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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만 사기쳤다' 월가 불편한 진실 수면위로

황숙혜 입력 2010. 04. 19. 06:02 수정 2010. 04. 1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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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황숙혜 기자]미국 자본주의의 상징격인 골드만삭스와 패브리스 투레 부사장의 피소는 상승 열기로 후끈했던 월가를 단숨에 급랭시켰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3년 전 거래를 들춰내 월가의 심장을 정조준한 것은 미국 자본시장의 불편한 진실을 수면 위로 드러내 보였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는다. 금융위기 이후 월가의 공룡 투자은행(IB)이 금융공학이라는 현란한 거래기법으로 교묘하게 투자자를 속이는 한편 법망을 피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파생상품을 이용한 그리스의 국가 분식회계와 부조리한 정크본드 거래 등 골드만삭스가 직접 언급된 사안이 적지 않다. 이번 기소를 통해 꼬리를 물었던 '잡음'을 감독 당국이 '사실'로 인정한 셈이다.

그저 작은 비즈니스에 불과했던 문제의 부채담보부증권(CDO) 거래가 골드만삭스나 월가에 강력한 충격파를 던진 것은 이 때문이다. 감독 당국이 모기지 파생상품 시장의 붕괴를 겨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지만 결코 마지막은 아닐 것이라는 관측이 번지고 있다.

◆ 2007년, 골드만에 무슨 일이? = 미국 집값이 영원히 오를 것만 같았던 2007년, 모기지 시장의 붕괴를 점친 인물이 있었다. 헤지펀드 업계의 거물로 통하는 존 폴슨이 그 주인공. 주택 가격의 급락에 강한 확신을 가졌던 그는 몇몇 투자은행(IB)을 찾아가 하락에 베팅할 상품 거래를 제안했다. 그가 접촉한 IB 중 거래를 수락한 곳이 바로 골드만삭스였다. 모기지 자산 중 적절한 것을 가려내 CDO라는 구조화 증권으로 가공하고, 폴슨이 하락에 베팅하는 조건의 거래를 받아들인 것.

SEC에 따르면 폴슨과 골드만삭스는 CDO의 기초자산으로 편입한 모기지 채권을 머리 맞대고 논의했다. 골드만삭스는 CDO를 설계하는 한편 모기지 채권의 가격이 하락하거나 디폴트가 발생할 경우 수익이 발생하는 구조의 신용디폴트스왑(CDS) 계약을 폴슨과 체결했다.

폴슨의 제안을 받은 골드만삭스는 ACA매니지먼트에 CDO의 기초자산을 선정하도록 의뢰했다. SEC에 따르면 ACA는 주택모지담보증권(RMBS)의 신용 리스크를 분석하는 데 경험과 실력을 갖춘 금융회사다. 폴슨는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RMBS 123건을 가려냈고, 이를 골드만삭스에 넘겨 검토하게 했다. ACA는 폴슨이 선정한 123건의 RMBS 중 55건을 포함해 총 86건의 리스트를 골드만삭스에 보냈고, 이후 여러 차례의 추가 논의 끝에 90건의 증권이 기초자산으로 최종 선정됐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투자자들에게 CDO를 매각하고 몇 달 뒤 폴슨의 예상대로 모기지 시장에 한파가 불어 닥쳤다. CDO가 발행된 지 6개월만에 기초자산 85%의 신용등급이 강등됐고, 99%가 1년 이내에 강등됐다. CDO에 편입된 모기지증권에서 디폴트와 연체가 발생했고, 이는 곧 가격 하락으로 이어졌다.

투자자들은 10억달러의 손실을 입었고, 하락에 베팅했던 폴슨은 10억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SEC의 주장에 따르면 골드만삭스 역시 문제의 거래로 1500만달러의 수익을 챙겼다.

