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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걸리가 돌아왔다

입력 2009. 05. 13. 15:41 수정 2009. 05. 13.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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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불황 시름 달래는 서민들의 좋은 친구로..

과일ㆍ인삼ㆍ복분자 등과 만나 웰빙음료로…

바다 건너 일본인들에겐 달콤한 최고급 한류주로…

막걸리는 술이 아니다. 막걸리는 추억의 마술사다. 찌그러진 양재기 잔 속의 막걸리엔 추억이 빼곡하다. 코흘리개 고향 친구가 나오고, 뙤약볕 아래 함께 농활하던 30년 전 까까머리 동창생의 환한 미소도 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엔 막걸리에서 빈대떡을 부치시던 어머니의 고소한 기름냄새도 난다. '잘살아 보겠다'며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60~70년대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던 추억의 막걸리.

그런 그가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소주에 서민주 자리를 내줬던 막걸리가 대한민국의 웰빙주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는 것. 이제 막걸리는 대학생의 전유물이 아니다. 20대 여성에서 70대 노인까지 한국인들은 온통 막걸리 마니아가 됐다. 대학가는 물론 젊음의 거리 강남까지 막걸리가 천지다. 게다가 대한해협 건너 일본 열도도 막걸리 열풍이 뜨겁다.

▶막걸리의 화려한 부활…그 비결은

=막걸리가 부활하고 있다. 뛰어난 가격 경쟁력이 막걸리 부활의 원동력이다. 용량이 많고, 건강에 효과적인데도 가격은 저렴해 요즘 같은 불황에 막걸리는 안성맞춤인 술이다. 실제 유통매장에서 막걸리 1통 가격은 600~1750원에 불과하다.

식당에서도 막걸리 한 주전자(1.2ℓ)를 주문하면 3000원을 넘지 않는다. 1만원이면 3, 4명이 안주까지 넉넉히 먹을 수 있으니 인기가 있을 수밖에. 또 40~50대 등산인구가 증가한 것도 막걸리 소비가 늘어난 이유다. 산행 중에 값싸고 양 많은 막걸리만큼 등정주로 제격인 술이 없기 때문이다. 주류시장을 강타한 저도주 및 웰빙 열풍도 막걸리 부활에 한몫했다. 알코올 도수가 6~7도 안팎에 불과해 부담이 없는 데다 10여종의 필수아미노산과 유산균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최근 20~30대 여성 막걸리 마니아가 늘어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지속적인 품질 고급화 전략도 막걸리 부활에 빼놓을 수 없는 일등공신이다. 현대화 시설을 갖춘 막걸리 프랜차이즈 주점의 다점포 경쟁도 이 같은 변화에 일조했다. 국순당 한 관계자는 "60~70년대 서민의 술인 막걸리는 최근 다시 인기를 찾고 있다"며 "저렴한 가격과 함께 저도주를 찾는 웰빙 트렌드, 품질 고급화, 대중화 등이 막걸리의 부활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막걸리, 젊음의 거리 강남도 달구다

=막걸리 '제2 전성기'의 주역은 단연 젊은이다. 젊음의 거리로 통하는 서울 강남과 대학가도 막걸리는 인기 상한가다. 백세주마을의 강남점, 선릉점, 삼성점에선 막걸리가 고매출 1등 공신이다. 박민서 국순당 막걸리담당 과장은 "지난 4월 막걸리를 판매하겠다는 강남 일대 요식업소가 60곳에 달했다"고 말했다.

막걸리 전문체인점도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탁사발, 청송얼음골 막걸리, 동막골 등 30여개사 800개 가맹점이 성업 중이다. 일반업소까지 합칠 경우 막걸리 전문점은 2000개 안팎으로 추정된다. 막걸리 소비가 늘면서 매출도 급상승했다. 서울탁주의 올해 막걸리 매출은 전년 대비 23% 급증했다. 부산 등 전국 14개 막걸리 제조업체가 대부분 두자릿수 성장했다.

