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의 눈물' 가든파이브까지

입력 2010. 4. 11. 22:30 수정 2010. 4. 11. 2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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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현장] 상권 보호해준다더니 또 쫓겨날판

높은 분양가에 파리 날리자SH공사, 뉴코아아울렛 계약상인들, 이전 제안에 반발"공사, 영업방해 압박" 주장

2004년 4월29일. 서울 중구 청계천4가의 한 공구상가 주인 이아무개(52)씨가 목을 매 숨졌다. 그는 유서에서 "서울시장님, 청계천 상인을 도와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29년째 청계천에서 장사를 해 온 이씨는 청계천 복원공사로 단골이 끊겨 극심한 생활고를 겪고 있던 터였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다른 상권을 보장해주겠다"며 어려움에 빠진 청계천 상인들을 달랬다. 이후 이명박 대선후보는 '청계천 상인 면담 4200차례, 설득의 리더십'을 홍보했다. 그때 서울시가 보장해주겠다던 상가는 서울 송파구 문정동의 동남권유통단지 '가든파이브'였다. 그러나 이씨가 숨진 뒤 6년이 흐른 2010년 4월, 가든파이브에는 청계천 상인이 없다.

지난 9일 가든파이브 입구. 82만㎡의 초대형 유통단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상인도 손님도 찾아볼 수 없었다. '입점을 환영합니다'라는 펼침막만 을씨년스럽게 나부꼈다. 건물 1층에서 기자가 테크노관의 위치를 묻자, 안내원은 민망한 듯 자판기 한 대만 놓여 있는 널찍한 공간을 둘러보며 "여기가 테크노관 1층입니다"라고 답했다. 티(T)1041, 티1042…. 공간을 구분해 놓은 바닥의 짙은 회색 타일을 보고서야 비로소 상가 입점 예정지임을 알 수 있었다.

테크노관 1층에 입주한 점포는 딱 1곳이었다. 1993년부터 청계천에서 석유와 얼음을 팔았다는 송연주(55)씨는 2003년 가게가 철거된 뒤 특별분양을 받아 지난 2월 이곳에 전자제품 가게를 열었다. 송씨는 "찜질방이나 극장 위치를 물어보는 사람들한테 하루 종일 길 안내만 하고 있다.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건지…"라며 한숨을 쉬었다.

송씨 가게의 분양가는 4억원 정도다. 청계천 상인 대부분은 비싼 분양가에 계약을 포기했지만, 송씨는 분양가의 90%를 대출받아 점포를 냈다. 그런 탓에 송씨는 청계천 시절의 가게 월세인 50만원의 세 배가 넘는 160만원을 이자로 내고 있다. "이자는 남편이 건설 일용직으로 번 돈으로 메우며 버티고 있다"고 했다. 지난 2월엔 관리비로 11만원을 냈다. 하지만 그동안 가게 매출은 지난 3일 9만원짜리 스팀청소기 하나를 판 게 전부다.

옆 건물에 자리잡은 패션관 상인들은 더 암울하다. 가게를 포기하고 쫓겨날 처지다. 상가 계약률이 50% 남짓에 머물자 시행사인 에스에이치(SH)공사는 지난달 31일 패션관 1~7층에 뉴코아아울렛을 유치하기로 이랜드그룹과 계약을 맺었다.

이랜드그룹은 패션관에 입주한 상인들에게 매장을 자신들에게 임대하고, 대신 이랜드가 지정한 가든파이브 안의 다른 매장에서 수수료를 내며 영업하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패션관 3층 입주자 김아무개(50)씨는 "이랜드 쪽에서 준다는 임대료가 70만원 정도라는데 그 돈으론 내가 내는 한 달 이자 100만원도 감당이 안 된다"며 "왜 내가 쫓겨나야 하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다른 매장에서 영업을 해도, 아울렛과 경쟁이 불가능해 상인들에겐 불리한 조건이다.

이랜드그룹 쪽이 입주자들의 반발에 난색을 표시하자, 이번엔 에스에이치공사가 패션관의 정상 영업을 방해하고 있다는 의혹이 입주자들 사이에서 불거졌다. 입주자 이동일(70)씨는 "800만원을 주고 외부에서 인테리어를 다 만들어 놓았는데, 공사 쪽이 이를 싣고 오는 화물차가 들어오지 못하게 지하주차장을 통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청계천 상인'들은 이런 상황이 서울시의 주먹구구식 행정이 낳은 필연적 결과라고 입을 모았다. 2003년 4000억원 정도로 예상했던 공사비는 1조3000억원이 들어갔다. 청계천 상인들에게 7000만~8000만원으로 약속했던 분양가도 평균 1억7000만원으로 치솟았다. 입주 포기가 속출해 청계천 상인 6000여명 가운데 10% 정도만 계약을 했고, 이들마저도 연체료를 물어가며 입주를 미루고 있다. 지난해 4월로 예정됐던 정식 개장도 몇 차례 연기를 거듭해 아직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

이날 오후 6시가 되자 하루 종일 손님 없이 빙빙 돌던 에스컬레이터가 멈추고 매장 조명이 꺼졌다. 이동일씨는 "원래 저녁 8시까지인데, 손님이 없어 6시면 불이 꺼진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명색이 쇼핑몰인데도 휴일인 토·일요일은 가든파이브 전체가 문을 닫는다"고 말했다.

황춘화 기자 sflower@hani.co.kr

☞ 가든파이브

서울시가 동남권 유통단지로 삼겠다며 2006년 착공해 82만㎡ 규모로 지은 공공주도형 상업시설이다.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은 청계천 복원에 반발하던 청계천 상인들에게 '대체 상권'을 제공하겠다며 이곳의 특별분양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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