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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인터넷 문화공간 만든 '디시인사이드'

입력 2010.05.31. 14:50 수정 2010.05.31.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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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저널 버즈]

'아햏햏'이라는 신조어와 인터넷 스타 '개죽이'의 고향은 디시인사이드다. 디시인사이드는 다양한 UCC와 합성사진으로 국내 커뮤니티 문화를 주도했지만 악플과 음란물의 근원지라는 비난에 자유롭지 못하다. 100만 인터넷 폐인 양성을 꿈꾸는 디시인사이드가 이달 비하인드스토리 주인공이다.

디시인사이드디지털 카메라(digital camera)의 약자. 디지털 콘텐츠(digital contents), 디지털 커머스(digital commerce), 디지털 커뮤니티(digital community) 등의 다양한 의미도 담음.

'소녀시대 유리, 개념 시구 女 연예인 1위' '박진영, 과대평가된 작곡가 1위' '술 못 끊게 하는 광고 모델은 이승기와 김선아' 등 최근 연예면을 장식한 이들 뉴스는 모두 디시인사이드(이하 디시)에서 조사한 설문을 토대로 한 것이다. 보통 사람들이 그냥 재미삼아 보고 넘기는 무의미한 질문이나 주제를 놓고 열심히 덧글 달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곳이 바로 '디시'다.■누리꾼의 자유터? 악플의 근원지?2001년 7월. 디시 게시판에 '오늘 산 중저가형 모델 싸게 팝니다'라는 제목으로 먹다 남은 과자를 판다는 글이 올라왔다. 중고장터에 디지털카메라를 파는 것 같은 형식으로 글을 썼다. 이 장난 섞인 글에 회원들은 '운송료는 얼마?' '다른 맛은 없냐' 'A/S는 몇 년' 등으로 마치 장터에서 거래하듯 덧글을 달기 시작했다.

'쿠키닷컴'이라 불리는 이 글은 어느덧 조회수가 60만을 훌쩍 넘었고 1만 8,000여 개의 덧글이 달렸다. 덧글달기가 하나의 놀이문화로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또 이를 시작으로 디시인사이드는 디지털카메라 동호회에서 일반 커뮤니티로 바뀌는 전기를 맞는다. 이 글은 '성지순례'(조회가 많은 게시물로 회원이라면 들려서 덧글을 달아야 하는 곳이라는 뜻)라는 단어를 만들기도 했다.

디시에 덧글 열풍을 몰고 온 쿠키닷컴. 9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댓글이 달리고 있는 디시의 성지다.

이후 디시의 기상천외한 게시물은 온라인 전체로 퍼져나갔다. 2008년 7월에 올라온 '빠삐놈병神디스코믹스(feat. 엄기뉴 전스틴 디제이쿠 이효리 한가인)' 게시물은 빙과류 주제곡과 연예인 목소리를 조합해서 만든 음악인데 공중파에서도 화제가 되면서 수많은 관련 UCC를 낳기도 했다. '아햏햏' '개죽이' '딸녀' '무뇌충' '~하삼' 등 인터넷 유행어 중에 대부분은 디시에서 태어났다.

디시는 자유분방함으로 형식의 파괴라는 재미를 안겨주었지만 역효과도 컸다. 앞뒤 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악플이 가장 큰 문제였다. 2004년 5월에는 악플에 모욕감을 느끼고 자살한 누리꾼도 있었다. 이런 경향은 더욱 심해져서 욕설과 비방글이 넘쳐났고 자정되기는커녕 오히려 디시의 특성이니 이해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그 탓에 악플의 근원지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디시 출신 유명인메가쇼킹(고필헌)

2003년부터 카툰연재갤러리에서 < 감격브라더스 > 를 연재해 인기를 얻었다. 디시의 만화를 보고 신문사에서 의뢰가 왔고 이를 시작으로 계속 만화를 그리고 있다. 메가쇼킹은 팬이 지어준 필명이다.

B급달궁(채정택)

2000년도에 로 데뷔한 만화가다. 2004년 5월 카툰연재갤러리에 학교생활과 성을 신선하게 풀어낸 < 다세포소녀 > 로 사랑을 받았다. 이 작품은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문희준

록 가수로 전향한 문희준이 "저를 연예인이라 부르지 말아주세요. 저는 아티스트의 길을 걷기로 했습니다" "하루에 오이 세 개 먹었어요. 록이 원래 배고픈 음악이잖아요" 등의 말을 했다며 그를 '무늬준'과 '무뇌충'이라고 부르는 수많은 안티팬이 생겨났다. 그를 소재로 삼은 패러디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공격해 드립니다디시가 익명성을 포기하지 않고 자정능력을 기르려고 택한 방법은 '갤러리'다. 풍경, 합성, 연예, 게임 등 분야별로 게시판을 나눠 관심 분야에 집중하도록 한 것이다. 엉뚱한 사람을 상처주는 일은 줄었지만 패거리주의는 더 많은 신조어와 합성 사진들을 만들어냈고 더욱 심각한 부작용을 낳았다.

