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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는 성장과 번영을 추구하면 안된다?

입력 2009. 04. 14. 21:16 수정 2009. 04. 14.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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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종철 기자]

'성장친화형 진보(Pro-Growth Progressive)- 함께 번영하는 경제전략'

ⓒ 미들하우스

올해 초 한 진보적 성향의 경제학자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지난 1년여 이명박 정부가 추진해 온 각종 규제완화와 감세 등에 가장 날선 비판을 해온 그였다. 저녁식사와 함께 소주 몇 잔이 들어가면서, 어느덧 대화는 진보 진영에 대한 반성과 고민으로 이어졌다.

그는 '이명박식 경제(엠비노믹스)'에 대한 비판은 쉬웠지만, 진보적인 정책대안을 내놓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대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현실에 맞지 않다거나, 형식적으로 흘렀다는 비판을 감수해야 했다.

그는 "진보는 분배, 보수는 성장이라는 프레임을 깰 필요가 있다"면서 "국민들의 의식은 상당히 진보적이면서도, 경제적으로는 성장을 통한 부의 공정한 분배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진보진영이 이같은 대중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화답했어야 했다는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홍종학 경원대 교수(경제학)가 최근 번역해서 내놓은 '성장친화형 진보(Pro-Growth Progressive)- 함께 번영하는 경제전략'(미들하우스 출간)이라는 책은 충분히 눈길을 끌만하다.

스스로 '얼치기 진보'라는 홍종학 교수가 바라보는 성장과 진보

이 책은 지난 2005년 미국에서 나왔다. 지은이는 과거 클린턴 행정부시절 경제보좌관이었던 진 스펄링(Gene Sperling)이다. 진 스펄링은 90년대 민주당 행정부에서 일자리 창출과 높은 경제성장을 이룰수 있도록 경제정책을 만들고, 추진해온 장본인이다.

그런 그가 2005년 당시 공화당의 조지 부시 대통령의 재임을 막고, 민주당의 재집권을 위한 경제정책 청사진을 이 책에 담았던 것이다.

이 책은 그동안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다. 홍 교수는 작년 여름에 우연히 미국 헌책방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고 한다. 스스로를 '얼치기 진보학자'라면서도, 그동안 꾸준히 진보적 경제대안을 모색해 온 그였다.

그는 이 책을 보자마자 흥분했다고 한다. 진 스펄링이 제시한 생생한 '성장친화형 진보정책'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의 진보적 대안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홍 교수는 작년 11월께 국회에서 열린 강연회에 참석해 "성장친화형 진보정책은 '진보는 무능력하다'는 선입견을 불식시킬수 있는 전략"이라며 "정치적으로 보수와 경쟁할수 있는 진일보한 전략"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또 "세계화로 인해 경쟁이 치열한 경제환경속에서 성장이나 번영을 제시하지 못하는 경제전략은 설득력을 갖지 못한다"면서 "'성장친화형 진보정책'은 당위의 과제"라고 말하기도 했다.

진보는 성장과 번영을 추구하면 안된다?

그렇다면 홍 교수가 이렇게 '흥분'해가며 말하는 성장친화형 진보정책이란 것이 무엇일까. 홍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성장친화형 진보정책은 분배를 포기하는 성장이 아니라, 넓은 계층에 혜택이 돌아가는 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또 사회통합을 위해 복지와 사회안전망의 중요성을 재확인하면서, 진보의 가치를 한단계 승화시키는 정책이다"

실제 이 책의 내용을 보면, 치열한 경쟁에 내몰린 미국 시민들과 사회에서 어떻게 하면 진보적 가치를 실현해 나갈수 있는지가 그대로 담겨있다. 저자인 진 스펄링의 '진보와 성장'에 대한 고민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미) 민주당은 보통사람들 편에 서서 인종적 경제적 불평등과 싸우고, 노동자 가정이 어려울때 도와주며, 규칙을 지키지 않고 게임을 하는 특권층과 싸우는 정당이기를 멈추는 순간 해체돼어야 한다. 하지만 특권세력과 싸우고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을 위해 투쟁하는 소리만 들린다면, 대중은 아마 진보주의와 민주당은 경제성장과 가계가 부를 축적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구나라고 생각할 것이다"

진 스펄링의 이야기는 계속된다."미국인의 독특한 특징은 어려운 시기에 경제적 품위를 지킬수 있는 사회안전망을 원하는 동시에 부를 창출해, 신분의 사다리를 높이 올라갈 기회를 잡고 싶어한다는 점이다...민주당의 핵심 과제는 어설픈 비판이 아니라 열정적인 언어와 대담한 정책으로 부의 창출을 확산시키고, 기업가 정신과 소상공업의 창업을 장려하는 것이다."

저자는 미 민주당이 집권해서 보통사람들을 위해 진보적가치를 실현하기 위해선 경제성장을 통해 그들의 사회적 신분을 높여줄 기회를 제공해줘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성장'이라는 화두 앞에 한국의 진보는...

무엇보다 이 책이 뒤늦게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현재의 경제상황이다. 유례없는 글로벌 경제위기속에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정책과 방향은 우리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책의 저자인 진 스펄링은 현 오바마 경제팀의 재무장관인 티모시 가이트너의 고문으로 있다. 예산과 세금 등 재정과 사회복지 분야 등에 관한 자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 지난 2월께 오바마 행정부가 내놓은 부유층과 기업에 대한 증세와 빈곤층에 대한 감세, 교육과 재생에너지와 노인 등의 의료보조 확대 등은 '성장친화형 진보정책'을 거의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뒤집어보면, 향후 오바마 행정부에서 집행될 각종 경제정책을 미리 내다볼수 있는 좋은 교재인 셈이다.

분명 오바마의 미국은 과거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지난 8년 동안 부시행정부가 추구해 온 미국식 시장만능주의의 결과가 사상 초유의 경제공황을 초래했다는 비판에 따른 것이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여전히 감세와 규제완화, 토건국가식 개발방식의 성장주의를 밀어 부치고 있다. 엠비노믹스의 최종 결과가 어떻게 귀결될지는 두고볼 일이다.

문제는 국내 진보진영 스스로 '성장'이라는 화두를 어떻게 소화하느냐다. 진 스펄링의 '성장친화형 진보정책'은 이런 측면에서 진보진영에 엠비노믹스의 대안적 경제정책으로서, 충분한 논쟁거리가 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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