기 있다는 말이다.

3월18일 오후, 서울시청을 내려다보니 참혹했다. 앞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뒤에서 보니 구청사는 파사드(건물 전체의 인상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정면부)와 껍질만 남은 상태였다. 건축가 정기용씨에 따르면, 도시는 그곳에 살았던 사람과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의 합작품이다. 그 때문에 정치권력이나 도시 행정가, 도시 계획 입안자, 건축가가 도시 만들기에 개입하는 정도란 무의미한 수준이다. 하지만 서울 르네상스 사업을 추진하는 '세력'은 그렇게 여기지 않는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는 '도시를 만드는 시민'들과 아무런 상의 없이 옛 시청 건물을 처참히 철거해버릴 리 없기 때문이다.

사라지는 것은 시청 건물만이 아니다. 권위 정치의 산물로 알려진 세운상가와 600년 역사의 피맛골도 철거 중이다. 조명래 교수는 "삶의 땀과 흔적이 배어 있는 거리와 건축물이 하나하나 모여서 도시가 되는데, 안타깝다"라고 말했다. 김민수 교수는 최근 펴낸 < 한국 도시디자인 탐사 > 에서 "도시 디자인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외국의 잘 가꿔진 도시를 보면 두터운 시간의 복층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건물의 해체와 보존은 도시 조직과 연계를 이루면서 지속성을 갖는 전제 아래 결정되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그 피해는 도심의 직장인에게도 돌아온다. 선술집과 골목길 같은 추억 어린 공간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간판을 바꿔, 바꿔-디자인서울거리 사업 30개의 거리를 거리당 40여억원씩 들여 개선하는 디자인서울거리 사업은 외견상 중요해 보인다. 그러나 비용 대비 효과를 따져보면 꼭 해야 하는지 의문이 간다. "간판과 가로수를 바꾸고, 전신주 같은 도로 시설물을 정비하는 일보다 더 시급한 일(복잡한 지하철 환승역 개선 사업 등)이 도처에 널려 있다"라고 조현신 교수는 말했다. 실제 대학로 개선 사업의 경우 지금까지 간판 100여 개를 바꾼 게 고작이다(혜화동 로터리-이화동 로터리에 물길도 낼 예정인데, 그 물길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갑론을박이 많다).

간판을 서울시가 규정한 옥외광고물 가이드라인에 따라 교체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복잡한 간판도 문제지만, 장소와 건물에 대한 종합적인 고려 없이 가이드 라인에 따라 일괄적으로 교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창섭 교수(디자인학부)는 옥외광고물 가이드라인 같은 제도가 문제라고 말한다.

오 교수에 따르면, 지난 2년간 서울시는 수많은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공공 건축물 가이드라인, 공공 공간 가이드라인, 공공 시설물 가이드라인, 옥외광고물 가이드라인…. 문제는 이 가이드라인이 '무엇 무엇을 하지 말라고 명령하려 든다'는 점이다. 이같이 디자인 문제를 자유롭고 창조적인 상상력이 아니라, 규제와 법으로 해결하면 그 자체가 권위적이어서 경직된 풍경과 삶의 모습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세운상가 자리와 피맛골 터에 들어설 고층 건물을 떠올리며, 건설업자와 개발업자들의 농간을 걱정하는 시선도 있다. '자본'이란 본디 더 많은 이득을 챙길 목적으로 공공을 내세우며 건물이나 시설을 더 거창하게 지으려 하기 때문이다. 맬컴 마일스 교수(옥스퍼드 브룩스 대학)는 그 사실을 잘 안다. 그는 < 미술, 공간, 도시-공공미술과 도시의 미래 > 에서 디자인 사업 뒤에 감추어진 개발업자의 '발톱'을 이렇게 경고한다.

"…개발 사업자는 도시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들의 개발 사업이 자유 사회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감추려 공공미술을 끌어들여 개발 사업 자체를 미화한다. 개발 사업이 예술과 닮았다는 인상을 심어주는 일은, 개발 이데올로기적 논쟁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며…." 낡고 오래된 거리와 건물을 철거한 자리에 초고층 건물을 지으려는 계획을 보며, 마일스 교수의 말을 곱씹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조만간 600년간 서민들의 땀과 애환이 서린 피맛골도 사라질 예정이다. 물론 서울 르네상스 사업에 그늘만 있는 것은 아니다. 세종로와 남산은 한층 쾌적해질 전망이다. 특히 세종로의 이순신 장군 동상 주변은 분수와 폭 1m의 물길, 그리고 광장 덕에 한층 넓어 보일 것이다. 남산 일대도 2325억원을 투자하는 남산 르네상스 덕에 시민들이 쉴 공간이 대폭 늘어난다.

이제 1, 2년이면 서울 르네상스의 결과가 드러날 것이다. 그때 "역시, 오 시장을 위해서…" "역시, 전시행정이었네" 소리를 안 들으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좀더 신중하고 창조적인 디자인 작업을 벌여야 한다. 시민들은 얼마든지 기다릴 준비가 되어 있다.

오윤현 기자 / noma@sisain.co.kr- 정직한 사람들이 만드는 정통 시사 주간지 < 시사IN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시사IN 구독 ]

정직한 사람들이 만드는 정통 시사 주간지 < 시사IN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연재
    더보기

    포토&TV

      이 시각 추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