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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지붕 4대가 동거.. 외로울 틈도 없어요"

입력 2009. 08. 29. 06:59 수정 2009. 08. 29.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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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한 이주 여성 쟈스민95년 필리핀서 대학생때 외항선원 남편과 결혼대가족 맏며느리에 두 아이 엄마로 종횡무진TV패널·이주자모임 사무국장 등 대외활동도 분주"다문화가정 벽 스스로 허물어야… 지금 너무 행복"

그냥 아줌마다. 여느 주부와 똑같다. 아니 더 바쁘다.

아침에 일어나 올해 중학교 1학년인 아들과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들 학교 가는 것 챙겨주랴, 시어른을 비롯한 가족들 식사 준비하랴, 정신없이 하루를 시작한다. 요즘에는 연극 연습까지 해야 하니 24시간이 모자란다.

청바지 위에 티셔츠나 편한 남방을 즐겨 입는다. 긴 생머리에 건강한 구리빛 피부, 검은 눈동자. 언뜻 보면 잘 모른다. 말도 잘 한다.

그녀는 필리핀 출신의 한국인 쟈스민(32)이다. 4대가 함께 사는 대가족의 맏며느리이고, 이주여성 극단 '샐러드'의 배우이고, TV 프로그램 '러브 인 아시아(Love in Asia)'의 고정 패널이며, 이주여성 모임 '물방울 나눔회'의 사무국장으로서 이리 뛰고 저리 뛴다.

쟈스민은 '다문화 가정', '이주여성', '이주노동자'란 조어가 만들어지기 전에 한국의 외항선원 이동호(44)와 인연을 맺었다. 벌써 16년전 일이다.

"엄마, 엄마-. 굿뉴스-."

아들 승근이가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호들갑이다.

"엄마, 선생님이 방과 후에 나를 불러서 얘기하시던데…. 승연이하고 나 하고, 우리 학교에서 유일한 '다문화'래. 그리고 방과 후 학습도 모두 무료로 해주신데. '다문화'가 뭐야."

초등학교 4학년이던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쟈스민은 생각에 잠겼다.

"좋아해야 할지, 나빠해야 할지 잘 모르겠더라구요. 공짜를 싫어할 사람은 없지만 어디선가 분리되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시할머니, 시부모, 시동생 부부와 함께 사는 '어린 신부' 쟈스민은 줄곧 자신이 외국인이란 것을 잘 느끼지 못했다. 할 일은 많고, 늘 시간은 부족했다.

"여럿이 어울려 사니까 한국말도 빨리 배우고, 외로울 틈도 없었어요. 가족들이 도와주고, 이해해 주니까 빨리 적응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학교에 가면서 나 스스로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이란 것 때문에 처음에는 좀 위축됐었어요."

한국의 엄마들은 학교에서도 할 일이 많다. 각종 행사에 나가 품을 팔아야 하고, 누구나 순번을 정해 급식 당번을 해야 한다. 엄마의 몫이다.

그러나 쟈스민은 아이를 생각해 집 울타리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총각이던 시동생이나 시어머니, 때론 남편이 대신 급식 당번을 맡았다. 특히 시동생이 '애 아빠세요'라는 말을 들어가며 형수의 자리를 여러 번 메워 주었다.

어느 날, 아들이 불만을 터뜨렸다.

"엄마는 왜 학교에 안 와. 난 거짓말쟁이가 됐잖아. 우리 엄마는 영어도 잘 하고, 이쁘다고 자랑했는데…"

쟈스민은 아차 싶었다. 엄마 때문에 아이가 '왕따'가 될 것이란 생각이 판단 착오였음을 깨달았다. '오히려 아이는 당당한데, 내가 바보 같았구나'하며 후회했다.

"어린 아들이 저에게 가르침을 준 셈이었어요. 학교에 가면 애 친구들이나 엄마들이 '외국인이다, 외국인. 어느 나라 사람이에요. 영어해 봐요'라며 이상하다는 듯 대하고, 수근거릴 것이 분명해 나서지 않으려구 했거든요. 그런데 아들 이야기를 듣고서 자주 만나고, 익숙해지면 편견은 자연스럽게 없어진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됐어요."

