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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일을 승부로 보는 한국인들 쉽게 분노

입력 2010. 02. 10. 04:03 수정 2010. 02. 1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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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지난달 18일, 경기도 성남시의 한 평온하던 주택가를 갑작스런 여러 발의 총성이 뒤흔들었다. 한 중년 남성이 놀이터에서 놀던 청소년들을 향해 공기총을 난사한 것. 현장에 있던 학생들이 급하게 달아났지만 유 모군(17)은 무릎에 총상을 입었다. 총을 쏜 이 모씨(39)는 "청소년들이 놀이터에서 시끄럽게 떠들어 홧김에 총을 쐈다"고 말했다.

# 2지난달 31일에는 전화로 부부싸움을 하다 화가 난 박 모씨(45)가 납탄 7발을 장전한 공기총을 들고 부인이 운영하는 주점으로 향하다 이웃주민 권 모씨(50)가 자신을 쳐다봤다는 이유로 공기총을 발사했다. 권씨는 중태에 빠졌다가 결국 숨을 거뒀다.

# 3지난 4일 밤 10시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 부근, 지하철 1호선을 타고가던 최 모씨(49)는 술에 취해 앞에 앉은 여자 승객에게 술주정을 부렸다. 보다 못한 다른 승객 백 모씨(47ㆍ여)가 이를 말리자 최씨는 멱살을 잡고 발로 차며 백씨를 폭행했다. 몇 시간 뒤인 5일 오전 1시께 혜화동에서는 술에 취한 김 모씨(27) 등 2명이 염 모씨(34ㆍ여)가 일행과 타고가던 택시를 가로막아 섰다. 택시가 경적을 울리자 이들은 조수석에 앉아 있던 염씨에게 창문을 내리라고 한 뒤 '화가 난다'는 이유로 염씨 얼굴을 세 차례 폭행했다.

분노의 의한 범죄로 분류될 수 있는 우발적 범죄와 현실불만 범죄는 매년 급격한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2005년 3만7671건이던 우발적 범죄는 2006년 10만1670건으로 급증했다. 2007년에도 12만3401건, 2008년에는 15만9833건을 기록하며 매년 20% 안팎씩 늘고 있다.

현실불만에 의한 범죄도 마찬가지다. 2005년 1144건이던 범죄건수는 2006년 2567건으로 두 배 이상 늘었고 2007년에는 3116건으로 증가했다. 2008년에는 4775건을 기록했다.

우종민 서울 백병원 신경정신과 교수는 "다른 나라에 비해 한국은 유독 울분이 많은 사회"라며 "모든 일을 승부로 바라보기 때문에 분한 감정을 상대적으로 많이 느낀다"고 설명했다. 미국 등 서구사회에서는 뉴욕의 부자와 시골의 무직자가 마주칠 일, 즉 계층이 다른 사람과 섞일 일이 거의 없기 때문에 우울증은 많아도 서로에 대한 분노는 작다는 것.

우 교수는 "한국사회에는 분한 감정을 잘 표현할 수 있는 게임의 룰이 없고 적절한 방법으로 화를 풀 방법도 모른다"며 "화가 치밀어도 표현을 전혀 못 하는 사람들이 술을 빌려 감정을 폭발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충동범죄들은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경제성장 동력마저 크게 갉아먹고 있다.

2009년 6월 조흥식 서울대 교수 등이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의 의뢰를 받아 발표한 '범죄의 사회적 비용 추정 연구' 논문에 따르면 2007년 한 해에만 우리 사회가 살인, 강도, 방화, 강간 등 각종 범죄로 인해 치른 사회적 비용은 총 23조1961억3054만원에 달했다.

매일경제는 조 교수 협조를 얻어 2007년 발생 범죄 중 '분노에 의한 범죄'로 추정될 수 있는 우발적 범행과 현실불만에 의한 범죄의 사회적 비용을 추정했다.

분석 결과 2007년도 '우발적 범행'으로 분류된 살인, 강도, 방화, 강간 등 범죄에 의한 사회적 비용은 9560억여 원으로 분석됐다.

또 같은 해 '현실불만'에 의해 저질러진 살인 등 각종 범죄의 사회적 비용은 244억여 원으로 추산됐다.

두 유형의 범죄로 인한 비용을 합하면 한 해 9804억여 원이다. 분노범죄로 인해 매년 1조원 가까운 돈이 낭비되는 셈이다. 우발적 범행과 현실불만에 의한 범죄가 매년 늘어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비용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비용만이 문제되는 것도 아니다. 사회 전체 에너지가 소멸되는 것도 큰 문제로 지적된다. 고영건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는 "일본의 더블딥에 가까운 경기불황은 경제학 이외의 방법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며 "국민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없는 막힌 사회구조가 일본사회 전체의 심리적 에너지를 소모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 교수는 "급속한 현대화로 공동체가 붕괴되고 개인들이 원자화되면서 맺힌 한이 그대로 '행동화'로 이어지고 분노범죄로까지 연결된다"며 "공적기관은 물론 주변사람들에 대한 낮은 신뢰도 때문에 상호 간 오해와 분노만 들끓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화 기자 / 고승연 기자 / 김헌주 기자 / 김명환 기자 / 이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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