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진실화해위, 보도연맹원 4천934명 희생 확인(종합)

입력 2009.11.26. 11:55 수정 2009.11.26. 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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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연맹 사살 주체는 경찰 사찰계와 육군 방첩대"(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진실ㆍ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는 26일 서울 중구 충무로 진실화해위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6ㆍ25 전쟁기간 정부 주도로 국민보도연맹원 4천934명이 희생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진실화해위는 확인된 희생자 수만 4천934명으로 거의 정확하게 희생자 수가 밝혀진 울산ㆍ청도ㆍ김해 지역은 보도연맹원 가운데 30~70%가 학살됐고 각 군 단위에서 적게는 100여명, 많게는 1천여명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진실화해위의 `지역별 추정희생자수 분포'에 따르면 전쟁 발발 3일 만에 점령된 서울에서는 보도연맹원의 희생이 없었으며 학살은 안양과 과천에서부터 시작돼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이뤄졌다.

진실화해위 관계자는 "인민군에 점령되지 않은 경남과 경북 일부 지역의 희생자가 가장 많았으며 국군이 후퇴하는 길목이었던 충청도 청원지방에서도 많은 희생자가 나온 것으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경찰이 창고 등에 구금된 보도연맹원을 외딴곳으로 끌고 가 구덩이를 파게 한 뒤 일렬횡대로 세우고 총살한 사례가 많았으며 군산 등지에서는 전황이 급박해 창고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 기관총을 발사한 예도 있었다고 진실화해위는 밝혔다.

1950년 7월 보도연맹원으로 체포돼 충북 청원의 한 창고에 갇혀 있다 탈출한 김모(87)씨는 이날 기자회견장에 나와 "동네 사람들 다 모이라고 해서 갔더니 보도연맹만 남고 가라고 했다. 6일 동안 창고에 갇혀 있었는데 경찰이 탈출하면 모두 죽이겠다고 위협했다"고 증언했다.

진실화해위는 진실규명과정에서 일부 의로운 경찰관이 무고한 사람들을 풀어준 일도 있었으며 사적으로 경찰에 돈을 주고 구금장소에서 빠져나온 경우도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보도연맹 조직을 주도한 기관은 검찰이었으며 이들을 사살한 주체는 경찰 사찰계와 육군본부 정보국 방첩대였다.

그러나 보도연맹원의 체포와 사살명령을 내린 주체에 대해서는 오랜 시간이 지나 확인할 수 없었다고 진실화해위는 밝혔다.

진실화해위 김동춘 상임위원은 "당시 경찰 사찰계나 육군 방첩대는 가장 정치적인 기관이었던 점을 고려할 때 정부의 최고위층 어떤 단위에서 보도연맹원의 체포와 사살을 명령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김 상임위원은 "인천 등 일부 지역에서 보도연맹원들이 시청을 점령했는데 이런 사례가 당시 이승만 정부로 하여금 이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결정을 내리게 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국민보도연맹은 1949년 좌익운동을 하다 전향한 사람들로 조직된 반공단체로 국민보도연맹 결성을 관장한 검찰과 경찰 주요간부들의 증언으로는 보도연맹원 수가 약 30만명에 달했다.

이들은 위험인물로 분류돼 6ㆍ25전쟁 발발 직후부터 1950년 9월 중순께까지 상당수가 학살됐으며 진실화해위는 2006년 10월 보도연맹사건의 전모를 밝히고자 직권조사를 시작했다.

진실화해위는 이날 3년여의 조사결과를 발표하고 국가에 대해 공식사과와 재발방지를 위한 법ㆍ제도적 조치 마련, 피해보상을 위한 배ㆍ보상법 제정, 화해와 국민통합을 위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권고했다.

김동춘 상임위원은 "진실화해위 차원의 조사는 마무리됐으나 추가적인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유가족이 매우 많은 것이 현실이다. 앞으로 정부 차원에서 더 체계적이고 폭넓은 조사가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