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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사냥꾼·빈집 지킴이..세상을 바꾸는 1000가지 직업

변진경 기자 alm242@sisain.co.kr 입력 2010. 10. 05. 11:13 수정 2010. 10. 05. 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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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학교 평화의전당에서 특별한 직업박람회가 열렸다. 9월11일, 희망제작소가 주최한 '세상을 바꾸는 1천개의 직업'이라는 행사였다.

이 직업박람회에는 대기업·중소기업 인사팀 직원들 대신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와 방송인 김제동씨, 재난구호 활동가 한비야씨가 참석했다. 이들은 '대졸'이나 '토익 800점' 대신 '상상력'과 '열정' 같은 취업 자격 요건을 제시했다. '연봉'이나 '복지 혜택' 대신 '나눔'과 '친환경'과 같은 말들로 일자리 문제를 거론했다. 그렇게, 세상에 아직 없거나 막 태어난 직업 1000개를 소개했다. < 시사IN > 이 그 가운데 30여 개 직업을 주제별로 묶어 소개한다.

ⓒ이우일그림

책이 좋으면 직업으로 삼아라

책 하나로 무수한 직업이 탄생할 수 있다. 서점 주인, 출판사 편집자, 도서관 사서 같은 기존 직업을 벗어나 보자. 사라지거나 희귀한 책을 고객의 주문에 따라 찾아주는 '책 수색가(book searcher)'도 유망한 직업이 될 수 있다. 지금도 고서와 절판 도서 등을 전문으로 취급하는 인터넷 서점이 몇 곳 있지만 '맞춤형'으로 주문을 받아 책을 수색해주는 전문가는 찾기 어렵다. 헌책방 순례를 취미로 삼는 마니아에게 이보다 더 알맞은 직업이 있을까?

외서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세계 각국에서 좋은 책을 찾아내 한국의 출판사에 소개하거나 번역하거나 저작권을 따오는 '책 사냥꾼(book hunter)'이 되는 것도 괜찮다. 혹은 '책 대여 택배 시스템 사업가'에 도전해보는 건 어떤가? 고객이 집에서 공공 도서관이나 학교 도서관의 책을 대출받아 보게끔 도와주는 직업이다. 이미 경기도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 도서관에서 임산부나 장애인에게 도서관 책을 택배로 빌려주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는데 반응이 꽤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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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이 일자리를 창출하다

'제빵왕'이 되고 싶은 사람 가운데 강아지를 좋아하는 이가 있다면 '애견 제빵사'만큼 매력적인 직업도 없을 것이다. 대량으로 생산돼 화학첨가물 덩어리인 애견 사료 대신, 맛과 영양을 갖춘 핸드메이드 음식을 반려동물에게 먹이고 싶은 사람들이 단골 고객이 될 수 있다. 일본에서는 애완동물을 위한 베이글·도넛·케이크 등을 만들어 판매하는 전문가들이 실제 맹활약하고 있다고 한다.

일본 리플렉스로지(Reflex-logy)협회에서 '프로페셔널 애견테라피스트' 자격을 주듯, 우리나라에서도 개를 '릴랙스'시켜주는 애견테라피스트가 뜨는 직업이 될 수 있다. 또 지난해 SBS < 동물농장 > 에서 처음 소개된 '애니멀 커뮤니케이터'의 다른 이름인 '동물 심리치료사'도 보람찬 일자리가 될 것이다.

핸드메이드 빵을 먹고 테라피스트의 손길을 받는 동물이 있는가 하면, 목이 졸리고 고층 아파트에서 내던져지는 등 처참하게 학대당하는 동물도 있다. 이런 동물들을 위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동물 복지기관인 영국 동물애호협회에서는 '동물학대방지 감시관'을 고용하고 있다. 고양이 은비 살해 사건, 테이프 강아지 사건 등 동물 학대 사건이 숱하게 벌어지는 우리나라에서도 절실한 직업군이다.

