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찾아서] 미국이 먼저 파기한 '북미 제네바합의' / 정경모

입력 2009. 11. 30. 20:20 수정 2009. 11. 30.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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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정경모-한강도 흐르고 다마가와도 흐르고 126

미군의 팀스피릿이 채 끝나지 않은 1993년 3월 12일 북한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를 선언하였고, 5월 11일 그것을 비난하면서 탈퇴 취소를 요구하는 유엔 안보리 성명이 발표되자, 5월 29일 북한은 해명 대신 장거리미사일 '노동1호'를 쏴올렸소이다. 93년 당시의 상황을 돌이켜 생각하면 그건 참으로 숨막히는 일장의 활극이었고, 곧 전쟁이 터질 것 같은 불안 속에서, 이거 북한이 좀 너무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위구감조차 없지 않았소이다.

그런데 의연히 앞으로 나아가면 상대방은 삼사(三舍) 밖으로 피한다는 옛말이 있소이다.(<춘추좌씨전>) 삼사라는 것은 군대의 사흘간의 행정, 즉 150리를 뜻하는 말인데, 북한이 미사일을 쏴올린 지 불과 나흘째인 6월 2일, 미국은 뜻밖에도 북-미 협상을 제안하고 협상은 그날부터 시작되었던 것이었소이다. 짜장 미국은 삼사는 피한 것이지요.

급변하는 사태에 나는 물론 놀랐지만 얽히고설킨 북-미 관계가 그렇게 쉽게 풀릴 수가 있었겠소이까. 1차 회담은 7월 14~19일 제네바에서 열렸으나, 문제는 꼬이기만 하고 3차 회담을 두 달 안에 연다는 발표만으로 중단상태에 들어간 것이었소이다.

미국은 3차 회담을 여는 대신 10월 7일, "북한이 핵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지 않는다면 군사행동도 불사하겠다"는 협박적인 성명을 발표하였는바, 이에 대해 11월 11일 북한이 발표한 역제안은 현존의 휴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는 조건의 '일괄타결'이었소이다.

이에 대해서 미국은 평화협정 같은 것은 고려할 수는 없으나, 만일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아들여 보일 것을 다 보인다면 94년의 팀스피릿을 중지하고 3차 회담을 속개할 용의가 있다는 제안을 발표하였소이다. 그것이 11월 15일이었지요.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로 볼 건 다 보고 나서 3차 회담의 개최 여부는 그때 가서 생각하겠다는 것이니 북한으로서는 미국의 역제안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겠지요. 해가 바뀐 94년 1월 31일 북한은 미국의 역제안을 거부하면서 "스스로의 행동에 따른 파국적인 결과에 대해 미국은 전면적인 책임을 지라"는 성명을 발표했던 것이었소이다. 김일성 주석은 그때 "이 이상 어떻게 속옷까지를 벗을 수가 있나. 전쟁을 하겠으면 해봐라. 각오는 돼 있다"는 결의를 보인 것이었소이다.

그래서 그 운명의 날인 94년 5월 18일, 클린턴은 국방장관 페리에게 개전 준비를 지시하고, 이 지시에 따라 참모본부의존 섈리캐슈빌리, 주한 미군사령관 게리 럭 이하 4성 장군 이상의 군 수뇌부 전원이 펜타곤에 모여 작전계획 5027에 의거한 대규모 전쟁 시뮬레이션이 실시된 것이었소이다.

미국이 일단은 중지했던 팀스피릿 군사훈련을 재개한 93년 5월부터 판문점을 넘어 평양을 방문한 카터 전 대통령이 김 주석을 만나 협상을 거듭한 끝에 코앞에 닥쳐온 전쟁의 위기가 회피되었던 94년 6월까지의 얘기는 그 자세한 경위가 일반 언론에 발표된 일이 없었으므로, 나 자신의 기억을 더듬고, 그때 써서 남겨둔 글을 간추려 여기 발표할 것이니, 우리가 얼마나 험난한 시대를 살아왔는가를 알기 위해서라도, 더구나 젊은 사람들은 자세하게 이 글을 읽어주기를 바라는 바이외다.

좌우간 위기는 일단 회피되고 그 직후인 7월 8일 김 주석이 타계한 것인데, 그래도 미국은 약속대로 8월 8일부터 제네바에서 3차 회담을 열고 10월 21일 '조-미 기본합의서'라는 것에 조인하는 데까지 겨우 도달하게 되었던 것이외다.

이 합의문서 제2조는 "정치와 경제관계의 완전한 정상화를 위하여 쌍방은 노력한다"고 말하고 있소이다. 그런데 미국은 처음부터 제2조의 약조를 이행할 의사가 없었던 것이에요. 김 주석도 세상을 떠났고 어차피 북조선은 내부 붕괴를 일으킬 것이라 보고 빈껍데기 어음을 발행했을 뿐이오이다. 건설하겠다던 100만㎾ 원자력발전소 2기도 하는 척만 하다가 중단되었고, 건설기간 중 공급하겠다던 연간 50만t의 중유도 결국 말뿐이었으니, 속인 것은 미국이었고 속은 것은 북한이었소이다.

약속을 해놓고서는 번번이 뒤집는 북한은 믿을 수 없는 상대라고 미국이 한마디 하면 전세계의 언론이 앵무새들처럼 같은 말을 떠들어대는 것이 상례이나, 사실은 그게 아니지요. 적어도 북-미 관계에 관한 한 떡 먹듯이 거짓말을 해온 건 미국이었지 그 반대는 아니었소이다.

정경모 재일 통일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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