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온난화는 착한 거짓말?

입력 2010. 2. 20. 04:03 수정 2010. 2. 20.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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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2월 2일. 유엔 산하의 과학자 전문집단인 '기후변화 국제패널(IPCC)'은 3000쪽짜리 보고서 하나를 내놓는다. 분량은 방대했지만 핵심은 단 한 문장이었다. 바로 "지구 온난화의 원인은 명백히 인간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환경단체들은 즉각 "인간이 인간에게 내리는 마지막 경고"라고 논평했다. 그리고 이 메시지는 전 세계 사람들의 마음속에 숨겨져 있던 공포감에 축축이 스며들었다. 이후 수많은 온난화 연구가 진행됐고 이른바 녹색산업(Green Industry)이 형성됐다. 인류 때문에 지구가 온난화되고 있으니 인간이 탄소 배출을 줄이고 환경을 가꾸면 더운 열기를 식힐 수 있지 않겠느냐는 논리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IPCC의 라젠드라 파차우리 의장은 보고서를 완성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7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당시 공동 수상자였던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도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이란 영화와 강연회을 통해 보고서 내용을 인용했다. 파차우리 의장이 총괄 제작한 이 보고서는 오늘날 주요 국가들이 내세우는 녹색 정책의 축소판(Abbreviation)이자 가교(Bridge)였으며 초석(Cornerstone)이었다.

▶ 무너지는 지구 온난화의 핵심 보고서

= 그런데 녹색 정책의 ABC였던 이 보고서의 신뢰성이 최근 다양한 공격을 받고 있다. "지금보다 인구가 적고 공업화가 덜돼 있던 중세시대가 지금보다 더 뜨거웠다"는 주장이 등장했다. 또 과거 지구 온난화 가설을 인정했던 과학자가 "지구가 최근 15년간 뜨거워지고 있다는 통계적 가설은 입증되지 않는다"는 발언도 했다. 무엇보다 과학자들의 이메일이 지난해 11월 해킹되면서 이 보고서의 근거가 빈약하다는 IPCC 내부의 자성론이 있었음이 폭로됐다. IPCC는 스스로 보고서의 근거 부족을 일부 시인하기도 했다. 정치적 공격도 거세다. 미국이 2009년 "온실가스가 대중의 건강을 위협할 수 있다"는 IPCC의 주장을 근거로 만든 법안에 대한 소송도 지난 15일 텍사스, 버지니아주에서 제기됐다. 비록 IPCC가 "보고서의 기본 틀이 무너진 것은 아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예전과 달리 지구 온난화를 주장하는 과학자들을 순순히 믿지 않고 있다.

과연 지구 온난화는 단순히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몇몇 과학자들이 지어낸 악의 없는 거짓말(White Lies)이었나. 아니면 녹색산업과 일부 정치집단의 이해관계를 반영하기 위한 새파란 거짓말(Green Lies)이었던 것인가. 그렇다면 진실은 지금보다 얼마나 더 불편한 존재란 말인가.

▶ 지구 온난화 1차 논쟁 '하키 스틱 곡선'

= 지구 온난화 이론에 대한 비판은 2001년 IPCC가 발간한 3차 보고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이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지난 2000년간 겪어 보지 못한 온난화 현상이 최근 수십 년 사이에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미국의 기후학자인 마이클 만이 창안한 이른바 '하키 스틱 그래프'를 그려넣은 보고서가 모습을 드러내자 사람들은 공포감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평평하던 지구 온도가 1970년대 이후 드라마틱하게 치솟는 모습이 마치 하키 스틱 같다고 해 붙인 이름이다.

