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 페이퍼진] 히말라야 14좌 도전사

2010. 4. 28. 11:07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단지, 18명 만이 대위업…이 가운데 한국인이 3명

  인류 역사상 히말라야 8000m급 14개 봉우리를 모두 정복한 사람은 18명이 전부다.

 처음으로 14좌 완등에 성공한 이는 이탈리아의 라인홀트 메스너. 1986년 로체 등정을 마지막으로 대업을 완성할 때까지 17년간 히말라야 골짜기를 누볐다.

 그 후 2008년까지 22년간 14명이 이 위대한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고 지난해 앤드류 록(호주) 등 네 명이 속속 죽음의 여정에 마침표를 찍었다. 이들 중 10명은 무산소 등정이라는 점에서 또 차원을 달리한다.

 완등자 18명을 국가별로 살펴보면 한국과 이탈리아가 3명, 폴란드와 스페인이 2명이고 스위스, 멕시코, 미국, 에콰도르, 카자흐스탄, 독일, 핀란드, 호주가 1명씩이다. 대한국인의 위대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엄홍길 박영석 한왕용이 그 자랑스러운 주인공이다. 엄홍길이 2000년 7월 31일 K2를 정복하면서 아시아 최초, 인류 8번째로 14좌 완등에 성공했다. 이듬해 박영석이 14좌를 발아래 뒀고, 2003년 한왕용이 11번째로 이름을 올렸다. 그것도 모자라 엄홍길은 얄룽캉(8505m)과 로체샤르(8400m) 등 독립 봉우리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8000m급 위성 봉우리까지 밟아 사상 첫 '16좌 완등'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93년 아시아 최초의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을 시작으로 세계 최단기간(8년 2개월) 14좌 완등, 세계 최초 1년간 8000m급 6개봉 등정 등의 대기록들을 수립한 박영석은 2004년 무보급 세계 최단기간 남극점 도달(44일)에 이어 2005년 북극점을 밟으며 인류 최초의 산악 그랜드슬램(14좌 완등, 7대륙 최고봉 등정, 지구 3극점 정복)을 달성했다. 게다가 작년에는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코리안루트를 개척하는 쾌거도 올렸다.

 엄홍길의 14좌는 지옥의 여정이었다. 85년 에베레스트에 처음 도전했다가 실패했고, 이듬해 재도전에서도 고배를 마셨다. 순탄치 않은 출발이었다. 그러나 88년 9월 26일 마침내 정상을 밟으며 14좌의 길로 들어섰다. 이후 5년간 벽등반에 몰두하다가 93년에 다시 14좌로 방향을 틀었고, 초오유와 시샤팡마 정복으로 속도를 내 97년까지 9개 봉우리를 넘어섰다. 그 과정에서 유독 진을 뺀 봉우리가 현재 오은선이 오르고 있는 8091m의 안나푸르나였다. 1950년 프랑스의 모리스 엘조그와 루이 라슈날에 의해 인류 최초로 정복된 8000m급 봉우리지만, 20년이 지난 1970년에야 두 번째 등정이 이뤄졌을 만큼 까다로운 산이기도 했다.

 엄홍길은 에베레스트에 오르자마자 안나푸르나를 다음 목표로 잡았다. 그러나 89년 첫 도전과 96년 두 번째 도전에서 거푸 기상악화로 물러났고, 97년 봄에는 셰르파 나티가 크레바스에 빠져 사망하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98년 봄에는 등반 도중 추락하는 대원을 구하려다 정강이뼈가 세 동강 나는 중상을 입었고, 다섯 번째 도전에 나선 99년에야 간신히 정상을 밟을 수 있었다.

 그의 14좌 완등에는 셰르파 4명, 대원 3명, 기자 1명 등 총 8명이 희생이 따랐다는 점에서 가슴 아픈 역사가 아닐 수 없다.

 박영석의 14좌는 단기간에 완성됐다. 초인의 체력을 앞세운 몰아치기 성향이 강했다.

 93년 에베레스트를 오른 후 3년의 공백이 생겼지만, 96년 안나푸르나 등정을 시작으로 무섭게 가속도가 붙었다. 97년 다울라기리, 가셔브룸1, 가셔브룸2, 초오유 등 4개 봉우리를 정복했고, 이후 매년 2~3개씩 넘어선 끝에 2001년 7월 22일 K2 정복으로 14좌 행군을 마감했다.

 한왕용은 94년 초오유 정복을 시작으로 때로는 엄홍길과, 때로는 박영석과 호흡을 맞추며 봉우리 하나씩을 취한 끝에 10년 만에 목표를 달성했다.

 한국 여성의 히말라야 도전은 80년대 들어서야 본격화됐고, 84년 김영자가 안나푸르나에 오르면서 8000m급 고봉 등반의 길을 열었다. 최고봉 에베레스트는 93년 대한산악연맹 에베레스트 원정대의 지현옥 김순주 최오순 대원에 의해 처음으로 정복됐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8848m의 에베레스트는 1921년 영국 산악인들에 의해 첫 도전을 받았으나 32년이 흐른 1953년 5월 29일에야 존 헌터가 이끄는 영국원정대의 에드먼드 힐러리와 셰르파 텐징 노르게이에게 처음으로 정상을 내줬다. 한국은 1977년 대한산악연맹 원정대(김영도 대장)의 고상돈 대원이 남동릉을 통해 정상을 밟아 세계 여덟 번째 등정국으로 등록됐다. 그러나 히말라야 원정 초창기인 60년대 초부터 10여년 간은 고난의 연속이었고, 대원과 셰르파 15명이 한꺼번에 눈사태로 죽음을 맞는 최악의 사고도 겪었다.

 그 후 허영호가 87년 국내 처음으로 동절기 등정에 성공했고, 93년에는 북릉~남동릉 횡단 등반을 하기도 했다. 박영석은 93년 무산소 등정의 쾌거를 올렸고, 박정헌은 95년 국내 처음으로 남서벽을 통해 올랐다.

 그 중간 중간에도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90년 함상헌 대원이 남봉에서 추락사했고, 2008년 박영석 대장과 함께 남서벽에 신루트를 개척하던 오희준 이현조 대원은 눈사태로 추락사했다. < 최재성 기자>

<scnewsrank>

[ ☞ 웹신문 보러가기] [ ☞ 스포츠조선 구독]

- Copyrights ⓒ 스포츠조선,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Copyright © 스포츠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