쨍하고 해뜬 독립영화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2009. 12. 25.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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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음식·스포츠·코미디·시사를 가리지 않고 프로그램을 제작해 방송사에 납품하던 이충렬 PD는 2005년 초 경북 봉화군 축협에서 (걸려온)전화 한 통을 받는다. 5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소달구지 타고 다니는 아버지'를 수소문한 끝에, 본화축협으로부터 봉화군 산정마을에 사는 여든 살 최원균 할아버지와 마흔 살 소를 소개받은 것이다. 3년간 그 둘이 졸고 밥 먹고 일하는 모습을 카메라 필름에 담아 방송사에 들고 갔지만 "소 얘기가 무슨 재미가 있겠냐"라는 말만 듣고 돌아서야 했다. 어떻게든 영상을 세상에 내보이고 싶던 이 PD는 독립영화 전문 투자·배급사 '스튜디오 느림보' 고영재 대표를 찾아갔다.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 워낭소리 > 는 그렇게 스크린에 걸렸다.

늘 그렇듯, 2009년에도 독립영화인들은 곤궁했다. 비싼 저작료 때문에 < 워낭소리 > 이충렬 감독은 영화 속에 섞인 라디오 노랫소리 위에 서울시내 교통 상황 안내방송을 덧입혀야 했다. < 똥파리 > 의 양익준 감독은 "몇 천만원 빌리고 집 전세금을 빼고 또 빌리고… 좀 지나 또 돈이 없어지니까 정말 게릴라처럼 찍으면서" 영화를 완성했다. 노영석 감독도 냉면집을 하는 어머니에게 돈을 빌려 < 낮술 > 을 찍었다. "헌팅하기 좋고 비용도 안 들기에" 강원도가 촬영 장소로 낙점되고, "조명 장비의 한계로 밤에 찍을 수 없기에" 영화 제목이 '술'이 아닌 '낮술'이 되었다.

독립영화 < 똥파리 > 의 한 장면. 2009년 많은 독립영화가 국내외에서 주목되었다.

곤궁하다고 볕들 날이 없는 건 아니다. 독립영화인들은 2009년을 '독립영화의 해'로 만들었다. 올해 초 이충렬 감독의 < 워낭소리 > 가 '300만 관객'이라는 독립영화 사상 전례 없는 흥행을 기록하면서 첫 테이프를 끊었다. 영화진흥위원회가 발표한 '2009 1~11월 영화산업 통계'에 따르면 < 워낭소리 > 는 올해 개봉한 한국 영화 가운데 여덟 번째로 많은 관객을 끌어들였다. 양익준 감독의 < 똥파리 > 도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등 해외영화제에서 상을 21개나 타내면서 이름을 알려 국내 관객 수 12만2000명을 기록했다. 이 밖에 신현원 감독의 < 소명 > (9만5000명), 노영석 감독의 < 낮술 > (2만5000명), 우니 르콩트의 < 여행자 > (1만6000명) 등도 "독립영화 관객 수 1만을 넘으면 대박이다"라는 그간 속설을 무색하게 했다.

"사회의 니드 충족 시켜야 한다"

독립영화의 앞날도 밝다. 12월10~18일 9일간 열린 '서울독립영화제2009'에 출품된 작품은 모두 722편. 2년 전 591편에서 1년 전 623편으로 늘었는데, 올해는 그보다 100여 편이 더 늘어나 역대 최다 작품 수를 기록했다. 이렇게 독립영화를 만드는 사람과 관객 수가 늘어나고 해외에서 상도 받으니, 지난 2월 열린 토론회 '다양성 영화 활성화 지원 방안'에 참가한 국회의원들 말처럼 독립영화 제작은 "작은 투자로 떼돈을 버는" 저비용 고효율 차세대 부가가치 문화 콘텐츠 사업이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독립영화가 '성공한' 2009년이라, 독립영화인들은 더욱 정신의 끈을 바짝 조인다. 올해 인권 영화 < 시선 1318 > 등을 찍은 윤성호 감독은 "독립영화는 사회의 '원트(want)'가 아닌 '니드(need)'를 충족시켜야 한다"라고 말했다. < 내 마음은 지지 않는다 > 의 안해룡 감독은 아직 정리되지 않은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시 들추었고, < 리터니 > 를 찍은 마붑 알엄은 우리 사회의 이주민 추방 문제를 곱씹도록 했다. < 외박 > 의 김미례 감독은 홈에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 저 달이 차기 전에 > 의 서세진 감독은 쌍용차 노조의 힘겹고 외로운 싸움을 기록했다. 많은 독립영화인이 '찍어야 할 것'들을 찍었다. 그러면서 대중과도 접점을 찾았다. < 시사IN > 이 2009년 '문화 분야 올해의 인물'에 독립영화인을 선정한 까닭이다.

변진경 기자 / alm242@sisain.co.kr- 정직한 사람들이 만드는 정통 시사 주간지 < 시사IN >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 시사IN 구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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