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조유전의 문화재 다시보기]<46> 중초사지 당간지주

입력 2010.08.17. 21:03 수정 2010.08.17.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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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안양시 예술공원은 안양유원지로 더 알려져 있다. 안양시에서 삼성산 계곡을 따라 흐르는 삼성천(三聖川)을 잘 정비해서 여름이면 피서하기 좋도록 했기 때문이다.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 보물 제 4호로 지정된 중초사지(中初寺址) 당간지주(幢竿支柱)가 2층과 3층의 탑신을 잃은 3층석탑과 함께 눈길을 끈다.

당간지주란 높은 당간을 세울 때 당간이 움직이지 않도록 고정시키는 시설로 불교용어이다. 당간은 나무 돌 철로 만들어 세우는데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기를 다는 깃대라 할 수 있다. 이 당간지주는 일제강점기 때에도 보물로 지정 보호하고 있었던 것을 광복 후 1963년 보물 제 4호로 지정했다.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당간지주 가운데 가장 먼저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 당간지주가 중요한 것은 바로 두 개의 지주 가운데 서쪽 지주의 서쪽 면에 문자를 새겨 두었기 때문이다. 글은 통일신라 때인 흥덕왕 1년(828년)에 돌을 캐서 이듬해 2월 완성했다는 것을 알리고 있다. 지금까지 돌로 만든 당간지주가 전국 400여 곳에 분포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문자가 새겨진 예는 많지 않다.

당간지주가 남아 있다는 것은 이 당간지주를 세웠던 절이 있었다는 것을 뜻하고 더구나 명문에 중초사라고 했기 때문에 통일신라 때 이곳 어딘가에 중초사가 있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중초사터는 확인되지 않았다. 광복 후 당간지주 주변이 논밭으로 개간되어 오다 1950년대 말 유유산업 부지가 되어 공장건물이 건립되면서 그나마 절터의 흔적은 찾을 수 없게 되었다. 최근에 들어와 유유산업이 수도권기업 지방이전 정책에 따라 옮겨가게 되었다. 남아 있는 옛 유유산업의 건물 일부는 건축가 김중업이 1950년대 후반에 설계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안양시는 이들 건물을 근대산업 유산으로 활용해 부지 일대를 예술창작공원으로 추진하기로 하고 사전에 매장문화재 확인을 위해 지난해 시굴조사를 한울문화재연구원에 의뢰했고 올해도 계속되었다. 발굴조사 진행결과 중초사가 아닌 안양사의 터를 찾게 된 것이다.

안양사에 대한 기록은 조선시대 편찬된 <신정동국여지승람> <조선왕조실록>등에 나타나 있어 이를 통해보면 안양사는 16세기 후반 경 폐사되었음을 알 수 있지만 실체는 지금까지도 모르고 있다. 더구나 이 일대가 통일신라시대의 중초사 터로만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당간지주의 존재가 의문이 아닐 수 없게 되었다. 안양시의 입장에서 본다면 시의 이름이 된 안양사 터를 찾게 된 것은 오히려 뿌리를 찾은 것이나 다름없는 일일 것이다. 지금까지는 부분적인 조사에 지나지 않아 앞으로 어떻게 조사하고 보존대책을 세울 것인지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학술발굴조사를 진행하여 안양사의 전체 규모를 밝혀내고 아울러 통일신라 시대 중초사 터의 잔존 여부까지 확인 한 후 보존계획을 마련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경기문화재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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