최근 지진이 일어났을 때 코미디갤러리 회원 중심으로 탤런트 '지진희' 갤러리를 공격해 게시판을 마비시킨 일이 있는데 이유는 단지 이름이 비슷하다는 것. 2002년 한 명문대생이 학교 갤러리에 '과외비 담합'을 주장하는 글을 올린 것이 이 같은 공격의 시초였다.

이후 유행처럼 번져 누군가 말만 하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집단으로 서버를 공격해 다운시켰다. 디시에서 이건 그냥 전쟁놀이일 뿐이다. 자기들의 힘을 보여주고, 승리해 만족감을 느끼는 것이다.

디시 내부에서 벌어지는 공격은 애교 수준이다. 소위 '턴다'라고 부르는 디시의 공격에 무릎을 꿇은 서버는 한두 개가 아니다. 디시의 폐인들은 심지어 대형 포털사이트 같은 웹 서비스를 공격하기도 한다.

전쟁놀이의 규모는 국제적으로 커지기도 했다. 2004년 한 일본인이 한국을 조롱하는 내용과 디시 엽기 갤러리에 올라온 특이한 사진을 마치 한국의 일상처럼 올려 화를 돋웠다. 때 마침 고이즈미 총리가 독도를 자국 영토라 주장하자 분노는 극에 달했다.

디시 회원들은 사진을 올렸던 사이트를 무너뜨린 뒤 일본 대표 커뮤니티인 2채널( www.2ch.net)로 진군했다. 이후 이 두 사이트는 한일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마다 서로를 공격하는 사이버 대전을 펼치는 것이 관례처럼 되었다.

3.1절에 2채널 공격에 함께 하자는 포스터.

최근에는 2채널이 집단 폭행으로 사망한 러시아 한국인 유학생의 소식을 '인종차별이 아니다' '러시아의 선행' '사정은 모르지만 아마 한국인이 나빴을 것'이라며 악담을 퍼부어 한차례 사이버 대전을 치루기도 했다. 이후 '사이버 대전'이나 '국내 누리꾼의 힘을 보여줬다'는 등 신중하지 못한 매체가 이를 기삿거리로 삼으면서 그들을 영웅시하자 더 재미를 붙이고 전쟁을 즐기고 있다.

이리저리 유명세를 타다보니 공격대상이 되기도 한다. 지난 2009년 DDoS 공격 때 디시도 타격을 입었다. 디시의 운영자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온라인 사이트에서, 그것도 커뮤니티 서비스 업체는 몇 시간만 먹통이 되도 큰일이거든요. 그런데 그 공격으로 인해 디시인사이드가 며칠 동안 서비스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않아 난리가 났었지요. 저희 힘으로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고요. 그걸로 인해 회사도 큰 피해를 입었고 당시 그로 인해 방문자 수가 크게 감소하기도 했어요."

디시 태생 신조어아햏햏

디시가 뽑는 최고의 신조어면서 디시를 온라인에 알린 일등공신이기도 하다. 가벼운 웃음을 주는듯한 '햏햏'에 약한 감탄의 뜻을 표현하는 '아'를 붙여 만든 단어다. 전라도 사투리 중 '거시기하다'란 표현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약간의 감탄이 섞인, 그리고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웃음을 의미한다. 디시에는 아햏햏한 자료가 많으니 이보다 잘 어울리는 말은 없다.

방법하다

'깔고 안진 나일론 방석 갖다 노라. 안 갖다 노면 방법한다. 방법하면 손발이 오그라진다. 갖다 노면 안 한다' 부산의 어떤 할머니가 잃어버린 방석을 찾기 위해 붙여놓은 경고문에서 시작된 말이다. 이후 혼내거나 응징할 일이 있을 때 '방법하다'라는 단어를 붙여 쓰기 시작했다.

폐인

디시에 실시간으로 글을 올리고 빠져있는 회원을 일컫는다. 원래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망가진 사람'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디시 폐인'이란 말이 생기면서 어떤 것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바뀌었다. 최근에는 불필요한 인간이라는 뜻으로 '잉여 인간'이라 말을 많이 쓴다.

개죽이

디시의 마스코트이기도 한 강아지. 대나무에 매달린 귀여운 표정으로 화제가 되었다. 아직까지도 짤방(삭제 방지용으로 넣는 재미있는 그림이나 연예인 사진)계의 스타로 남아있다.