그러나 한 독립 언론인이 자신의 블로그에 "IPCC가 사용한 추정치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하자 상황은 반전했다. 스티븐 매킨타이어라는 이 언론인은 "IPCC가 사용한 추정치는 지나치게 인위적이며 계산상 오류가 다수 발견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다른 추정치를 사용하면 중세시대 지구의 온도가 지금보다 더 뜨거웠기 때문에 하키 스틱 같은 모양은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확대되자 미국 의회가 2006년 진상을 조사하기에 이르렀다. 조지메이슨대의 통계학 교수인 에드워드 웨그먼이 이끄는 의회 조사팀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스티븐 매킨타이어가 제기한 비판론에는 타당성과 설득력이 있다. 하키 스틱 그래프를 제시하며 1990년대가 지구 역사상 가장 뜨거운 시기라고 주장한 마이클 만 연구팀의 연구결과는 그 근거가 불충분하다."

▶ 2차 논란 "과연 지구는 인간 때문에 더워지는가"

= 1차 논란이 일단락된 지 6년 뒤인 2007년, 유엔 IPCC는 네 번째 보고서를 통해 또 다른 주장을 펼치게 된다. 바로 "인간 때문에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논리다. 그뿐만 아니라 IPCC는 이 보고서와 각종 부대적 연구결과를 통해 "히말라야 빙하가 2035년까지 완전히 녹아 없어질 수 있다"라든지, "네덜란드 국토의 55%가 해수면보다 낮으며 GDP의 65%가 이러한 지역에서 나온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영국에 위치한 이스트 앵글리아대 기후연구소 연구소장인 필 존스 교수가 IPCC 4차 보고서 연구에 참여한 과학자들과 주고받은 메일들이 작년 11월 해킹으로 공개되면서 보고서의 신뢰성에 금이 가고 있다. 이 연구소는 그동안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인간이라는 주장을 해 왔던 곳이기도 했다. 이메일 내용 중에는 특히 IPCC 4차 보고서의 "요약문 내용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며 정치적 주장에 불과한 내용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에 그저 삭제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들어 있다. 이 요약문에는 바로 '인간이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라는 주장과 주된 근거가 포함돼 있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인간이 지구를 데우고 있다"고 주장했던 바로 그 필 존스 교수가 지난 2월 13일 영국 BBC 방송과 인터뷰하면서 "지난 15년간 지구가 뜨거워지고 있다는 통계적 근거는 없다"는 발언을 했다. 그는 또 "중세시대가 지금보다 더 지구 온도가 높았다"고 했으며, 예전에 "지구 온난화의 주범이 인간"이라고 주장했던 시절의 근거 데이터는 잃어버렸다고 밝혔다.

▶ "히말라야 빙하 다 녹는 시점은 2035년이 아니라 2350년"

= IPCC 4차 보고서의 근거를 뒤흔들고 있는 사례는 이 밖에도 많다. 외신들에 따르면 IPCC는 "히말라야 산맥의 빙하는 2035년이 되면 다 녹는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언급은 사실 뉴사이언티스트라는 과학 잡지가 아무런 학문적 근거 없이 기술해 놓은 문장을 그대로 인용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캐나다 트렌트대학의 그레이엄 코글리 교수는 1월 20일 사이언스 인터넷판을 통해 "IPCC가 2035년을 언급한 것은 러시아의 한 연구논문이 제기한 2350년의 숫자를 잘못 쓴 것 같다"고 주장했다. IPCC는 같은 날 발표한 성명에서 "충분치 못한 증거가 일부 포함돼 있었다"고 오류를 일부 시인했다.

이 밖에도 과학자들이 경각심을 주기 위해 데이터를 부풀려 해석했음이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는 바로 네덜란드의 해수면 논란이다. IPCC는 4차 보고서에서 "네덜란드 국토 면적의 55%가 해수면보다 낮으며 GDP의 65%가 침수 위험에 직면한 저지대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네덜란드 정부는 올해 2월 "국토 면적의 26%가 해수면보다 낮으며 이 지역에서 나오는 경제적 부가가치는 GDP의 19%에 불과하다"고 정면 반박했다. IPCC는 이에 대해 "55% 수치는 범람 위험이 있는 지역의 비율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명하며 오류를 인정했다. 그렇다면 IPCC의 거짓말은 과연 의도성이 있는 새파란 거짓말이었을까, 아니면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악의 없는 거짓말이었을까.