◆ 무엇이 문제였나 = SEC가 문제 삼은 골드만삭스의 내부자거래란 폴슨과 계약 사실을 CDO 투자자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같은 구조화 증권의 하락에 베팅한 반대 매매자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투자자들이 CDO를 매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얘기다.

골드만삭스의 주장은 다르다.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게 할 목적으로 CDO를 설계하지 않았다는 것. 뿐만 아니라 당시 CDO를 매입한 투자자는 상당한 금융 지식을 갖춘 이들이었고, 기초자산으로 편입된 모기지 증권에 대해서도 충분한 정보를 제공받았다는 것이 골드만삭스 측의 주장이다.

폴슨과의 거래 사실을 밝히지 않은 데 대해 골드만삭스는 상승이든 하락이든 반대 포지션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라고 말했다. 폴슨이 골드만삭스와 거래 이외에도 당시 모기지 시장의 하락에 베팅하는 헤지펀드를 운용하고 있었고, 이는 언론을 통해 이미 투자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것이 골드만 측의 주장이다. 그리고 SEC에 항소할 뜻을 밝혔다.

◆ SEC의 칼끝, 골드만 관통할까 = SEC가 골드만삭스와 투레 부사장을 기소한 근거는 증권거래위원회 규정 17a와 10b-5다. 두 가지는 유사한 규정이지만 10b-5에서 요구하는 조건이 좀더 까다롭다.

SEC의 기소 내용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CDO 거래 과정에 ▲골드만삭스와 투레 부사장이 중차대한 허위 진술 또는 정보 누락을 행했고 ▲투자자를 기만하거나 속이려는 의도가 명백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그렇다면 중차대한 정보 누락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지난 1988년 미국 법원의 판례에서 '상식 있는 투자자가 중차대한 정보 비공개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농후한 경우 이를 중차대한 정보 누락이라고 본다'고 명시한 바 있다.

골드만삭스가 CDO의 가치가 하락해 폴슨에게 이익을 주려는 의도로 상품을 설계했다는 것이 사실로 확인되고, 투자자에게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이 인정된다면 명백히 중차대한 정보 누락에 해당된다는 것이 업계 전문가의 의견이다.

골드만삭스가 투자자를 기만하고 속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일은 그리 복잡하지 않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내재가치를 떨어뜨리려는 의도로 설계된 상품이라는 사실을 알면서 베팅할 투자자가 몇이나 될까.

SEC의 기소 내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골드만삭스가 문제의 CDO에 보다 많은 투자자를 끌어들이기 위해 ACA의 평판을 이용했다는 것이 SEC의 주장이다. SEC는 골드만삭스가 ACA를 거래에 끌어들이기 위해 폴슨의 CDS 매입 사실을 숨겼고, 결과적으로 투자자뿐 아니라 ACA도 속인 셈이라고 주장한다.◆ 파장 어디까지 = 월가는 SEC의 이번 기소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법조계에서도 이번 사건은 초미의 관심사다. 사실 골드만삭스의 거래 행위는 월가의 오랜 관행이었고, 당시 골드만삭스의 거래를 문제 삼을 경우 수많은 IB와 헤지펀드가 함께 걸려들 수 있기 때문.

SEC는 모든 금융거래가 공정하고 투명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기소를 통해 금융업계에 전달하려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그렇지 않은 경우 처벌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 SEC는 폴슨의 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문제도 제기하지 않았다. 골드만삭스와 함께 기소 대상에 포함시키지도 않았고, 향후 기소할 가능성 역시 희박해 보인다. ACA 역시 SEC의 기소 대상에서 제외됐다.

골드만삭스의 주장처럼 월가의 IB 거래라는 것이 서로 다른 시각을 가진 트레이더가 모여 이뤄지고, 거래를 주관하는 IB는 각 트레이더의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히려 정보를 비공개하는 편이 시장 유동성을 확대하고 거래를 늘리는 데 유리한 전략이라는 것이 월가의 시각이다.