■디시의 정신적 지주 유식대장디시 창업자 김유식은 회원들 사이에 '유식 대장'으로 통한다. 게시판을 관리하는 여느 운영자와 달리 디시다운(?) 언어를 쓰며 활동해 디시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김유식의 거침없는 글솜씨는 횡성수설 동호회로 활동했던 PC통신 시절부터 이어져 왔다.

1996년 일본에서 학교를 다닐 당시 국내에서 유통하기 힘든 CD와 노트북, 주변기기 등을 가져와 팔기도 했다. 일본에서 들여온 애니메이션 CD가 국내 음란물 기준을 통과하지 못해 구속되어 25일간 영등포구치소에서 지내야 했다. 때문에 '야동 팔아서 디시를 세웠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성인 갤러리를 여과 없이 운영한다는 지적도 많았다. 김유식은 북한 잠수함 침투 사건에 '조작 냄새가 난다'는 글을 올렸다가 국가 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관련해 조사받을 때 대공분실에서 겪은 이야기를 연재해 안기부의 감시를 받기도 했다. 이런 현실도 피하고 영어 공부도 할 겸 그는 영국으로 유학을 다녀왔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한국통신하이텔에서 노트북 제원 정리하는 일을 하다 하이텔 담당자가 다른 분야도 하나 더 해보라는 말에 디지털 카메라에 손을 댔다. 두 달여 동안 제품 구성과 리뷰에 정성을 쏟고 드디어 1999년 10월 '노트북인사이드'와 '디시인사이드'를 열었다.

하이텔 사이트 구석에 붙어있는 배너를 클릭해야 열리는 사이트였지만 김유식은 "개시하던 날이 생각난다. 고정 IP 주소가 없어 근처 PC방에서 업로드를 했던 일, 서비스 개시 두 시간 만에 첫 질문이 올라와 기쁨에 넘쳐 답변 게시물을 달던 일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며 그 때를 회상했다.

2000년에 투자를 받은 뒤 디시는 승승장구했다. 2002년 월드컵 이후 본격적으로 디시폐인이 만들어지면서 사이트는 더욱 활기를 띄기 시작한다. 그는 서버 확장을 위한 자금을 마련한다며 2006년 IC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를 인수했다. 코스닥 기업을 업고 우회상장을 노린다는 시각이 많았다.

또한 넥서스에서 50억원을 투자하면서 발행한 주식으로 넥서스 지분이 더 높아져 최대주주가 바뀌었다. 이를 보고 갤러리에서는 '유식대장이 디시를 버렸다'는 비난을 일기도 했다. 그는 "서비스로 보답하겠다"라고 밝혔지만 인수 과정에서 70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되었고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회원들은 탄원서를 작성해 그의 선처를 요구했다. 대부분의 회원은 김유식의 횡령에는 관대했고 디시가 없어지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더 앞섰다.

올해 1월 김유식은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석방되었다. 재판부는 선고문에서 횡령한 70여억원 가운데 절반 이상이 회수됐고 개인적인 착복이 없는 점, 피해자와 합의한 점, 주범의 기만과 협박에 의해 범행이 저지른 점 등이 감형 사유라고 밝혔다.

소액주주 피해자들이 선처를 탄원한 점 등도 고려되었다. 다시 디시로 돌아온 김유식은 기업 인수와 횡령에 대한 이야기대신 감옥 생활기를 올리는 것으로 회원들은 안심시키고 있다.

김유식은 '대표 에세이'를 만들어 옥중일기를 글로 남기고 있다.

디시가 만든 문화갤러리

디시의 갤러리는 독특한 팬 문화를 자랑한다. 김연아 선수의 승냥이 팬도 여기서 만들어졌으며 박보영은 최단시간 갤러리에 많은 글이 올라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에 스타들이 직접 자기 갤러리에 들어와 글을 남기기도 한다. 1,000여 개의 갤러리에서 인기와 공감을 얻은 글은 히트갤러리에 오른다. 이 갤러리의 올라오는 글은 종종 기사화되기도 한다.

갤러리들은 대부분 2~3글자로 줄여서 불려진다. 예전에 웃긴대학 사이트 이용자가 해충갤(해외축구 갤로그)에게 공격받은 뒤 곤충갤을 공격했다는 일화도 있다.

출사

디시인사이드는 UCC와 수많은 신조어, 패러디를 만들며 일반 커뮤니티 사이트로 바뀌었지만 디지털카메라 사이트의 전통인 출사대회는 포기하지 않았다. 디시 회원과 운영자가 사진을 찍기 위해 모이는 자리로 매년 봄, 가을에 열린다.

첫 번째 '누드 촬영' 출사에는 300명이 모였지만 2007년 11회에는 5,000명으로 인원이 늘어났다. 3회부터는 디지털 카메라 회사의 후원을 받아 경품도 많아졌다. 현재 내부 사정으로 진행하지 않고 있다.

