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술국치 100년] 중국은 어떻게 '니시마츠건설'의 배상 받아냈나

입력 2010. 7. 20. 17:58 수정 2010. 7. 20.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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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술국치 100년 기획 잊혀진 만행… 일본 戰犯기업을 추적한다제4부 국치 100년, 이젠 해법 찾아야② 전범기업에 승리한 중국인 피해자들

일본 기업 니시마츠건설과 중국인 강제노역 피해자들 간 화해는 '기업의 자발적 배상'이라는 선례를 남겼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다른 전범기업들도 이렇게 도의적 책임에 따라 움직여 준다면? 한국의 징용 피해자들에게는 하나의 모델이 될 만한 사례다.

그러나 니시마츠건설이 처음부터 순순히 책임지겠다고 나선 것은 아니다.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을 때 시종일관 강제동원 사실을 전면 부인하거나, "그건 국가에서 한 일이고 기업과는 관계없다"며 책임을 회피하는 데 급급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결단을 내리고 화해 협상에 착수했다. 피해자들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 이외에 어떤 이유가 작용했을까.

"중국 정부와 언론의 압박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중국 외교부는 일본 측에서 타당하게 이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했고, 관영 CCTV(중국중앙방송국) 등 언론매체에서도 이 사건을 일본 법원에서 심리할 때부터 추적보도하며 많은 관심을 기울였어요. 니시마츠건설은 항구, 아파트, 발전소 등을 짓는 기업으로 중국 광둥(廣東)성과 홍콩 등에 지사를 두고 있습니다. 중국에서 계속 사업을 하고 시장을 확대해야 하는데 중국 정부와 언론이 그렇게 부정적으로 나오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겉으로 표시는 안 했지만 기업 이미지를 바꿔야 한다는 필요성을 분명히 고려했을 것입니다."

슈강(修剛) 톈진외국어대학 총장의 설명은 명쾌했다. 톈진(天津)시 허시(河西)구의 대학 내 교수회의실에서 지난 6일 만난 그는 중국 여론이 해당 기업을 움직여 '실리적 판단'을 하도록 유도했다는 요지로 말했다. 일본어 교수이기도 한 그는 니시마츠건설 소송 사건의 초기부터 관여하면서 피해자들을 적극 도왔기 때문에 전후 관계를 잘 알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이 사안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고 단호했다.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 바로 전날인 2007년 4월 26일 중국 외교부 류젠차오(劉建超)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중국 노동자에 대한 강제연행은 일본 군국주의가 제2차 세계대전 중 저지른 중대한 범죄행위로, 일본 정부는 성실한 태도로 책임을 다하고 강제연행 문제에 진지하게 대처함으로써 적절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우회적인 외교적 수사 따위는 거의 고려치 않고 일본 측을 압박한 것이다. 우리 외교부엔 거의 기대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일제 때 미쓰비시중공업 작업장에 끌려갔던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의 '99엔' 사태 때 우리 외교부가 보인 무신경을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중국 외교부는 일본 측이 '중일공동성명'을 이유로 피해자 개개인의 배상 청구권이 소멸됐다고 주장하는 데 대해서도 강한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류 대변인은 "어느 한쪽이 이 문서의 중요한 원칙과 사항에 대해 사법적 해석을 포함한 일방적 해석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양국의 외교 정상화를 위해 1972년 9월 29일 체결된 중일공동성명에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일본에 대한 전쟁 배상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항목이 들어 있다. 하지만 중국 측에서는 이 성명으로 중국 '정부'의 청구권은 포기됐을망정 '개별 민간인'의 청구권이 포기된 것은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전쟁 배상의 주체는 국가(정부)와 국민으로 구분된다는 게 국제법의 기본 원칙이고 관례라는 주장이다. 이미 1995년 3월 7일 당시 첸치천(錢其琛) 부총리 겸 외교부 장관은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나라 간의 전쟁 배상에 제한될 뿐 중국 국민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포함하지는 않는다"고 명백하게 선을 그었다. 류젠차오 대변인은 자국 국민들이 끝내 패소했을 때도 "중국 측이 수차에 걸쳐 엄정하게 입장을 밝혔음에도 일본 최고재판소가 일방적이고 편면적인 해석을 내린 데 대해 강력한 반대를 표한다. 이 해석은 또한 불법적이고 무효한 것이다"고 최고 수위의 항의를 했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민간인의 개인 청구권은 다 해결됐다는 우리 정부의 자세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천양지차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 CCTV를 비롯한 언론에서도 벌떼같이 일본 측을 비판하는 보도와 논평을 내보냈다. 일각에서는 니시마츠 불매운동도 제기됐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라는 거대 시장에 진출해 있는 영리기업 니시마츠건설은 회사의 이미지 개선 여부를 놓고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사죄 요구를 끝까지 외면하고 버티면서 시간을 보낸다? 대형 건설사로서 기업 규모에 비하면 작은 액수일 수도 있는 화해금을 끝내 거부하고 중국 시장을 포기한다? 그건 현명한 판단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중국 정부나 여론은 아직도 일본 측을 압박하고 있다. 슈강 총장은 이렇게 전했다.

"당사자들 간 화해가 성립되긴 했지만 현재 중국 여론은 불만이 남아 있어요. 하나는 배상금이 적다는 점, 또 하나는 해당 기업뿐 아니라 일본 정부도 배상해야 한다는 점에서 아직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후자의 문제와 관련해 중국 정부에서는 일본 정부 명의로 기금을 만들든지 해서 다른 방식으로 배상하고 사죄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에요. 도쿄 최고재판소에서 '피해 구제를 위한 관계자의 노력이 기대된다'고 화해 권고를 했을 때 언급한 '관계자'에는 당연히 일본 정부도 포함된다는 이유입니다. 이런 여론이 다 일본 측에 압박이 되겠지요."

그는 마지막으로 한국 측에 조언했다.

"한국 정부나 국민들도 강제노역 사실을 지나간 일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명확하게 알아야 해요. 역사를 기억하자는 건 분노를 기억하자는 게 아니라, 이후의 사람들에게 인권과 평등을 보장하고 배울 수 있도록 교육하기 위해서입니다. 니시마츠건설 사례가 한국 국민들에게 참고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허시(톈진)=특별기획팀 글·사진 김호경 권기석 우성규 기자 hk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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