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라리, 학생들에게 담배를 피우게 하라

입력 2009. 11. 5. 15:43 수정 2009. 11. 5.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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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임정훈 기자]

전북교육청이 2억 6000만 원의 돈을 들여 도내 130개 고교에 내년 봄까지 니코틴측정기를 도입한다고 한다. 학생들의 건강 유지와 '일부' 흡연 고교생들의 금연을 유도하려는 의도란다. 양호실에 비치되는 니코틴 측정기를 학생들이 자유롭게 이용해 자가 측정할 수도 있고 이를 통해 흡연으로 인한 몸의 변화를 흡연 학생 본인이 직접 확인·체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는 게 전북교육청의 설명이다.

영화 < 친구 > 의 한 장면.

ⓒ 시네라인㈜인네트

워낙에 수상한 교육정책들이 넋을 빼놓을 듯 작정하고 덤벼드는 시국에 난데없는 각설이 하나가 숟가락을 칼날인 줄 알고 휘두르며 달려든 꼴이어서 심란함을 주체하기가 힘들다. 어디 괜찮은 병원이라도 소개하고 싶지만 신종플루 바람에 병원이라고 가는 곳마다 마스크맨(걸)들이 출몰하니 그도 유쾌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니코틴 측정기를 학교에 도입하겠다는 발상의 기저에는 '학생들의 흡연'이라는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학생들의 흡연을 줄여보겠다는 선량한 취지에 밥풀도 하나 안 묻은 마른 주걱으로 따귀를 때릴 생각은 없다. 그러나 니코틴 측정기 도입이라는 데는 작정하고 육모방망이부터 곤장에 태장까지 두루두루 휘둘러 굴신조차 못하도록 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도대체 학교에 니코틴 측정기가 왜 필요한 것일까. 3억원에 가까운 돈을 들여 학교마다 설치해야 하는 게 고작 '일부' 흡연 고교생들의 금연을 유도해 보겠다는 니코틴 측정기 도입이라니. 그동안 니코틴 측정기가 없어서 학생들이 그토록 담배를 피워댄 것이란 말인가.

학교에서 벌어지는 담배 풍경 몇 가지

초중고생 누구라고 가릴 것 없이, 여남 차별 없이 골고루 흡연이 학생들의 문화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 내 자식은 아닐 거라 철석같이 믿는 순진하고도 어리석은 상당수 학부모들만 뺀다면 말이다.

그래서인지 학교마다 흡연 학생들에 대한 징계와 처벌시스템은 완벽에 가깝다. 흡연 학생에 대한 제보도 끊이지 않아서 교사가 직접 현장에 나가 현행범으로 학생들을 체포해 학생부에 넘기는 일도 낯선 풍경이 아니다. 여기에 니코틴 측정기를 도입하면 흡연이 줄어들까? 몇 개의 풍경을 보자.

# ㄱ고교의 사례

수업 중 교내에서 불이 났다. 소방차가 달려오고 잠시 소란이 일었다. 다행히 불은 금세 꺼졌고 소방차도 돌아갔다. 화가 난 교장선생님은 수업을 중단하고 즉각 전교생 설문을 했다. 설문 내용은 간단했다. 담배를 피우는 친구나 선후배를 아는 대로 쓰라는 것과 불을 냈을 것 같은 친구나 선후배의 이름을 쓰라는 것이었다. 수업 중에 일어난 화재의 원인을 흡연 학생의 담뱃불로 간주한 것이다. 아무 근거도 없이. 물색없는 학생들은 담배 피우는 친구들의 이름을 적었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 ㄴ중학교의 사례

교무회의 시간. 학생부장 교사가 말한다. 학교 옆 아파트에서 민원이 또 들어왔다. 놀이터에서 우리 학교 아이들이 담배를 자주 피운단다. 담임 선생님들 흡연 지도 강력히 해 주시라. 교장 선생님이 말을 잇는다. 학교 이미지 신경들 쓰세요.

