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책>'괴짜사회학'..전봇대 정책의 허점 찾다

2009. 7. 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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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지역으로 둘러싸인 데서 자라는 것과 가난하지만 근처에 부유한 지역이 있는 곳에서 성장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후자의 집단은 부유한 지역의 학교나 서비스, 고용 기회를 제대로 이용할 수 있을까.이런 사회학의 주제는 거리와 집, 당사자를 직접 대면하지 않고는 풀 수 없는 일이지만 많은 경우 시늉만 내거나 컴퓨터 앞의 작업으로 끝나는 게 현실이다. 세부를 들여다보지 않은 연구 결과물이 실생활과 동떨어진 '전봇대' 정책을 낳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사회학자 수디르 벤카테시는 빈민가 청년의 삶을 연구하기 위해 아예 빈민공영주택단지에 들어가 뿌리를 내렸다. 그것도 10년 이상 거주하며 그곳 마약상과 코가인 중독자, 무단 입주자, 매춘부, 포주, 사회운동가, 경찰, 주민대표, 공무원과 모두 어울렸다. 저마다의 입장에서 도시를 바라보고 소외된 이들과 소통함으로써 그는 '살아있는 사회학'을 일궈냈다. 아니 사회학을 그것이 탄생한 최초의 지점으로 다시 돌려놓았다고 말해야 옳다.'괴짜사회학'(김영사)는 수디르의 빈민가 생활기 혹은 갱단 옵저버 관찰기다. '괴짜사회학'이란 말 그대로 정통 사회학자의 행동반경에서 좀 벗어난 이야기다. 마약 갱단 보스를 따라다니며 보고 들은 빈민가의 실상이라는 한계도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일반적인 사회학 저서처럼 연구방식이나 해법을 기대하면 오산이다. 그렇다고 허점을 찌르는 재치로 이뤄진 사회학도 아니다. 대신 사회학의 주제인 사람과 사회, 그들의 삶의 방식 자체가 생생한 이야기로 들어있다.

저자는 빈곤문제에 관한 공공정책 수립을 위해 흑인 청년의 실상을 연구하는 지도교수 밑에서 기초자료 조사차 사우스웨스트 레이크파크 공영주택단지를 찾는다. 그는 오물 냄새로 찌든 건물에서 이내 코카인을 파는 블랙킹스 갱단원과 마주치고 총칼로 위협을 받지만 갱단 보스의 호의로 벗어난다. 그리고 "얼간이 같은 질문이나 하면서 돌아다녀선 안돼. 우리 같은 사람하고 어울려야 한다"는 엉뚱한 충고를 듣는다. 사회학자로서 첫발을 내딛고자 하는 그에게 그 일은 충격적인 경험이 됐다. 그리고 지도교수와 동료에게 돌아가는 대신 단 하나의 선택지, 곧 진정으로 시카고 도심에 사는 흑인 청년의 복잡한 삶을 이해하기 위해 그들과 어울리는 일을 택한다.

저자는 갱 보스의 도움 아래 시카고 시의 마약판매 갱조직인 블랙킹스 분파를 조사하게 된다. 그들이 어떻게 서로 영역을 다투고 협력하는지, 값싼 농축 코카인에 의해 어떻게 경제가 돌아가는지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갱단의 문어발식 사업도 가관이다. 마약거래는 물론 강탈, 도박, 매춘, 장물매매 등 많은 검은 사업으로 돈을 벌고 농구선수권대회, 소프트볼선수권대회, 카드놀이 등 각종 스포츠와 축제를 주민대상으로 열기도 한다. 또 경찰을 대신해 건물의 치안을 맡기까지 했다. 빈민 거주지역 주민의 대응도 일상의 법 상식과 달리 나름의 방식으로 무법 자본주의에 대처하고 있었다. 그가 보여준 빈민지역의 실상은 기존의 사회학과 차원이 다른 보고서다.

수디스의 성과는 또 있다. 빈곤문제를 연구하는 학자가 당시만 해도 지역사회 문제에서 여성이 하는 역할을 거의 알지 못했는데, 그들이 어떻게 살림을 꾸리고 가족을 먹여살리는지 직접 인터뷰해 살림경제를 조사한 것이다. 빈민에 대한 편견도 바꿔놓았다. 대체로 빈민은 지각이나 신중함이라고는 거의 없고 어수룩해서 이용당하기 좋은 사람이라는 인식과 달리 저자는 그들 사이에서 관용과 자발성을 경험한다. 또 갱단, 주민대표, 경찰의 은밀한 카르텔도 그대로 폭로된다.

이 책의 또 다른 감동이 있다면 인간적?도덕적 갈등이다. 저자는 갱단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지만 누군가 부당하게 얻어맞고 있는 동안 객관적인 사회학자로서 위치를 지키는 게 정당한지에 대한 도덕적 물음이다.무엇보다 이 책은 짜릿하고 스릴 만점의 소설처럼 읽을 수 있다. 시카고 마약판매 갱단에 들어간 젊은 사회학자 수디스의 신랄한 이야기는 사람살이의 여러 층과 공식적으로 수치화하지 않는 도시경제의 어두운 구석과 틈새, 정확한 실상을 바탕으로 한 정책 등에 대해 다양한 시사점을 남긴다.그의 이야기는 스티븐 레빗의 유명한 저서 '괴짜 경제학'에 처음 소개돼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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