ⓒ이우일그림

자전거가 나갑니다 따르르르릉

트럭 대신 자전거가 배달을 한다면? 말도 안 될 것 같지만 일본에서 가장 '잘나가는' 택배 기업인 야마토 운수는 1998년부터 도쿄 도심을 중심으로 자전거 택배 시스템을 실시해왔다. 1999년 제작된 일본 영화 < 메신저 > 를 보라. 자전거 택배원이 영화 주인공으로 나온다.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부터 '자전거 메신저 네트워크'에서 자전거 택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택배비가 더 비싸지도, 운송 시간이 더 걸리지도 않는다. 서울처럼 도로가 막히고 복잡한 곳에서는 자전거 택배원이 트럭 택배원보다 훨씬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 지난 9월6일 대한상공회의소도 "배송 밀도가 매우 높은 도심권에 중소 집배 거점을 구축하고, 이곳에서 소비자에게 택배 자전거나 손수레 등으로 배송을 하는 '도심형 녹색 수·배송 시스템'을 구축하자"라고 업계·정부·지자체에 제안했다니, 자전거 택배원 일자리는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

'소믈리에'에는 한계가 없다

와인 때문에 국내에 소개된 '소믈리에'는 모든 음식으로 뻗어나가는 직업이 될 수 있다. 막걸리 소믈리에, 김치 소믈리에, 조미료 소믈리에, 채소 소믈리에, 물 소믈리에, 장 소믈리에, 젓갈 소믈리에, 콩 소믈리에, 밥(상) 소믈리에…. 세계음식문화연구원은 이미 '김치 소믈리에 교육과정'을 개설해 전문가를 양성하고 있다. 한국특산주협회와 한국전통주음료아카데미가 함께 개설한 '막걸리 소믈리에 전문 과정', 술평론가 허시명씨가 만든 '막걸리학교'는 막걸리 전문가가 되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채소와 과일에 대한 올바른 선택법·보관법·조리법을 소개하는 '채소 소믈리에'의 경우 일본에서는 8년 전 '베지터블 & 프루츠 마이스터 협회'가 창설돼 3만명 이상의 전문가를 양성해낼 만큼 인기가 높다. 우리나라에도 지난해 '베지터블 & 프루츠 마이스터 협회' 한국 지부가 창립돼 관련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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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문제, 해결사가 필요하다

결혼할 때 '웨딩 플래너'가 필요하듯, 이혼할 때도 '이혼 플래너'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지난해 총 이혼 건수는 12만4000건, 이혼율로 따지면 OECD 국가 중 1위다. 그 많은 사람이 혼자서 이혼 과정에 따르는 심리·경제·육아 문제들을 감당해내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혼율이 늘어나는 것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일이라 할 수 없지만, 이혼하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직업이 늘어나는 일은 나쁠 것이 하나도 없다.

이혼 부부 다섯 쌍 가운데 한 쌍이 20년 이상 같이 산 부부라는 사실을 볼 때, '황혼이혼 전문 상담사'는 특히 필요한 직업이다. 오랜 시간 동고동락한 배우자와 헤어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풀어나가고, 앞으로 펼쳐질 새 인생을 계획하는 데 전문가가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이혼과 같은 가정 문제에서 가장 상처받기 쉬운 쪽은 아이들이다. 이들의 상처를 줄이기 위해 미국에서는 '양육 코디네이터'라는 직업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각 가정에 파견하고 있다. 양육 코디네이터는 중립적인 위치에서 자녀 관리에 대한 부모 간의 의견 차이를 조정해 최적의 양육 환경이 조성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일을 한다. 입양 가정이 늘어가는 추세에 따라 '입양 사후 관리사'도 유망한 직업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입양 후 양부모·친부모와의 지속적인 인터뷰를 통해 가족 내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상담하고,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켜주는 지원자 구실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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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이 블루오션이다

농촌이야말로 일손이 절실한 곳이다. 색다른 관점으로 보면 농사짓는 것 외에도 무궁무진한 일자리가 보인다.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일손이 필요한 수요 농가와 일자리가 필요한 공급 가능자를 온라인으로 연결해주는 '농촌 일손 뱅크'를 창업하는 건 어떤가? 혹은 마을회관·창고·폐가 등 농촌 유휴 공간을 목록으로 작성하고 그것을 수련모임이나 숙박·명상·집필 공간으로 임대해주는 사업을 추진할 수도 있다. 지속적인 골칫거리인 농어촌 쓰레기 투기를 감시하는 감시원도 직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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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귀의 캔디' 너도 들어봐

다방 DJ는 사라졌지만, 음악을 골라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일은 여전히 유망 직업이 될 수 있다. 실제 지금도 전문 회사나 온라인 음악 사이트에서 일하고 있는 '매장 배경음악 전문가'가 대표적이다. 매장에 어떤 음악이 흘러나와야 고객이 더 많이, 더 편하게 쇼핑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이 이들의 직무이다. 놀이공원 등에서 활동하는 '공원 DJ'도 전문성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다. 월미도 '디스코 팡팡'의 인기 DJ 최은용씨처럼 뛰어난 입담과 음악 선별 능력은 아무나 갖출 수 있는 게 아니다.

