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최승철 처형, 남북관계 암운 장기화 예고

입력 2009. 5. 18. 21:02 수정 2009. 5. 18.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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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대남 일꾼들'.."대남 의존심.환상 심화 책임 씌워"

(서울=연합뉴스) 최선영 장용훈 기자 =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간 북한에서 남북대화와 남북 교류협력 사업의 일선에 나섰던 대남 `일꾼(간부)'들이 사라지고 있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고 개성공단 사업이 위기에 몰리는 등 남북간 정세가 급속히 악화되는 가운데 북한에서 대남 교류협력의 최전선에 있던 관련자들이 일부는 극형까지 받는 등 처벌된 것으로 속속 전해짐으로써 북한 내부의 대남 기조가 쉽게 반전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남북간 경제협력사업을 맡아온 민족경제협력위원회 정운업 위원장은 조사를 받은 뒤 자취를 감췄을 뿐 아니라 민경협 조직 자체가 내각에서 사라졌고, 남북 장관급회담 북측 단장을 맡았던 권호웅 내각 책임참사도 실종됐다.

이들을 포함해 대남일꾼들이 대폭 교체돼 대북사업을 하는 남한 단체 관계자들은 최근 북한을 방문하면 전혀 낯선 사람들이 상대역으로 나타난다고 전하고 있다.

특히 남한의 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에서 각종 남북간 교류협력 사업을 실무적으로 총괄했던 최승철 노동당 통일전선부 수석 부부장이 사형당한 것으로 알려진 것은 여러 면에서 충격적이다.

무엇보다 그는 명목상으론 비리 혐의로 조사를 받고 처형됐으나, 극형을 받은 실제 이유는 통일전선부가 주도한 지난 10년간 대남 교류협력 정책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진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직접 서명한 6.15공동선언과 10.4남북정상선언이 남한의 새 정부에 의해 외면당하는 상황에서 북한 당국은 희생양을 필요로 했고 최 부부장이 `정책적 과오'죄를 뒤집어 쓴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북한 당국은 남북 화해협력 10년간 북한 주민들의 대남 의존 심리와 대남 환상이 심화된 책임을 최 부부장에게 모두 몰아 씌워 처형함으로써 간부와 일반 주민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우는 효과도 노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0년간 남북 접촉면의 확대와 중국을 통한 물자와 정보 유입으로 북한 주민들 사이에선 남한이 잘 산다는 인식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남한의 드라마와 영화를 몰래 보는 `한류'바람이 불기도 했다.

`대한민국'이라는 표기가 선명한 남한 비료와 쌀 포대가 평양 도심 거리의 자전거 짐칸에 실린 채 공공연히 돌아다니는 것은 더 이상 방북자들의 화젯거리가 아닐 정도가 됐다.

또 남한에서 식량이 지원되면, 그에 앞서 지원된다는 소식만 전해져도 북한 시장에서 식량가격이 급락하는 등 북한 경제가 남쪽에 좌우되는 상황도 만들어졌으며, 북한의 협동농장에서는 남쪽의 비료가 언제 지원되는지 손꼽아 기다리는 현상도 만연했다.

한 대북 전문가는 "대남사업 주역인 최 부부장이 단순히 `철직(해임)'과 지방추방 수준의 처벌을 받는 데 그치지 않고 극형을 당한 것은 북한 당국이 남북관계 활성화가 북한 사회에 미친 부작용을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를 말해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북 포용정책은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어서 퍼주기 같은 부정적 면과 북한 주민의 대남 의존도 심화 등과 같은 의식 변화라는 긍정적 결과를 동반하게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최 부부장의 처형은 또 남한 새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북한 당국의 불신의 깊이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러한 분위기에서 북한 내 누구도 감히 대남정책의 기조를 대화와 협상으로 바꿀 것을 주장할 엄두를 낼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이는 현재의 남북관계의 경색이 웬만한 계기가 없이는 반전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는다.

1992년 북한 경제대표단으로 남쪽을 다녀간 당시 김달현 정무원 부총리는 북한 내부에서 개혁개방을 주장하다 1993년말 부총리에서 해임돼 함경남도 2.8비날론연합기업소로 좌천됐고 이후 1998년께 자살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달현의 해임 이후 남한에서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 적극적인 대북 포용정책에 나설 때까지 김영삼 정부 때는 제대로된 남북회담이 열리지 못했다.

이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었지만 김달현 부총리의 해임을 목격한 북한의 대남 일꾼들은 감히 내부적으로 남북회담의 필요성을 제안할 엄두도 내지 못했을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자칫 회담을 건의했다가 `수정주의자' 등의 낙인이 찍힐 것이 뻔한 상황에서 용기를 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최근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것도 북한 내부의 이러한 현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강산 관광객 피격사망 사건이나 개성공단 문제 등에서 북한의 대남 일꾼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낸다면 현재처럼 대립 일변도의 국면을 피할 수도 있었겠지만 김정일 위원장의 신임속에 대남사업을 추진했던 최승철마저 처형되는 상황에서 이들은 극도의 보신주의로 일관할 수 밖에 없다.

최승철 부부장은 특히 현대그룹의 파트너로 활동해 왔다는 점에서 그의 부재는 남한 입장에선 더욱 아쉬울 수 밖에 없다.

한 전문가는 "남한의 대북정책과 북한의 대남정책은 상호성을 가지고 있다"며 "남쪽에서 포용정책을 펼치면 북쪽도 그나마 유연한 대응을 하지만 남쪽에서 강경한 대북정책을 이어가면 북쪽에서도 군부 등 강경세력이 득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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