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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광장에 서면 지금도 가슴 떨려이제 겨우 '원 아웃', 아직 끝 아니다

입력 2009. 05. 13. 08:52 수정 2009. 05. 13. 0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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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오마이뉴스 기자]지금 생각해보면 꿈을 꾼 것 같다. 작년 5월, 청계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기억이 그렇다는 말이다. 촛불 1주년을 맞아 다시 타오를 줄 알았던 촛불은 사라지고, 반성할 줄 알았던 정부는 여전히 오만하게 나오고 있으니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나는 지금 고3이 됐다. 새벽에 학교에 가고, 밤 12시쯤 집에 돌아온다. 몸은 힘들고 마음에는 여유가 없다. 어서 빨리 스무 살이 되고 싶지만, 욕심을 낸다고 시간이 빨리 흐르는 게 아니란 걸 이젠 안다. 참고 기다리며 지금 이 시간을 견뎌내고 있을 뿐이다.

내가 고2 때 촛불을 들었던 이유는

전북 전주에서 상경한 여고생들이 2008년 6월 6일 아침 '우리집은 광우병 쇠고기 수입에 반대합니다' 펼침막을 몸에 두르고 서울시청 앞 광장에 앉아있다. 급히 꾸려온 가방엔 밤샘 농성에 대비한 옷가지와 물, 뻥튀기 등이 들어 있다.

ⓒ 남소연

작년 이맘때, 나는 국가가 국민을 대하는 모습이 참 우스워서, 그리고 이명박 대통령의 자질이 의심스러워 촛불을 들었다. 가끔 학교 자율학습을 '땡땡이' 쳐야 했고 교육청과 경찰의 '협박'도 참아내야만 했다. 거대한 뜻이나 계획이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다.

그때 내 또래의 여자 아이들이 마이크를 잡고 청계광장에서 이야기했듯이, 학교에서 배운대로 실천했을 뿐이다. 그리고 대통령과 높은 사람들이 입만 열면 거짓말하는 게 정말 보기 싫었을 뿐이다. 그때 우리가 전교조의 사주를 받았다고?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어이가 없어 무슨 말로 반박해야 할지 참 난감하다.

촛불 든 한 명의 시민이 열 명이 되니 재밌었고, 작은 물결이 큰 바다가 돼서 즐거웠다. '세상이 바뀌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알고 있듯이, 원했던 만큼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촛불이 꺼진 뒤 지난 1년 동안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어떻게 보복을 하는지 똑똑히 지켜봤다. 우리를 지켜주겠다며 함께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은 감옥에 갔고, 정부를 불편하게 했다는 이유만으로 '미네르바'도 갑자기 잡아갔다. 이걸 보고 말 한마디 잘못하면 바로 감옥에 갈 정도로 우리 사회가 후진국이란 걸 배웠다.

요즘 교과서 '밖'에서 더 많이 배운다

지난해 6월 15일 저녁 서울시청앞 광장에서 열린 미국산쇠고기 수입 전면 재협상 촉구 및 이명박 정부 심판 39차 촛불문화제에서 한 여고생이 여름방학을 앞두고 익살스런 구호를 적은 피켓을 들고 있다.

ⓒ 권우성

정연주 전 KBS 사장에 대한 검찰 조사를 보면서 '국가에 세금을 더 내면 저렇게 되는구나' 하는 걸 배웠다. 일제고사 선택권을 보장하면 교사들도 학교에서 쫓겨난다는 것도 알았다. 아직도 진행 중인 검찰의 MBC 수사를 보면 '번역 한 번 잘못하면 1년 동안 저렇게 개고생 하는구나'를 배우고 있다.

촛불만 보면 물대포부터 동원하는 경찰을 보면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속담의 참뜻을 생생하게 배운다. 용산 참사를 보면서 대한민국 정부가 국민의 목숨을 참 하찮게 여긴다는 것도 알게 됐다.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 재판 개입 사건을 보면서 '아 저렇게 많이 배우고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저런 식으로 아부를 하는구나'하는 걸 깨달았다.

대운하의 동생격인 '4대강 정비사업'을 추진하면서 초등학생들 앞에서는 "내 꿈은 녹색운동가"라고 말하는 이명박 대통령을 보면서 '아, 새빨간 거짓말이란 건 바로 저런 것이구나'하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 < 개그콘서트 > 에 나오는 유행어가 생각난다."마음에 안 들면 잡아 감옥에 처넣으면 되고, 애들 앞에서는 무조건 거짓말하면 됩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참 쉽죠잉~!" 정부는 왜 애쓰며 그렇게 일제고사 실시하는지 모르겠다. 이렇게 온몸으로 청소년들 교육시키면서 말이다. 1년을 돌아보며 이렇게 적고 보니, 솔직히 정말 분해서 눈물이 나려 한다.

이렇게 국민들을 상대로 철저하게 복수를 할 거면 왜 이명박 대통령은 "뼈저리게 반성했다"고 촛불 앞에 고개를 속이는 쇼를 펼쳤을까. 실제로는 반성은커녕 복수의 이를 갈았으면서 말이다.

아웃 한 번에 게임 끝나는 게 아니잖아요!

나의 소망에도 촛불은 다시 타오르지 않았다. 1년 동안 세상이 변한 것일 수도 있고, 물리력으로 촛불을 끈 정부 노력의 결과일 수도 있다. 촛불이 다시 타오른다 해도 나는 작년처럼 나갈 수 없는 상황이다.

솔직히 실망스럽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나는 여전히 청계광장과 시청 앞 서울광장을 지나면 가슴이 뛴다. 촛불을 들기 전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다. 그리고 이 감정을 잘 지키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도 든다.

작년 이맘때, 우리들은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었던 것일까? 그건 아니다. 괜한 고집 피우며 고개를 흔드는 게 아니다. 설령 그것이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라도 인간이니까 도전했던 것이다. 사실 우리의 꿈이 'MB OUT!'만은 아니었지 않나.

지난 3월, 야구 WBC를 즐겁게 봤다. 결승전 때는 학교에서도 잠시 수업을 접고 모든 학생들이 시청할 수 있게 해줬다. 그때 처음 알게 됐다. 스트라이크가 세 번 들어가야 타자가 아웃되고, 아웃을 세 번 당하면 공격과 수비가 바뀐다는 걸 말이다.

그래, 야구도 한 번 아웃시킨다고 게임이 정리되는 게 아니다. 최소한 세 번은 아웃시켜야 한다. 야구도 이러한데 세상 바꾸는 일이 어디 쉽겠나. 너무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말자고 나 스스로 다독이고 있다. 우리 모두 그러했으면 좋겠다. 어쨌든 우린 좋은 기억을 나눠 가지지 않았나.

나는 여전히 청계광장을 지나면 가슴이 떨린다. 이야기했듯이 이 감정 잘 간직할 생각이다."정부의 높으신 분들, 이게 다 당신들 때문입니다. 무섭죠?" [☞ 오마이 블로그][☞ 오마이뉴스E 바로가기]- Copyrights ⓒ 오마이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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