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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말, 그들의 신분사회

입력 2009.06.14. 13:45 수정 2009.06.14.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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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지혜 기자]한국인들은 사람을 만나면 먼저 나이를 묻는다. 말씨를 어떻게 써야할지 결정하기위해서이다. '언니'라고 해야 할지 말끝에 '요'를 붙일 건지 결정하려면, 일단 나이를 아는 것은 필수다.

나이 뿐만이 아니다. 한국말을 시작하려면 상대에 대해 알아야할 게 참 많다. 직업, 교육수준, 결혼여부, 부모나 배우자의 직업, 경제적 능력, 타고다니는 차의 종류, 살고 있는 동네, 입고 있는 옷차림 등. 물론 남자냐 여자냐도 중요하다. 직업에도 일렬로 줄을 세울 만큼의 귀천이 있어 어느 직업의 어떤 직책이냐까지 알아야 한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변변한 게 없으면 때때로 반말을 들어야 한다. 내가 반말을 허락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최종결정은 상대가 한다.

그래서 그런가? 가진 거라곤 나이 밖에 없는 사람들은 한 두 살에도그렇게 민감하다. 아니 몇 달, 때로는 며칠도 중요하다. 1월에 태어난 나 같은 사람은, 전해 12월생인 동기와 친구하고 싶어 꼭 "빠른" 몇 년 생이라고 강조한다. 고작 며칠 늦게 태어난 죄로, 영원히 하대를 당하고 반말을 듣는 관계로 가고 싶진 않은 거다.

반말로 드러나는 신분질서

반말이 어떻게 결정되는지 그 머릿속을 한국인이라면 모두 아는터라, 살면서 그 때문에 발끈할 일도 참 많다.

물론 반말이라고 무조건 기분 나쁜 건 아니다. 친구나 가족이나 애인이 하는 반말은 당연하고 정겹다. 좋아하는 선생님이 내게 하는 반말도 기분 나쁘지 않다. 문제는 나와 가깝지 않은 사람들, 특히 처음 보는 사람들이 쓰는 반말이다.

낯선 관계에서 반말이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특이한 현상이다. 대개 격식없는 말이란 상대와 가까워서 허물이 없기 때문에 쓸 수 있는 말이다. 낯선 사람이라면 당연히 대하기 조심스럽고 어려운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에서 가까운 관계가 아닌데에도 '격식없이 말' 할 수 있다는 것, 과연 무슨 의미일까?

오늘날 한국어의 반말은 사회적 관계만이 아닌 신분의 차이를 드러낸다. 카스트 제도처럼 사회 전체적으로 고정된 신분은 아니다. 대신 한국에는 개인 단위의 신분계급이 있다. 각자가 자신을 포함하여 주변 사람들을 일렬로 늘여세운 계급이다.

누가 그 계급을 미리 정해놓은 것이 아니므로, 그 계급을 만드는 책임은 각자에게 있다. 명확한 기준이 없으니, 나이, 직업, 성별 등등에 따라 내 마음대로 정하면 된다. 지극히 개인적인 결정이지만, 또 사회적인 편견을 반영한다. 반말은 그렇게 내가 만들어 놓은 신분사회에서 나보다 낮은 사람들에게 쓰는 말이다.

조선시대 이후로 공식적인 신분사회가 없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씨를 통한 신분 만들기는 일상과 분리할 수 없는, 삶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더 높은 존대말을 들으려고 화려하게 치장하고, 비싼 외제차를 타고, 높은 직책을 탐한다. 자신이 즐겨하는 일이라도 늘 반말을 듣는 직업이라면 회피한다. 오히려 자신이 즐기지도 않고 재능도 없는 일이라도 존대말을 듣는 자리를 찾아간다. 계급의 저 꼭대기에 올라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존대의 말을 할 그 날까지, 더 높이 더 높이 가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 버린다.

유인촌 장관의 반말에 분개하는 것, 그가 교양 없어서만은 아니다

"학부모를 누가 이렇게 세뇌를 시켰을까" "서사창작과? 그게 잘못된 과거든" 6월 3일, 한예종 문제 관련 문화체육관광부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는 학부모에게 막말을 해 물의를 빚고 있는 유인촌 장관.

ⓒ 한예종비대위

유인촌 장관의 반말을 통해 우리는 그가 만들어 놓은 신분사회를 본다. 그가 학생을 대하고 학부모를 대하며 사용하는 말씨를 통해, 우리는 그가 이미 자신을 매우 높은 지위로 규정하고 대부분의 국민들을 자신의 아래로 늘여세웠다는 것을 안다.

그가 신분을 정하는 기준은 현재로서는 그렇게 다양한 것 같지는않다. 대통령, 장관, 그리고 국민. 이 세 가지의 신분 정도? 그의 최근 행적들을 보자면, 상대의 나이나 직업도 별로 개의치 않는 듯 하다. 장관 아래의 국민은 모두 평등하게 천하다.

유인촌 장관의 반말에 분개하는 것은, 단순히 그가 장관으로의 교양이 없거나 국민을 무시하여 자존심에 상처를 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반말에 분개하는 더 큰 이유는 그가 신분사회 놀이를 하고 있다는 그 자체, 그것도 제대로 하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대한민국에 태어나 우리는 평생에 걸쳐 소모적인 신분 싸움을 한다. 중요하지도 않은 몇가지의 잣대로 나를 단정하는 것에 화가 나지 않았던가. 어리다는 것이 존중받지 못해야 할 이유도 안되며, 말단 사원이라는 것이,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이 쉽게 반말을 들어도 되는 이유는 아니다. 직업의 귀천, 학력으로 결정되는 성골 진골의 사회를 언제까지 안고 가야 하는지. 반말로 되풀이되는 일상 속에서의 천민화를 언제쯤이나 끝낼 수 있는지 답답한 것이 어디 나뿐이랴.

유인촌 장관의 반말에 우리가 그토록 분개하는 것은, 그의 말씨에서 우리가 평등사회 대신 더 지독한 신분사회로 회귀하고 있음을 감지하기 때문이 아닌가.

존중을 받고자 하는 인간의 마음은 너나 할 것 없으며, 그것이 근대의 혁명과 민주주의를 이끈 힘이었다. 신분철페와 평등의 정신은 좌파냐 우파냐에 관계없이 민주주의 국가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공유하는 가치이며 사회의 근간이다.

낯선 이에게 반말을 내뱉는 행동, 단지 교양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의 가치와 인간의 차별없는 존엄성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의 부족. 유인촌 장관이 공직자이기에 더욱 지탄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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