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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모바일에서 길을 잃다

입력 2009.09.21. 14:00 수정 2009.09.21.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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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스마트폰 등 모바일기기서 무용지물…MS워드와 대조

한컴, 문서형식 개방요구 외면한 탓…뒤늦게 공개의사

#1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스마트폰인 블랙베리폰을 쓴다. 모바일로 당무를 처리하고 인터넷에 접속해 트위터를 통해 유권자와의 소통을 넓혀가고 있다. 전국 곳곳의 강연 일정으로 바쁜 와중에도 스마트폰으로 이메일 첨부파일을 열어 확인하고 답신까지 보낸다. 그런 그도 아래아한글(hwp)로 된 파일을 받으면 답답해진다. 첨부파일이 열리지 않는 탓이다. 스마트폰에선 사진파일도 열고, 마이크로소프트(MS)의 워드나 파워포인트 파일도 문제없이 읽을 수 있지만, 아래아한글은 불가능하다. 노 대표는 급한 경우 메일을 보낸 이나 보좌관에게 전화를 걸어 파일 형식을 표준(txt, doc)으로 바꿔 다시 보내 달라고 한다.

#2

케이티(KT)는 지난 2001년부터 사내 피시(PC)에 설치하는 업무용 프로그램을 국내 제품에서 외국계 제품으로 바꿨다. 국내 업체가 업그레이드를 중단하고 서비스를 철수했기 때문이다. 케이티는 이후 호환성이 있고 유지보수에 문제가 없는 제품을 써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케이티는 업무용 워드프로세서로 엠에스 워드를 보급하고, 특정 부서에서만 한글과컴퓨터의 제품을 쓰고 있다. 케이티의 한 직원은 "정부 쪽 문서는 아래아한글이어서 대외협력실에선 한컴 제품을 쓰지만, 나머지 부문에서는 엠에스 워드를 사용한다"며 "외국으로 아래아한글 파일을 보내면 읽을 수 없는 등 호환성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토종 소프트웨어 기업인 한글과컴퓨터(한컴)가 개발한 한글 워드프로세서 '아래아한글'이 문서 형식의 '폐쇄성'으로 말미암아 모바일 환경에서 적잖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이동 중에 옴니아폰, 엑스페리아폰, 아이팟터치 등 다양한 모바일 기기로 이메일과 문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으나, 이들 기기에서 아래아한글은 '무용지물'이다.

엠에스는 파일 형식을 공개해 누구나 뷰어나 응용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고 단말기 제조업체가 시스템에 내장할 수 있도록 했다. 아래아한글은 파일 형식을 공개하지 않았다. 문서작성기도 마찬가지다. 아래아한글에서는 엠에스 워드를 읽을 수 있지만, 워드에서는 한컴 포맷을 읽어낼 수 없다. 다른 워드프로세서로는 아래아한글 작업이 불가능해 이를 쓰자면 한컴 제품을 구입해야 한다. 한컴이 공급하는 뷰어를 통해서 읽을 수는 있지만 편집은 불가능하다.

아래아한글은 국내 불법복제 소프트웨어 1위 제품으로, 한컴은 불법복제의 최대 피해자이기도 하다. 개인이용자 시장의 매출이 미미하다는 뜻이다. 단, 공공 부문 문서작성기 시장의 75%, 교육 부문의 80%를 차지한다. 한컴은 올 상반기 매출 239억원, 영업이익 73억원을 기록했다. 정부에선 대부분 한컴 제품을 쓰고 외교통상부 등 외국과 소통해야 하는 부처만 호환성이 있는 문서작성기를 일부 쓴다. 공공 부문에서 일어나는 안정적 매출 구조는 한컴이 소프트웨어 시장의 변화에서 기민함을 잃게 만든 배경이다.

국내 스마트폰 점유율은 1%로 모바일웹이 움트는 단계지만, 컴퓨팅 환경은 빠르게 모바일로 옮겨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12년이면 인터넷 접속의 절반이 모바일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컴은 엠에스에 맞서 자국 문서작성기 시장을 지켜낸 세계 유일의 기업으로, 국민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불려왔다. 하지만 외국과의 소통, 다양한 업무용 프로그램을 이유로 대부분의 기업은 몇 년 전부터 엠에스 오피스를 써왔다. '애국심 마케팅'이 통하지 않는 배경에는 호환 안 되는 프로그램, 개방되지 않은 파일 포맷이 있다. 급변하는 모바일 환경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문서형식에 대한 개방 요구를 외면하다가 난관에 봉착한 셈이다.

한컴 쪽도 늦게나마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김영익 대표이사는 지난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아래아한글을 국산 워드프로세서 국가표준(KS)으로 등록신청했다"며 "표준이 등록되는 시점에 맞춰 한글의 파일 형식을 공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시점을 못박지 않았지만, "영업용 기밀이라 공개할 수 없다"며 공개를 거부해온 기존의 태도와 비교하면 크게 달라진 것이다. 한컴 쪽 관계자는 아이폰과 윈도 모바일용 뷰어도 만들어놨고 배포 직전 단계라고 밝혔다. 류한석 스마트플레이스 대표는 "한컴이 모바일용 뷰어를 만든다 해도 스마트폰의 운영체제가 많아 모두 지원하기 힘들다"며 "파일 포맷을 공개해, 누구나 한컴 파일을 활용해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구본권 기자 starry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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