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과학수사연구소를 가다] (3) 마약분석과

2009. 8. 25.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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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서울세관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과자 상자를 보내왔다. 상자 안에는 맛있게 구워진 쿠키가 들어 있었다. 모양은 근사한데 아무래도 내용물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국과수 마약분석과 연구원들은 즉시 성분 분석에 나섰다. 조사결과 대마초 가루와 쿠키 가루를 섞어 구운 것으로 드러났다. 먹기만 해도 환각효과가 있다고 했다. 최근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유형의 마약 가운데 하나다.

지난 4월 수사당국에서 머리카락 샘플을 몇개 보내왔다. 마약복용 혐의가 있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했다. 그 중엔 이름만 대면 알만한 연예인 A씨의 것도 있었다.

머리카락 자체도 가는데 그 안에 마약이 함유된 것을 분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세밀한 분석 끝에 A씨의 머리카락에서 메스암페타민(필로폰) 양성반응이 나왔다. 그러나 동료 3명의 머리카락에선 음성반응이 나왔다. 결과는 즉시 통보됐고 A씨는 바로 구속됐다.

그런데 최근 들어 충격적인 사건들이 잇달아 발생했다. 지난 2월 부천 송내 사거리에선 한 택시가 신호를 기다리던 보행자를 치고 신호제어기까지 박살을 냈다. 당시 이 택시 운전자는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정신도 말짱했다.

지난 5월엔 부천 심곡동에서 한 운전자가 3번이나 추돌사고를 내고 도주했다. 이 운전자는 즉시 검거됐지만 사고를 냈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국과수 분석 결과 두 운전자의 소변에서 모두 마약 성분이 검출됐다. 환각상태의 운전자들이 거리를 질주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처럼 국내 마약사건은 최근 들어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다.

검찰에 따르면 외국인 마약류 사범만도 지난 2007년 298명이었던 게 지난해엔 928명으로 폭증했다. 이 가운데 필로폰과 같은 향정약물 사범은 2007년 165명에서 지난해는 4.4배나 되는 727명으로 늘었다.

단속되는 마약도 전통의 헤로인이나 필로폰 대마 등을 넘어서 엑스타쉬 해쉬쉬 야바 러시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외국인들이 마약을 들여오는 기법은 갈수록 놀라워지고 있다. 전에는 은밀히 소량을 들여왔지만 이제는 많은 양을 비닐 등으로 싼 뒤 체내에 삽입하거나 과자 사탕 등으로 위장해 들여오기도 한다.

외국인 마약사범이 늘어난다는 것은 내국인도 그만큼 마약류의 유혹에 노출돼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마약류 사범은 어떻게 적발할까. 길거리에서 해롱대는 것을 보고 잡아갈까.

국과수 마약분석과를 찾아 최근 마약 남용의 실태와 검증 과정을 알아봤다.

2시간 내 결과 통보

국과수 본관에 있는 마약분석과는 조용한 연구실 같은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일부 연구원들은 열심히 자료를 찾고 있고 또 한쪽에선 갖가지 실험기구로 샘플을 분석하고 있다. 수사와 맞닿은 곳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평온하다.

그런데 최화경 국과수 마약분석과장은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지만 이곳은 마약단속의 최일선이며 그만큼 민감한 곳이다"라고 설명했다.

연구원들은 그다지 움직이지 않는 것 같지만 이곳에서 하는 일은 거의가 시간을 다투는 것들이라고 했다.

국과수 감정서가 나가야 수사당국이 마약혐의자를 풀어주든지 구속하든지 결정할 수 있기에 감정 작업은 인권과도 직결돼 있다.

형사소송법은 영장 없이 구금할 수 있는 기간을 최장 48시간으로 제한하고 있다. 어떤 혐의자라도 수사 당국은 이 시간 내에 증거를 제시하거나 풀어줘야 한다.

여기엔 샘플을 채취해 국과수에 보내는 시간까지 포함돼 있다. 연구원들이 머뭇거릴 틈이 없는 것이다.

게다가 혐의가 없는 사람에겐 단 한 시간을 잡아 놓아도 인권침해가 될 수 있다.

국과수의 감정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평범한 시민의 인권을 침해할 개연성이 커지는 것이다. 그런데 국과수에 넘어오는 감정의뢰가 이만저만 많은 게 아니다. 본부에서만 한해 2만2000건 이상을 처리해야 한다.

적어도 하루에 100건씩은 감정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10명의 연구원이 이 많은 양을 모두 정밀하게 검사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국과수는 1차 예비검사로 음성 양성 여부를 판별하고 2시간 이내에 감정결과를 통보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시간적 제한과 인권보호라는 두 과제를 풀고 있다.

채취한 소변샘플을 분석기에 넣고 20~30분 정도 돌리면 음성인지 양성인지 또는 특정 성분이 기준치보다 높은지를 가려낼 수있다고 한다.

결과는 컴퓨터에 자동으로 입력되며 컴퓨터는 의뢰자 휴대전화에 SMS문자로 결과가 나왔음을 바로 통보한다.

감정결과는 바로 특정 웹사이트에 올라가며, 의뢰인은 비밀번호를 입력한 뒤 결과를 보고 혐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지 아니면 석방할 지를 판단한다.

국과수는 양성 반응이 나왔거나 특정 성분이 기준치보다 높은 경우만 정밀검사를 통해 최종적으로 마약복용 여부를 판단하는데 예비검사에서 양성 판정이 나온 경우는 최종 감정결과도 거의 마찬가지로 나온다고

했다. 그런데도 정밀검사를 하는 것은 법적증거로 채택되기 위해선 이런 과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의뢰 샘플이 대부분은 혐의를 가진 사람의 소변이나 머리카락 등이다.

