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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찾아서] '급사' 이준 열사, '할복' 발표한 까닭은 / 김자동

입력 2010. 02. 18. 20:00 수정 2010. 02. 19.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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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자동-임정의 품 안에서 34

대한제국 말기 고종은 을사늑약의 실상을 세계 각국에 알리기 위해 1907년 6월 네덜란드의 수도 헤이그에서 열리는 제2차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했다. 원래 한국은 제2차 만국평화회의 참가 대상으로 초청받은 국가 명단에 들어 있었으나 일본의 농간으로 결국 탈락해 본회의 참석에는 실패했다. 그러나 이준·이상설·이위종 3명으로 구성된 사절단 일행의, 이른바 을사보호조약이 불법적으로 체결됐다는 실상을 만방에 알리려는 노력은 상당히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었다. 다만, 참석한 제국주의 국가들에 이른바 '평화'란 기존 질서를 평화적으로 유지한다는 것이었고, 영·미·프랑스 및 러시아 같은 강대국들이 일본에 동조하는 마당이었으니 본회의에 참석했더라도 실질적 효과는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특사 일행은 우선 헤이그에 있는 동안 평화회의와 연관된 행사들이 치러지는 활동 중심거점인 평화클럽(피스클럽)에서 적어도 세 차례의 설명회를 열었다. 대표단의 일원인 이위종은 프랑스어로 을사조약 당시 국새는 일본 군경이 강탈하여 찍은 것이며, 황제는 끝내 서명을 거부했으므로 그 조약은 불법이며, 당연히 무효라고 주장했다.

기자들뿐만 아니라 회의에 파견된 각국 대표자들도 여럿 참석했는데, 이날의 설명회는 영국 출신의 저명한 언론인 윌리엄 토머스 스테드가 주선했으며, 이위종의 연설 제목은 '한국의 호소'(A plea for Korea)로 청중에게 큰 감명을 주었다 한다. 스테드는 이위종의 강연에 앞서 한국 상황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더불어 대한제국이 초청에서 빠진 것은 '강국들의 폭력적 논리의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위종의 프랑스어 강연 외에 역시 스테드의 알선으로 미국에서 한국 독립을 위해 활동하던 윤용구 선생과 미국인 헐버트 박사가 영어로 을사조약의 불법성을 지적하는 강연을 했다. 이런 활동의 영향으로 1905년 여성으로는 최초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오스트리아 귀족 출신 평화운동가 베르타 폰 주트너 여사는 대한제국의 호소를 국제재판소에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일본의 폭력으로부터 한국을 수호하기 위한 '세계군대'(World Army)의 편성까지 호소했다.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했으며 고종의 고문으로 활약했던 헐버트 박사는 한국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우리 겨레의 벗이다. 그는 외국인이지만 고종의 특사로 헤이그에 갔으며, 그 후 미국에서 을사늑약의 불법을 호소하고, 미국의 한국에 대한 배신행위도 규탄했다. 헤이그에서 스테드 기자와 처음 접촉한 것도 헐버트 박사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헐버트 박사는 19년 임시정부 대표 김규식 박사 등이 파리에서 활동할 때도 자비로 프랑스로 건너가 활동을 돕기도 했다. 헤이그를 떠난 뒤 이상설·이위종·윤용구 세 분은 유럽을 돌며 일본의 한국 주권 강탈 실상을 알리는 순방외교를 펼쳤다.

이참에 이준 열사의 죽음에 대해 밝힐 점이 있다. 당시 헤이그에서 발행한 신문에서 '할복'이 아니라 '병사'로 되어 있는 사실이 최근 알려지면서 학계에서도 논란이 분분한 듯하다.

이 열사의 사인에 대해 우리가 중국에 있을 때도 만주지역에서 활동하신 노혁명가 몇 분을 빼놓고는 모두 할복자살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해방이 되어 귀국한 뒤에도 국내에서 대부분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그렇지 않다고 아는 척할 필요를 느끼지 않아 나 역시 입을 다물고 지냈다.

하지만 우리가 치장에 있을 때 어머니는 석오 이동녕에게서 들은 말을 때때로 우리 부자에게 전했으므로 이준 선생의 별세가 '병사'란 사실을 그때부터 알고 있었다. 석오는 말하길, 이준 열사가 분통이 터져 급서했을 때 보재 이상설이 독자 결정으로 할복자살했다고 바꾸어 발표했다는 것이었다. 헤이그에 모인 세계 각국 대표자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 한다. 할복이 아니라는 것은 검시를 하면 곧 알려질 일이었으나, 그때쯤이면 각국 기자들이 몰려와 한국 상황의 진상을 파악하려 애쓸 것이니, 결국 이 열사의 죽음을 헤이그 사절단의 파견 목표를 만방에 알리는 데 활용했다는 것이다.

김자동 대한민국 임시정부 기념사업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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