■100만 인터넷 폐인이 만들어질 때까지폐인이란 '아무것도 못할 정도로 망가진 사람'을 뜻하는 단어였는데 인터넷이 활성화 된 이후,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디시 커뮤니티가 활발해진 뒤부터 인터넷 중독자를 뜻하는 말이 되었다. 2001년 말 디시에도 폐인 동호회가 생겨났다.

김유식은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궁금해 첫 오프라인 모임에 참가했다. 나름 분위기에 맞춘다고 후줄근한 옷을 입고 간 그와 달리 폐인 동호회 사람을 의외로(?) 깔끔했다. 그리고 대부분 정보통신 관련 회사 직원이었다. 할 일 없고 시간 많아 인터넷만 들여다보는 이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이도 많다는 사실에 김유식은 '인터넷 폐인은 곧 인터넷 전문가'라는 판단을 한다.

디시폐인이 생긴 뒤 수많은 폐인 시리즈가 만들어졌다.

"예전 월드컵 때 판정에 불만을 품은 이탈리아 국민이 자국 웹사이트를 통해 한국을 비난한 적이 있었다. 이들은 태극기에 해골을 합성해 넣는 등의 만행을 저질렀다. 국내 누리꾼이 일부 몰려가 영어로 욕이 담긴 게시물을 쓰거나 아햏햏과 같은 말로 도배를 했지만 결국에는 해프닝 정도로 끝나고 말았다. 언어의 장벽 탓이었다. 컴퓨터 기술이 발전하면 수년 내에 웬만한 언어들은 실시간으로 번역이 가능해질 것이다."

그는 인터넷 폐인 100만 양병설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상식을 뒤엎는 인터넷 문화로 주목받았던 디시는 10년이 지금 지난 현재 김유식이 말하는 인터넷 전문가의 '폐인'이 아닌 일반 사람들이 말하는 '폐인'이 모이는 장소로 바뀌었고, 여전히 건재하다.

인터넷의 변화에 따라 디시도 변신을 준비 중이다. SNS 서비스를 눈여겨보고 있다. 이용자 스스로 갤러리를 만들고 운영할 수 있는 마이너 갤러리도 준비 중이다.

'레알 잉여 인간'의 모임?이 말은 '진짜 불필요한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뜻이다. 이처럼 디시의 글을 읽으려면 그들만의 은어를 알아야 한다. 처음 접속하는 사람의 반응은 극과 극이다. 새로운 문화에 빠져드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들만의 색다른 문화에 혀를 내두르기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언어와 욕설과 비방, 그리고 '초딩'으로 표현되는 수준 이하의 인격을 지닌 누리꾼의 증가도 문제다. 디시가 없어지면 수많은 폐인들이 다른 곳으로 침투해 사회적으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스스로를 잉여인간이라고 하는 회원들이 많은 탓인지 설문조사에 대한 참여도가 매우 높고 쏟아내는 기발한 아이디어와 상상력은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칭찬할 만하다. 폐인을 폐품처럼 유익한 자원으로 다시 활용하게 된다면 대한민국 인터넷 커뮤니티 역사에 어두운 면보다 밝은 면을 더 많이 남기게 될 것이다.

블로그와 트위터로 특징되는 21세기 인터넷 시대에 디시가 어떻게 적응하고 진화해 나갈지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디시에서 언론으로

소설가 이외수 악플러 고소 사건2009년 6월 이외수는 디시 '이외수 갤러리'에 욕설, 비방, 심지어 부모와 아내에게 성적 모욕 성 댓글을 올린 악플러를 고소했다. 그는 '학생맨'이라는 누리꾼과 광우병, 김구 선생 테러 등 정치적 사안을 두고 격한 논쟁을 벌이다가 정치-사회 갤러리의 공격까지 받으며 고소를 결심했다. 사과문을 요구했으나 진정성이 없는 사과문을 보내자 "이번에는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며 고소까지 이른 것이다.

디시 회원들은 '디시는 원래 이런 곳이다, 싫으면 떠나라' '악플은 이외수가 더 많이 달았다'등 디시를 옹호하는 의견과 '그래도 심한 악플은 자제해야한다' '본때를 보여줘야 한다'는 의견으로 분분했다. 이외수 갤러리는 현재 닫혔다. 이 사건은 악플러와 전쟁이라며 대외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논문 거짓 의혹2004년 2월 황우석 박사의 줄기세포 논문에 디시 과학 갤러리가 거짓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황우석 박사의 논문은 난치병 치료법으로 주목을 받고 있을 때였다. 'melona'라는 이용자는 의혹의 증거를 제시했고 서울대학교는 연구진실성위원회 예비조사위원회를 열어 황우석 박사의 제자들이 논문을 조작했다는 의혹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결국 지난 2009년 10월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디시 회원들은 이 과정에 디시 과학 갤러리가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며 디시의 자랑스러운 사건으로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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