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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늘]1912년 청나라 마지막 황제 선통제 퇴위

백승찬 기자 입력 2010. 02. 11. 17:59 수정 2010. 02. 11.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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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여년 역사의 중국 군주제 붕괴

1912년 2월12일은 267년 역사의 청 황실, 2000여년 역사의 중국 군주제가 무너진 날이다. 중국의 마지막 황제는 당시 6세의 선통제, 즉 푸이(溥儀)였다. 푸이의 삶은 할리우드에서 < 마지막 황제 > 라는 영화로 만들 만큼 파란만장하고 기구했다. 영화 속에서 그는 심약하고 줏대없는 인간으로 그려졌으나, 그가 좀 더 현명하고 강인했다 할지라도 상황은 크게 변하지 않았을 듯하다. 당시 중국에 흐르던 역사의 물결은 한 개인이 돌려놓기엔 너무 거셌다.

푸이의 선제(先帝)는 큰아버지인 광서제였다. 하지만 푸이를 황제로 지명한 것은 당대의 실질적 권력자 서태후였다. 광서제가 죽고 얼마 뒤 서태후도 세상을 뜨자, 푸이는 세 살의 나이로 중국 황제가 됐다. 그러나 청나라의 기운은 이미 기울어 있었다. 1911년 쑨원을 중심으로 한 민주주의 혁명이 일어났고, 황실의 실권을 장악한 군벌 위안스카이는 혁명 세력과 협상을 시작했다. 위안스카이는 공화정을 선포하는 대신 총통 자리를 얻는다는 약속을 받고 황실을 압박해 선통제를 퇴위시켰다. 새 중국의 지도부는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푸이가 계속 자금성에 살도록 허락했다. 사실상 연금이었다.

푸이는 1917년 복고파들의 정변에 의해 다시 황제로 추대됐으나, 곧 재차 퇴위당한 뒤 일본 지배하의 만주로 이주했다. 일본은 괴뢰국인 만주국을 세워 그를 꼭두각시 황제인 강덕제로 앉혔다. 푸이는 일본이 패망한 1945년까지 만주국 황제 자리를 유지하다가, 소련군에게 체포됐다. 스탈린은 푸이를 공산주의 체제의 중국으로 넘겼고, 중국 정부는 그가 일본과 협력했다는 이유로 옥살이를 시켰다. 1959년 풀려난 푸이는 한때 자신이 주인이던 자금성의 정원사로 일했다. 일생 동안 황실이 정해준 여인과 불행한 관계를 맺었던 푸이는 그제야 평범한 여인과 결혼할 수 있었다. 푸이는 1967년 암으로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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