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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칸〉[이종원의 아메리카브레이크]'코란 화형식'의 실체

입력 2010. 09. 14. 19:43 수정 2010. 09. 1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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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테러 9주년이던 지난주, 미국은 희생자 추모 대신 격렬한 논쟁에 휩싸였다. 논쟁의 중심은 한 교회가 벌이는 '코란 화형식'이었다. 9·11테러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이슬람교의 성전인 코란을 불태워 버리겠다는 한 목사의 주장에 미국 백악관부터 아프간 전쟁터까지 전세계가 들썩였다.

그런데 '화형의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미국의 통신사 AP는 이례적으로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내용인즉슨 이러하다.

"오늘 코란 화형식이 일어나더라도, AP통신은 코란이 불타는 사진을 전송하지 않으며 기사를 구체적으로 쓰지 않겠습니다. 특정인을 불쾌하게 하거나 도발하려고 의도한 사건 또는 이벤트를 보도하지 않는 것이 AP의 보도 수칙입니다. 저희 통신사뿐 아니라 모든 언론사는 신도가 50여명에 불과한 교회가 하는 일에 적절하고 균형잡힌 보도를 하리라 믿습니다."

한마디로 AP는 '화형식'을 하는 교회와 목사가 보도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왜일까. 이 교회와 목사의 정체를 조금만 살펴보면 간단하게 알 수 있다.

플로리다 게인스빌이라는 소도시에 위치한 문제의 '도브 월드 교회'는 신도 수가 50여명에 불과하며, 주일예배에 나오는 사람은 고작 30여명이다. 어느 기독교 교파에도 속해 있지 않고 테리 존스라는 목사가 사실상 교주다. 그는 설교 때마다 "유태교·힌두교·불교는 모두 사악한 존재이고, 오직 성경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외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그는 호텔 매니저를 하다가 독일 선교사로 간 후 갖가지 기행을 일삼다가 사기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받고 풀려난 사람이다. 독일에 거주하는 그의 딸조차 "아버지는 주목받고 싶어서 미친 사람이고 정신과 치료가 필요하다"라고 말할 정도다. 미국에 와서는 신도의 자녀들에게 '이슬람은 악마'라고 적힌 T셔츠를 입히고 학교에 등교시켜 물의를 빚고, "호모 시장은 필요없다"고 외치다가 게인스빌 시장의 비판을 받았다. 한마디로 진지하게 보도할 만한 가치가 없는 인물인 것이다.

그러나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고 하던가. 소규모 사이비 교회의 소동이 9·11테러 9주년이라는 타이밍과 미국 내 반이슬람 정서, 이에 영합한 언론의 과열 보도경쟁과 맞물려 국제적 이슈가 돼 버렸다.

하지만 침묵하는 다수의 미국인과 지각있는 기독교인들의 소리없는 항의도 만만치 않았다. 스티븐 매칼리스터라는 한 네티즌은 NPR뉴스에 다음과 같은 의견을 보냈다. "미친짓을 하는 멍청이들은 뉴스거리가 되고, 그리스도의 뜻대로 사는 기독교인들은 뉴스거리가 안 된다고 무시하다니…당신네들 언론 맞소?"

결국 11일 당일 보수 성향으로 유명한 폭스 뉴스부터 워싱턴포스트까지 '코란 화형식'을 보도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 대신 '워싱턴포스트' 최신호는 또 다른 작은 교회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테네시주의 허트롱 장로교회는 바로 옆 건물에 이슬람 모스크가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모스크 준공식 날 "우리 동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팻말을 내걸어 화제를 모았다. 이 교회의 스티브 스톤 목사는 워싱턴 포스트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간단합니다. 만약 예수님이 여기에 계셨다면 뭐라고 했을까요? '새 이웃을 환영합니다'라고 하지 않았을까요?"

<이종원 재미언론인>-ⓒ 스포츠칸 & 경향닷컴(http://sports.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경향닷컴은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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