최 과장은 "최근에는 손톱·발톱도 감정하고 있으며 침도 유용한 대체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만큼 혐의자에게 불쾌감을 덜 주면서 샘플을 채취할 수 있게 됐다고 할 수 있다.

마약사범이 머리 깎는 이유는?

마약분석과는 소변을 분석하는 마약연구실과 머리카락을 분석하는 향정약물연구실, 압수품이나 기타 마약류를 다루는 환각물질 연구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렇게 부서를 나눈 데는 나름 이유가 있다. 복용약물은 소변으로 배출되는데 이 때 검출단위는 마이크로그램이나 나노그램 단위다. 그런데 소변으로 검출할 수 있는 기간은 제한적이다.

보다 오랜 기간 마약성분을 검출하려면 머리카락을 검사해야 한다.

머리카락에서 마약성분을 검출할 때는 피코그램 단위를 사용한다. 나노그램이 10억분의 1그램인데 피코그램은 1조분의 1그램이다. 머리카락 검사는 이처럼 극도로 작은 단위를 사용하므로 조금만 오염돼도 결과가

달라진다. 그래서 아예 방을 따로 나눴고 샘플 채취 때부터 오염이 안 되도록 철저하게대비한다고 했다.

머리카락을 검사하는 이유는 핏줄을 타고 돌던 마약성분이 모세혈관을 통해 머리카락으로 들어오면 다시는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 특성을 이용한 것. 머리카락은 매달 1cm 정도 자라므로 마약성분이 나온 지점을 알면 언제 마약을 복용했는지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기에도 맹점은 있다.

머리를 박박 밀어버리면 이미 머리카락에 들어와 있던 마약성분을 더 이상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쫓는 자와 쫓기는 자

마약중독자는 필로폰 2g 정도까지 버틸 수 있다. 그렇다면 건강한 사람은 어떨까. 몸이 좋으니 4~5g도 버틸 수 있는 게 아닐까. 천만의 말씀이다. 필로폰의 최초 투입량은 0.03g에 불과하다.

내성이 생기지 않은 사람에겐 1g이면 치사량이다. 그러나 내성이 생기면 점점 더 많은 양을 맞을 수 있게 되며 그래야 마약의 효과가 나타난다. 이게 마약이 무서운 이유다.

그런데 처음 마약을 하는 사람은 아주 미미한 양을 쓰므로 체내에 잔류하는 양 역시 미미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마약류 분석은 노하우와 정밀한 기술이 요구된다.

게다가 마약은 허가된 공장에서 일정하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므로 함량이나 성분, 순

도도 제각각이다. 대신 불순물이나 첨가물 등을 역으로 추정해 특정 마약이 어디서 만들어졌는지, 또 마

약의 다른 물질을 섞였더라도 제조원이 어딘지 추적할 수 있다고 한다.

특히 마약은 인체 내에서 대사과정을 거치며 성분이 바뀌기도 하는데 전문가들은 이를 바이오 트랜스포메이션이라고 부른다.

마약을 적발해내려면 이처럼 투입부터 분해될 때까지 각 과정에서 어떤 성분으로 나타날지를 미리 알고 있어야 한다고 한다.

평소부터 많은 연구를 하고 샘플을 확보해 놓아야 하루가 다르게 영악해지는 마약사범을 적발해낼 수 있다는 얘기다.

회사 내 마약검사 해야

당국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적발하려고 하지만 마약사범은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특히 최근 적발되는 마약사범의 7%는 직장인이라고 했다. 호기심에 끌려 들어갔다가 중독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최 과장은 "최근엔 피로와 졸음을 쫓기 위해 마약을 복용하는 운전자도 늘어나는 추세"라며 "이들 대부분은 호기심 때문에 했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제는 단속으로 잡기엔 마약

이 너무 광범위하게 퍼졌다"면서 "운동선수나 파일로트를 대상으로 도핑테스트를 하는것처럼 이제는 회사내 마약검사 (working place drug testing)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국에선 이미 대형 사고를 막기 위해 회사 내 마약 검사가 보편화되고 있다"는 최 과장은 그래야 호기심으로 마약을 복용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마약하면 기분이 좋다?

흔히 마약을 하면 환각작용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모든 마약이 그런 것은 아니다. 마약에는 흥분을 시켜 뇌기능을 활발하게 하는 카페인이나 니코틴 코카인 메스 암페타민 등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아편이나 헤로인, 수면제, 본드, 부탄가스처럼 뇌기능을 억제하는 것도 있다. 또 대마나 LSD처럼 환각효과가 있는 것도 있다. 마약의 대명사인 아편은 양귀비에서 뽑아내지만 모든 양귀비가 다 아편 원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100여종의 양귀비 가운데 3종류에서만 아편을 뽑아내는데 한국의 자생종 양귀비 2종도 재배금지작물이다.

본드나 신너에 함유된 톨루엔이나 부탄가스도 환각작용을 일으키는데 뇌 조직에 치명적이라고 한다.

한편 마약을 했다고 모두 검출되는 것은 아니다.

복용양이나 남용의 정도, 체질에 따라 결과가 다르게 나올 수도 있다.

메스암페타민은 70시간 내에 90%가 배출되고 대마도 흡연한 것의 70%는 닷새내에 배출된다. 그러나 극미량의 지용성 성분이 체내에 축적돼 한 달 정도가 지난 뒤까지 검출되기도 한다.

[정진건 기자]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192호(09.09.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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