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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잔혹했던 그해 여름

입력 2009. 11. 26. 16:57 수정 2009. 11. 26.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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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사회부 김효은 기자]

"창고에 갇혀 있는 동안 사람들이 남모르게 죽어나갔어. 여기저기서 맞아 죽는 소리가 나고…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끔찍해"

국민보도연맹사건의 생존자 김모(남·77) 씨는 지난 1950년 7월 유난히 잔혹했던 그 해 여름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충북 청원군 강내면에 살던 김 씨가 논일에 한창이던 그해 7월 4일 갑작스럽게 국민보도연맹원 소집 명령이 떨어졌다.

당시 경찰은 김 씨 등 강내면에 사는 보도연맹원 수십 명을 소집해 면사무소 인근 창고에 가뒀다.

"주민들을 불러모으더니 보도연맹원만 남고 나머지는 다 가라고 했어. 그러고는 연맹원들을 창고에 가뒀는데… 도망가면 8촌까지 전멸시킬 테니 꼼짝 말라고 겁을 줬지"

창고 내에서 연맹원들은 가족들이 날라다주는 음식에 의존해야만 했다. 이 순간을 제외하고는 외부와 철저히 차단됐다.

하루는 지척에서 누군가 맞고 있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한참 후 돌아온 사람들은 입을 굳게 다문 상태였고, 일부는 아예 다시는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감금 엿새 만인 7월10일 밖에서 비행기 폭격 소리가 들렸다. 순식간에 창고 내부는 아수라장이 됐고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탈출을 시도했다.

김 씨는 작게 벌려진 문틈 사이로 극적으로 탈출에 성공했고, 있는 힘껏 최대한 멀리 도망쳤다.

"밭에 바짝 엎드려 있는데 갑자기 한국군이 다가온 거야. '넌 뭐하는 놈이냐'며 나에게 따졌지. 밭일 하고 있었다고 했어. 등에 식은땀이 흘렀어"

무사히 빠져 나온 김 씨와는 달리 탈출에 실패한 보도연맹원들은 이튿날인 7월 11일 퇴각하던 한국군에게 총살 당했다. 김 씨 이웃을 포함해 모두 65명이었다.

김 씨는 "나처럼 죄 없는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며 "억울한 것도 문제지만 연좌제 때문에 가족들이 피해 당한 것만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탄식했다.

진실화해위원회에 따르면 한국전쟁 당시 학살된 국민보도연맹원은 공식적인 통계만 해도 5000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는 추정치의 10%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김 씨와 같은 생존자와 그 가족들까지 합하면 실제 피해자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학살을 지시한 명령체계 등 사건의 전말을 규명하지 못한 채 국민보도연맹 사건에 대한 위원회 조사는 26일 사실상 종결됐다.africa@cbs.co.kr

"정부, 한국전 당시 보도연맹원 최소 5000명 학살" (대한민국 중심언론 CBS 뉴스FM98.1 / 음악FM93.9 / TV CH 412)< 저작권자 ⓒ CBS 노컷뉴스(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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