특히 국순당은 4월 한 달간 막걸리 매출 증가폭이 4배를 기록했다. 막걸리를 판매하는 유통매장도 즐거운 비명이다. 홈플러스는 지난 3월 한 달 동안 막걸리 판매량이 무려 60%나 치솟았다. 이마트와 롯데마트도 상승폭이 45.4~48%에 달했다. 편의점인 GS25도 48.6%였다. 이 같은 추세라면 지난해 3000억원이던 막걸리 시장은 올해는 4000억원, 내년엔 5000억원을 기대하고 있다.

▶막걸리의 무한진화는 무죄?

=막걸리가 진화하고 있다. '얼음막걸리', '퓨전막걸리', '녹차막걸리', '인삼막걸리' 등 특산물을 이용한 막걸리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엔 대학가를 중심으로 과일을 첨가한 색다른 막걸리까지 확산되고 있다. '막걸리=쌀' 공식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최근에 주목받는 막걸리는 형형색색의 색다른 막걸리다. 복분자나 청매실과 오디 등이 첨가돼 분홍색, 초록색, 붉은색을 내는 '컬러 막걸리'가 등장했다.

탁사발이 개발한 '콩막걸리'도 검은색을 띤 웰빙형 막걸리다. 컬러 막걸리는 유통가에서 인기도 높다. 이마트에선 복분자 막걸리, 오디뽕 막걸리, 청매실 막걸리, 배 막걸리, 포도 막걸리 등이 주류매장의 노란자위 자리를 차지했다. 롯데마트도 쌀 막걸리, 배 막걸리, 복분자 막걸리, 잣막걸리 등 신세대 막걸리가 총 13종에 달한다. 천연탄산을 가미한 톡쏘는 맛의 '월매 캔막걸리'도 있다.

막걸리는 용기도 섹시하게 진화했다. 페트병의 형태와 색상이 화려해졌고, 맥주나 와인처럼 캔이나 유리병에 담긴 섹시한(?) 막걸리도 등장했다. 발효제어공법으로 유통기한을 3배가량 늘린 생막걸리(국순당)도 있다. 특허 막걸리도 많다. 지난해에만 17개 브랜드 막걸리가 출원을 받았다.

▶막걸리 매력에 빠진 일본 & 일본인

='사케의 나라' 일본이 '막걸리 사랑'에 빠졌다. 신주쿠, 긴자, 시부야, 우에노 등 일본 번화가엔 막걸리 바(bar)가 즐비하다. 이곳에선 막걸리가 최고급 웰빙주로 인기다. 이동주조㈜ 측은 작년 한 해 동안 일본에서 막걸리만 팔아 34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 회사의 일본 매출은 몇년째 20~25%씩 증가하고 있다.

알코올 도수가 6~7도인 저도주인 데다 유산균과 식이섬유가 풍부해 장 운동에 효과적이란 게 일본인들이 막걸리를 찾는 이유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배용준 막걸리'로 통하는 국순당의 '고시레 막걸리'도 시판 한 달 만에 3만병이 팔렸다. 배상면주가의 '대포막걸리' 역시 한 달 만에 2만5000병이 팔리며 '한류 막걸리' 대열에 이름을 올렸다.

참살이탁주도 최근 일본 유통업체와 100만달러 수출계약을 체결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 수출은 402만달러(4891t, 25.4% 증가)로 전년보다 53% 늘었다. 올해도 40% 이상 확대가 기대된다. 막걸리가 대(對)일본 수출 효자상품이란 게 주류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일본인의 막걸리 사랑은 한국에서도 확인됐다.

지난달 1차 골든위크 때 일본관광객이 몰리는 관광지 인근 편의점과 대형마트는 막걸리 매출이 두자릿수 상승했다. 막걸리를 판매하는 특급호텔이 나왔고, '막걸리집 탐방'이 옵션인 서울관광 상품도 등장했다.

