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지난해 7월 보건복지부가 청소년 미혼모 대책의 하나로 '아빠 찾기' 지원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발표했을 때 시민 반응은 시큰둥했다. 양육책임을 회피하는 친부 때문에 고통받는 미혼모를 위해 친자확인 유전자 검사비 40만원을 지원하겠다는 것이었으나, "시급하지도 않고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이란 지적을 받았다. 복지부는 미혼부의 양육책임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방안이라면서 아이 양육과 학업 등을 위한 종합대책을 검토 중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학생 미혼모가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 방안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교육청이 어제 미혼모의 인권과 학습권을 보장하는 쪽으로 학생생활규칙을 제·개정할 것을 일선 학교에 요청했다고 한다. 미혼모에게 유급이나 휴학, 자퇴 등을 강요하지 말고, 공부를 계속하는 방법을 안내하라는 것이다. 지난달 말 국가인권위가 정부와 시·도교육청에 청소년 미혼모의 학업 유지를 위한 실질적인 지원방안을 마련하도록 권고한 데 따른 조치다. 청소년의 학습권은 기본적인 인권일 뿐 아니라, 임신·출산을 이유로 공부를 중단하면 본인은 물론 자녀까지 빈곤의 악순환에 빠질 우려가 크다는 점에서 꼭 보장돼야 한다. 선진국들이 교내에 미혼모를 위한 탁아시설이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교육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전국 미혼모 시설에 수용된 학생들의 85%가 학업중단 상태였고, 이들의 60%가량은 공부를 계속하고 싶어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학교가 미혼모에게 "다른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 "학교 명예를 해친다"는 등의 이유로 자퇴나 전학을 요구해 학교 밖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연간 1만명가량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되는 청소년 미혼모는 성 개방 등의 영향으로 갈수록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10대 청소년 미혼모의 발생이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미 일어난 결과만을 탓하며 미혼모를 좌절에 빠뜨리거나 잘못된 인간으로 낙인찍어서는 안된다. 사회 전체가 그들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일반 청소년처럼 인생을 설계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부하는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배려하는 일이다. 미혼모 예방을 위한 가정과 학교에서의 성교육이 중요함은 말할 나위가 없다.
< 노응근 논설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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