이렇게 볼 때 골드만삭스의 항변이 터무니없지 않다. 반면 SEC는 골드만삭스의 CDO가 플레인 바닐라가 아닌 일종의 맞춤형 구조화 증권이기 때문에 명백한 정보 공개 의무가 있었다고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사 여부도 시장의 관심이 집중된 쟁점이다. 공정위가 이번 사안에 대해 골드만삭스를 문제 삼을 경우 SEC와 별도의 제재를 가할 수 있다.

골드만삭스에 대한 최종 판결과 함께 월가의 시선이 집중된 것은 추가 기소 여부다. SEC가 문제 삼은 골드만삭스의 정보 비공개를 유사한 형태의 다른 금융거래나 IB로 확대할 경우 월가에 또 한 차례 쓰나미가 몰아칠 것으로 보인다.

골드만삭스의 혐의가 입증되지 않더라도 SEC의 '칼끝'이 오바마 행정부의 금융 규제 강화에 힘을 실어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경계를 명확히 하고, 상업은행의 리스크를 제한하는 내용의 이른바 '볼커 룰'이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CDO(Collateralized Debt Obligation)란】

SEC가 월가의 심장부를 겨냥한 사건의 핵심에는 CDO가 자리잡고 있다. 한 때 선진 금융기법의 총아로 부각됐던 파생 금융상품은 위기의 원흉으로 드러났고, 대표적인 파생상품 중 하나가 바로 CDO다.새로운 구조화 금융상품을 만들어낸 금융공학자들은 한때 뛰어난 발명가로 대접받았다. 증권화는 리스크의 총량을 그대로 유지한 채 여러 주체들에게 분산함으로써 특정 금융회사에 모든 리스크가 집중되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브프라임 모기지의 부실은 리스크 분산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부터 의문을 갖게 했다.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구조를 가진 CDO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대형 자금을 운용하는 금융회사는 리먼 브러더스나 메릴린치와 같은 투자은행에 찾아가 자금을 빌려 CDO를 만든다. 이 때 투자은행은 금융회사에 자금을 빌려주는 대가로 2퍼센트 내외의 수수료 수입을 챙긴다. 돈을 빌린 금융회사는 CDO의 기초자산인 채권을 월가의 은행으로부터 사들인다. 여기서 기초자산으로 동원된 채권이 바로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초로 만들어진 주택저당증권(MBS)이다.

역으로 추적하면, 금융회사는 신용등급이 낮은 개인도 주택을 구입할 수 있도록 비우량 모기지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을 내줬고, 이 대출 채권이 여러 금융회사의 손을 거치는 과정에 MBS로, 다시 CDO로 형태를 바꿔간 것이다.

파생상품은 발행시장만 있을 뿐 유통시장이 없는 독특한 존재다. 즉, 거래를 주관하는 공식적인 거래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시장에서 형성되는 적정 가격이라는 것이 없다. 물론 파생금융상품의 리스크를 평가하고 그에 맞는 가격을 평가하기 위해 나름대로의 기법이 동원되었다. 하지만 신용평가 기관은 파생상품의 가치와 리스크를 적정하게 평가하지 못했다.

적정 가격을 책정할 수 없는 상황에 부실이 터지자 금융회사의 신용과 파생금융상품에 대한 신뢰는 무너졌고 결국 유동성 경색으로 이어졌다. 문제가 발생하자 상품의 가격은 물론이고 손실을 파악하는 일조차 난관에 부딪혔다.

파생상품에 투자한 금융회사들은 손에 쥔 사과가 큰 것인지 작은 것인지 가늠하기 힘든 실정이었다. 이처럼 리스크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가치가 왜곡된 데 따라 파생상품은 리스크의 이전이라는 본연의 목적을 제대로 달성하지 못한 셈이 됐다.

황숙혜 기자 snow@<ⓒ세계를 보는 창 경제를 보는 눈, 아시아경제(www.asiae.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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