최남주 기자/calltaxi@heraldm.com, 사진=정희조 기자/checho@heraldm.com

▶57년 전통 '열차집' 가보니외국인도 즐겨찾는 피맛골 명소 빈대떡 곁들여 하루 300병 불티

서울 최고(最古)의 '막걸리 골목'으로 유명한 종로구 청진동 피맛골도 막걸리 열기가 뜨겁다. 피맛골은 요즘 재개발사업으로 건물들이 거의 철거됐지만 '피맛골의 명물'로 57년 역사를 자랑하는 '열차집'은 영업을 계속하고 있다. 최근 들어 손님들이 워낙 많기 때문. 저녁시간에는 20~30분씩 기다리는 게 다반사일 정도로 1, 2층 주점은 항상 만석이다. 일평균 막걸리 10궤(1궤 30병)이 거뜬히 소진되는 열차집은 요즘 일본인 관광객들도 자주 눈에 띈다. 열차집 우제은 사장은 "어디서 소문을 듣고 오는지 유럽인들, 특히 프랑스인들이 파전이며 빈대떡을 안주로 막걸리를 즐겨 마신다"고 귀띔했다.

'막걸리 열풍'은 캠퍼스에서도 대단하다. 그간 소주, 맥주, 와인에 밀려 대학가에서 거의 외면받았던 막걸리가 약한 술을 선호하는 트렌드에, 다이어트 효과까지 있다는 입소문이 더해지며 화려하게 부활한 것. 특히 최근엔 푸른 눈의 외국교환학생까지 가세하고 있는 것이 특징. 더구나 5월 축제기간과 맞물려 대학가의 막걸리 사랑은 절정을 이루고 있다.

신촌이나 홍대, 성북구 안암동 등 대학들이 밀집한 지역에선 막걸리 전문주점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지난 10일 신촌의 한 막걸리주점을 찾은 독일인 미하엘(23) 씨는 "한국 전통주란 호기심에 얼마 전 막걸리를 처음 마셔봤는데 달콤하면서도 독하지 않아 즐겨 마시게 됐다"고 말했다.

건강을 생각하는 웰빙바람도 대학가 막걸리 열풍의 한 요인. 이수영(여ㆍ21ㆍ서강대) 씨는 "다이어트에 좋다는 말을 듣고 시음해봤는데 도수가 낮아 쉽게 마실 수 있고, 안주도 적게 먹는 등 일석이조 효과가 있더라"고 반겼다. '기분 좋은 취기' 역시 막걸리의 매력으로 꼽았다.

김상수, 김재현 기자/dlcw@heraldm.com▶중기청장의 막걸리 예찬론소주+막걸리+사이다 '혼돈주' 다음날 아침에도 컨디션 가뿐

강원도 산골에서 어린시절을 보낸 홍석우 중기청장에게 막걸리는 추억의 코드다. '19금(禁)' 품목이지만 어릴적 한두 잔씩 얻어마시곤 했던 쌉싸래한 맛을 잊을 수 없다. 바로 그 추억이 오늘날 그를 '막걸리 예찬론자'로 만들었다.

홍 청장은 소주에 막걸리를 섞은 '혼돈주(混沌酒)'를 즐겨 마신다. 아예 혼돈주의 유래와 특성을 적은 인쇄물을 갖고 다니며, 만나는 이마다 나눠줄 정도다. 혼돈주는 18세기 문인 석치(石癡) 정철조가 원조로, 홍 청장은 여기에 사이다를 살짝 첨가한다.

그는 "흔히들 막걸리를 마시면 이튿날 머리가 아프다고 하는데 이는 옛날 얘기다. 특히 혼돈주는 다음날 아침에도 가뿐하다"고 귀띔했다. 또 "막걸리를 마실 때는 안주에 손이 덜 가기 때문에 살도 덜 찐다"고 덧붙였다.

홍 청장은 "막걸리는 풋풋한 데다 서민적 이미지여서 중기청장 자리와도 잘 맞는다"며 회식자리에선 언제나 혼돈주로 건배를 제의하곤 한다. 불황에 처한 중소기업들의 파이팅을 외치면서 말이다.

대전=이권형 기자/kwonhl@heraldm.com- '대중종합경제지' Copyrights ⓒ 헤럴드경제 & heraldbiz.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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