■ 기후변화 논의는 로비ㆍ정치대결의 場

이번 논란을 통해 사람들이 얻은 교훈이 있다면 지구 온난화 연구가 생각했던 것만큼 순수한 상아탑의 영역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온난화 이론 지지자들은 비판세력들이 "석유회사의 거대한 자본력에 놀아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반면 온난화 이론 비판세력은 IPCC(기후변화 정부 간 위원회)에 참여한 과학자들이 거대 금융회사와 녹색산업 관련 업체들의 기후변화 예측 자문역으로 일하며 막대한 돈을 받아왔다는 커넥션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어느새 지구 온난화는 거대한 정치와 로비의 영역으로 변모해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더더욱 과학적 내용들만 담아서 정리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온난화가 진행 중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추세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매일경제의 요청에 의해 기후연구 자료를 분석해 봤다는 권언태 국립기상연구소 기후연구과장은 "1850년부터 지금까지 30년씩 잘라봤더니 온도가 올라간 구간도 있고 내려간 구간도 있었다"며 "일부 구간을 잘라서 보면 온난화를 부정하는 자료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추세"라고 설명했다.

지금은 온난화 추세가 진행되고 있는 구간이라는 주장이다. 오재호 부경대 교수는 "최근에 일어나는 온난화는 감히 인간 탓이라고 말하고 싶다"며 "정황 증거가 명백하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그는 "기후학자들은 지구 온난화를 막아야 한다고 염려하는 편이고 녹색성장하는 게 불편한 사람들은 반대하는 입장"이라며 "하지만 사실 지구 처지에서는 녹색성장도 불편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찮다. 2001년 IPCC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존 크리스티 앨라배마대 교수는 "온도를 측정하는 곳이 지표면에 있는 대도시들이기 때문에 오류가 나타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위성으로 측정한 대기권의 온도와 지표면의 온도를 비교하는 작업을 수년간 진행하고 있다. 역시 2001년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던 리처드 린드젠 MIT 교수의 연구도 흥미롭다. 그는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2배가 될 경우 공기의 온도가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연구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IPCC가 화씨 1.5도에서 5도까지 변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 데 비해 린드젠 교수는 실제로 측정한 결과 0.3~1.2도 범위에서 움직였다고 밝혔다. IPCC의 걱정이 과했다는 것이다.

비과학자들의 비난은 더욱 거세다. 최근 미국 워싱턴에 내린 사상 최대의 폭설 때문에 "지구 온난화로 사람들은 아마겟돈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정작 닥친 것은 스노마겟돈이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미국 남동부에 위치한 애틀랜타의 과일까지 얼어붙게 할 정도의 매서운 추위는 지구 온난화 주장에 대한 대중의 믿음을 부수는 계기가 됐다.

도널드 트럼프는 "이처럼 추운데 무슨 지구 온난화냐"며 "앨 고어에게 주어진 노벨평화상을 몰수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뉴욕타임스(NYT)에 기고하면서 "글로벌 온난화(Global Warming)가 아니라 글로벌 기후변태화(Global Weirding)라는 말을 써야 맞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기후 온난화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가운데 국제사회에서는 학자나 저술가들이 다양한 대안을 내놓고 있다. 사회학자인 앤서니 기든스 영국 상원의원은 최근 '기후변화의 정치학'이란 저서에서 "기후변화는 근본적으로 정치 영역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해석에 따라서는 '어차피 과학 영역에서 해결되기 어려운 문제이니 정치적 해결이 효과적'이라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다. 프리드먼은 기고문에서 "순수하게 진실만을 추려 50쪽짜리 보고서를 만들어 배포하면 (불필요한) 논란은 사라질 것"이라고 적었다.

[신현규 기자 / 이재화 기자 / 정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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