1995년 4월29일 결혼한 이후 10여년 동안 바깥 생활을 자제하던 쟈스민은 그 날 이후 한국 엄마와 똑같아졌다. 모든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아줌마들과 수다 떨며 지낸다.

필리핀의 남쪽 민다나오섬, 태풍도 빗겨가는 도시 다바오(Davao)에는 전세계에서 많은 배들이 들락날락한다.

1993년 쟈스민은 꿈 많은 열여섯 소녀였다. 공부도 잘 하고, 예뻤다. 주말이던 부모님이 운영하던 편의점에 나가 일손을 보탰다. 그리고 아테네오 데 다바오 대학(Ateneo de Davao University)에서 생물학을 공부하는 신입생이던 1995년 결혼했고, 3학년이던 1997년 첫 아이가 생겨 학업을 중단한 채 한국에 왔다.

영화 '대부'의 삽입곡 '스피크 소프트리 러브(Speak Softly Love)'를 흥얼거리는 소녀를 보고 한눈에 반한 청년이 바로 지금의 남편 이동호씨다.

"의사가 되려고 했어요. 그런데 한국인이라고 밝힌 아저씨가 날마다 찾아왔어요. 싫다고 해도 아주 끈질겼어요. 필리핀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좋다고 하는데…"

이동호씨는 틈만 나면 부모님을 속이고 다바오로 달려 왔다. 심지어 쟈스민의 집과 학교 사이에 방을 얻어놓고 자신의 사랑을 보여주었다. 양가의 반대는 당연한 일이었다.

이동호씨는 오전 7시에 시작되는 강의 시간에 맞추기 위해 5시면 눈을 떠 1시간 거리에 있는 쟈스민의 집으로 갔다. 그럼 6시. 다시 쟈스민과 함께 학교까지 1시간을 동행했다. 그리고 점심 때도 정문 앞에서 쟈스민을 기다렸다가 함께 밥을 먹었다.

"저를 대하는 태도가 변함없는 것을 보고 '나에게 이렇게 할 사람이 또 있을까'라고 생각하다 마음을 정했어요. 나이는 문제가 아니었어요. 친구들이나 부모님이 반대했지만 저희들의 마음은 확실했어요."

쟈스민의 대가족은 2007년 4월 KBS-TV의 '러브 인 아시아'에 출연했다. 가정주부로만 살던 쟈스민이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 뒤 MBC-TV의 '아시아, 아시아'에도 소개됐다.

"처음엔 방송 출연에 거부감이 있었어요. 외국인 주부들의 생활이 불쌍하게만 그려지는 것이 아주 싫었거든요. 나는 그렇지 않은데, 왜 모두 힘들고 어렵다고만 하지. 그런데 차츰 생각이 변했어요. 다문화가정의 문제는 아이들이 아닌 어른들의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됐거든요."

쟈스민은 '러브 인 아시아' 출연을 계기로 또 다른 이주여성 7명을 만나게 됐고, 그들과 봉사 모임인 '물방울 나눔회'을 이끌어가고 있다. 나라별로 끼리끼리 만나던 사람들이 함께 모여 정기적으로 서로의 삶을 공유하다 보니 자연스레 이웃 돕기까지 하고 있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살고 있는 쟈스민은 오전 9시가 조금 넘으면 금천구 독산동으로 달려간다.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4시30분까지 이주여성 극단 '샐러드'에서 준비하고 있는 연극 '맛있는 레시피, 애프터 더 레인'을 연습하기 위해서다.

지난 25일 '나로호'를 다시 쏘던 날, 쟈스민은 더 분주했다. 연습이 끝나자마자 딸과 만나기로 약속한 홍대 앞 전철역으로 달려갔다. 오후 5시30분까지 서울시교원총연합회 대강당에 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이날 열린 다문화가정 어린이 합창단의 발표회에서 예쁜 딸이 솔로까지 맡았으니 엄마의 마음은 더없이 바빴다. 그래서 행복하다.

글=이창호기자사진=김지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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