# ㄷ고교의 사례

학교에서 담배를 피우던 학생이 학생부 담당 교사에게 걸렸다. 학생부 교사는 말한다. "징계 받을래? 반성할래?" 당연히 학생은 반성하겠다고 한다. 학생부 교사는 말한다. "반성하는 의미로 피우던 담배 씹어 먹어!" 부모님이 학교로 불려오고 징계받을 생각에 두려웠던 학생은 담배를 씹어 먹었다.

혹 안 믿을 독자들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위의 사례는 모두 날것 그대로의 사실이다. 더 많고 많은 사례가 있지만 일부만 내놓은 것이다. 솔직한 학교의 풍경이다. 금연프로그램을 '제대로' 진행하는 극소수의 학교(있는지 모르겠지만)를 제외하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는 것에 대해서는 사실 별 관심이 없다.

다만 교복을 입고 학교 밖에서 피우다 걸리거나 학교 안에서 대놓고 피우거나 하는 게 싫을 뿐이다. 그렇게 막나가는 학교라는 대국민 이미지를 떠안고 싶지 않을 뿐이다. 학생들이 담배를 피우거나 말거나 '학교'와 엮이지만 않으면 된다.

체계적 금연교육 못 할 거라면...

영화 < 투사부일체 > 의 한 장면. 니코틴 측정기보다 체벌측정기를 먼저 도입하는 게 좋을 것 같다.

ⓒ (주)시네마 제니스

교문 앞에 '우리 학교는 금연지도 프로그램을 운영합니다'라거나 '니코틴 측정기 설치로 학생들의 금연 지도에 앞장서고 있습니다'라는 푯말 하나만 붙여놔도 오가는 사람들이 보기에는 '제법 개념 있는 학교로군'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학교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이만한 효자가 없다.

'우리 교육청은 니코틴 측정기 설치로 학생 금연지도에 앞장서는 개념 있는 교육청입니다'라고 말하고 싶은 게 전북교육청의 본심일 게다. 그들도 이미 학교에서 알고 있듯 니코틴 측정기 따위로 학생들의 흡연이 줄어들거나 개선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알고도 남을 테니 말이다.

학생들의 건강을 위해 금연지도를 해야 한다고 교무회의에서 부르짖는 교장이나 학생부장을 본 적도 없고 그런 교육청이 있다는 소리도 들어보지 못했다. 아직 신체 미성숙한 학생들의 건강과 미래를 위해 제대로 된 상담시스템과 치료 프로그램을 상시적으로 갖추고 꾸준히 금연 지도를 진행하는 학교가 있다는 이야기도 못 들어봤다. 그런 시스템을 갖추자는 법안을 내놓은 국회의원도 못 봤고 금연지도를 위해 예산을 마련하고 정책을 수립했다는 교육 당국의 발표도 구경한 적 없다.

법으로 흡연이 금지된 학교에서 연기 뿜어가며 담배를 피워대는 교사들은 여전히 많은데 늘 학생들만 문제다. 학생인 게 죄다. 학교나 어른들은 "요즘 애들 문제야" 타령만 하면 된다.

담배 피우다 걸리면 욕하고 때리고 징계하는 걸로 면피하는 학교, 최소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흡연하도록 하는 제대로 된 흡연 교육은 없고 무조건 하지 말라고만 하고 하면 죄가 되는 교육, 그래놓고 성인이라는 이름으로 할 것과 하지 말 것을 가리지 못하는 어른 '꼰대'들. 이쯤 되면 학생들도 담배 한 대 피워 물고 싶지 않을까.

흡연하는 학생들의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는 이유에 대해 제대로 고민하는 척이라도 해 봤더라면 부끄러워서라도 이처럼 돈으로 생색내고 마는, 니코틴 측정기 운운하는 유치한 발상은 못했을 게다.

니코틴 측정기로 학생들을 위협할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체벌측정기, 0교시·강제야자 측정기, 민주주의 측정기 같은 것부터 학교에 설치해서 학생들이 정상적인 사람으로 차별 없는 교육부터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먼저가 아닐까. 그래서 학교 가는 게 즐겁고 신명난다면 니코틴 냄새가 짙던 아이들의 손과 입에서 담배 따위는 저절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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