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멸망 부른 역적 '요묘' 묘지명 中서 발견

2009. 10. 22.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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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 열어줘… 당나라 장군 된 뒤 5년만에 의문사

고구려를 멸망에 이르게 한 배신자로 알려진 '요묘(饒苗)'의 행적을 보여 주는 묘지명(墓誌銘)이 중국에서 발견됐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요묘는 668년 평양성을 포위한 당나라군과 내통해 성문을 열어 준 인물 중 하나다.

묘지명에는 요묘가 후일 당나라 황제를 호위하는 종3품의 고위 무관직인 좌령군 원외장군(左領軍 員外將軍)에까지 올랐다가 5년 후 갑작스레 숨진 것으로 돼있다.

한국고대사 전공인 김영관 청계천문화관장은 21일 "2007년 12월 중국 시안의 비림박물관에 입수된 '대당고좌령군원외장군고요묘묘지(大唐故左領軍員外將軍高요<金+堯>苗墓誌)'를 분석한 결과 묘지명의 '요동 사람 고요묘'가 삼국사기에 기록된 요묘와 동일 인물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요'자 표기가 삼국사기와 다르지만, 글자 형태가 비슷하고 중국어 발음도 일치한다.

김 관장은 동일인이라는 근거로 ▦고구려인 가운데 요(饒)라는 성을 사용한 사례가 없고 ▦삼국사기 인명 표기 방식을 볼 때 성을 생략했을 가능성이 크며 ▦묘지명과 삼국사기에 기록된 두 사람의 행적이 일치한다는 점을 들었다.

고요묘의 묘지명은 청석으로 네모 반듯하게 만든 덮개돌과 지석(誌石)이 세트를 이루고 있으며, 지석에는 "요동 사람인 고요묘가 창해를 등지고 귀순해 와서 벼슬길에 올라 황제를 가까이서 모시다가 673년 11월 11일에 사망했다"는 내용이 해서체로 음각돼 있다.

죽음에 대해 기록한 부분에서는 구체적 원인이 빠진 채 "귀신들이 재앙을 내려"라고만 돼있다. 김 관장은 이에 대해 "사실대로 밝힐 수 없는 사정이 있는 듯하다. 고구려의 유민이나 부흥운동 세력에 살해됐을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관장은 연구결과를 24일 서강대에서 열리는 한국고대사탐구회 월례발표회에서 발표한다.

김지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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