공공(公共)은 나의 일터

공공 업무를 공무원들에게만 맡길 수 없다. 연말마다 보도 블록 교체 작업을 벌여 예산을 낭비하고 거리의 시민들을 방해하는 지자체를 감시해 고발하는 일이라면 특히 그렇다. 먹통 정부와 주민 사이를 연결하는 '주민 소통 전문가' 역시 중이 제 머리 못 깎기에 생기는 직업이다. '창조적 시위 디자이너'는 시위라는 공공 영역을 새롭고 참신하게 꾸미는 일을 맡을 수 있다.

'민간 외교관' ok!

한국에 체류하는 외국인은 120만여 명, 한국으로 여행 오는 외국인 관광객은 하루 평균 2만여 명에 이른다. '함께 사는 시대'에 필요한 새로운 직업군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외국인에게 알맞은 집을 소개해주는 '외국인 전문 부동산 중개업자'가 대표적이다. 서울시 서초구청은 외국인 부동산 거래가 한 해 평균 2000여 건에 이르는 현실을 감안해, 부동산 중개업자를 대상으로 부동산 중개 전문영어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한국으로 여행 오는 외국인들을 위한 '외국인 여행자 친구 서비스 사업자' 혹은 '외국인 여행자 워킹 홀리데이 주선 사업자'도 새로운 일자리이다. 해외에 나가거나 국내에서 외국인을 대할 때 그들의 문화와 취향을 존중하게끔 도와주는 '글로벌 에티켓 강사'는 '어글리 코리안'을 줄이는 데 특히 필요한 직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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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바꾸어 살아볼래요?

오랫동안 집을 비워야 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집을 봐주고, 애완동물이나 비싼 난초도 돌봐주고, 다달이 나오는 공과금도 납부해주는 '빈집 지킴이'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혹은 갑자기 다른 지역으로 옮겨 지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집 바꾸어 살기'라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집을 서로 바꿔 살 사람을 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집'과 관련된 모든 게 일자리로 연결될 수 있다.

특히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집의 의미는 남다르다. 2001년 일본 후생노동성은 살기 편한 집으로 주거 환경을 개선하는 주택 개조 비용을 고령자나 장애인에게 지원하면서, 그 개선 사항을 제안하는 '복지주거환경 코디네이터'라는 직업인도 함께 양성했다. 이들은 집 안의 문지방을 없애거나 층계를 경사로로 만들고 화장실에 손잡이를 설치하는 등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살기 편한 집을 만드는 데 전문적인 조언을 해준다.

ⓒ이우일그림

박원순 상임이사는 "1000개의 직업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직업에 관한 사고방식을 바꾸라는 차원에서 '1천개의 직업' 프로젝트를 기획했다"라고 말했다. "혼자 잘살고 잘 먹고 경쟁해서 이기는 그런 직업이 아니라 협동과 상생, 이웃을 위해 일하는 곳에서도 직업은 많이 창출될 수 있고 그런 곳들이 훨씬 더 성공적인 삶을 보장한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직업을 찾는 사람들에게 그런 1000개의 직업은 '직업'이 아닐 수도 있다. 마치 시민단체의 비영리 활동 같은 이 직업들이 '직업'으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조금 불편하고 비싸더라도 환경·지역·농촌처럼 소외된 것을 돕기 위해 기꺼이 나눔을 베푸는 사람이 많아지는 '좋은 세상'이 먼저 와야 할지도 모른다.

'1천개의 직업' 행사에 참여한 김제동씨는 "지금 그런 세상이 아니라는 걸 안다"라고 냉혹한 현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덧붙여 이렇게 말했다. "'여름이 뜨거워서 매미가 우는 것이 아니라, 매미가 울어서 뜨거운 것이다'라는 안도현 시인의 시처럼, 결국 뜨거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여러분입니다."

변진경 기자 /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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